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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찌라시를 보면 한국 사회의 모순이 보인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4. 12. 29.




찌라시를 보면 한국 사회의 모순이 보인다

- 찌라시의 사회학 #1


한 달 넘게 단식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쓰러뜨린 것은 굶주림의 고통이 아니었다.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퍼진 유민이 외삼촌의 글이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김(영오) 씨가 10여 년 전 이혼 뒤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지 않고 아이들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다. 두 딸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고, 누나가 김 씨와 이혼하고 10년간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느라 고통을 겪었다.”


이 글에 김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해명했다. “2003년 이혼하면서 대출이 많아 비정규직 월급으로 힘겹게 살다 보니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부녀지간은 일 년에 몇 번 안 보더라도 사랑이 각별했다. 두 아이를 보고 싶어도 자주 못 보고, 사주고 싶어도 많이 사주지 못했던 것이 한이 맺혀 억장이 무너지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다.”


유민이 외삼촌의 글을 시작으로 김영오 씨에 대한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보수언론은 그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사실, 한 달에 3만 원 회비를 내고 국궁을 취미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마녀사냥에 나섰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김영오, 당신이 고귀한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드는 데 선봉에 서 있음을 직시해야 돼”라고 SNS에 글을 올려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마녀사냥은 ‘유민아빠’의 주치의인 이보라 씨에게로 확장되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이보라 씨에 대한 신상 정보를 서울동부시립병원에 공식 요청했다. 이 의원은 “이보라 씨의 노조경력 포함, 당적 포함 등의 자료를 요구한다”고 공문을 보냈다. 이보라 씨가 통합진보당 대의원을 했던 것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었다.


이혼한 아버지는 자식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혼하고 생활비를 많이 보내주지 못한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에 통곡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어도 한 달에 3만 원 하는 취미생활을 즐겨서는 안 되는 것일까? 진보정당 당원인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이런 기사의 전제다. ‘이혼한 아빠라는 것’ ‘양육비를 충분히 보내주지 못했다는 것’ ‘국궁을 취미로 즐겼다는 것’ ‘진보정당 당원이라는 것’이 기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전제에 바로 문제가 있다. 이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일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이에 동조하는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흔히 ‘찌라시(루머 등을 담은 정보지)’라 하는 ‘뒷담화’의 세계에서 ‘공인’이 아니라 ‘일반인’이 제물이 되고 있다. ‘공적 정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실망한 사람들은 ‘사적 정의’에 집착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마녀사냥이 자주 일어난다. ‘사법연수원 불륜 커플’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퍼 나르고(나중에 사실관계에 반전이 있었다), 어느 회사 불륜 남녀의 사진을 전달한다.


이 와중에 ‘보이지 않는 손’이 슬쩍 숟가락을 얹는다. 요즘 찌라시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삼성가 장녀 이부진 대표가 알고 보니 예의가 바르더라.’ ‘현대그룹 수장인 정몽구 회장이 알고 보니 속이 좁지 않더라.’ ‘모 인터넷 매체에 협찬하면 효과가 좋다더라.’ 찌라시의 무한 확장성을 활용해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싱거운 일이 아니라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이미 자본은 찌라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찌라시를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찌라시의 본령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인데, 언론 이상으로 자본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찌라시는 진실의 무덤이기도 하다. 잠시 시간을 지난 대선으로 되돌려보자. NLL 대화록 내용을 선거운동 기간에 말한 것이 문제가 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NLL 대화록은 찌라시에서 나온 내용을 읽은 것이라고 변명했다. 궁지에 몰리자 찌라시를 근거로 대선 유세를 했노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언론은 그런 말을 검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받아 적기에 바빴다.


최근에 아주 비극적인 찌라시를 접했다. 한 일간지 기자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는데 죽음의 원인에 대해 "부부간 불화와 경제난이 원인으로 추정됨. 카드빚이 많았다고 함"이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언론사에 알아보니 사실은 달랐다. 유서에는 회사를 원망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파업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중징계를 받고 승진에서도 번번이 누락되는 등 불이익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찌라시의 사회학’은 한국 사회에 상식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는 찌라시를 활용하고 찌라시를 핑계로 삼는다. 그런데 가지지 못한 자와 힘없는 자는 찌라시를 통해서마저 공격당한다. 민심의 마지막 분출구마저 장악된 것이다. 거기에 화룡점정은 언론이다. 사실관계를 밝혀서 소문과 루머를 막아야 할 언론이 확성기가 되는 것이다. 찌라시 권하는 사회와 찌라시보다 못한 언론이 찰떡궁합이다. 





찌라시의 사회학 #2 - 찌레기


요즘은 찌라시의 탈을 쓴 보도자료도 돌아다닌다. 보도자료에 쓸 수 없는, 주로 상대기업을 공격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찌라시라며 돌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종의 찌레기인 셈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제목부터 '증권가 찌라시'다. 이것부터 웃기다.)


"<증권가 찌라시>


○ 한전부지 인수에 올인한 삼성그룹, 밖으로는 언론플레이 안으로는 책임문책에 벌벌


- 현대차그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한전부지 입찰전 결과에 대해 삼성은 공식적으로 상식선의 입찰가를 제시했다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서도 4조 후반대에서 5조 초반대 낙찰 희망가를 흘리며 명분을 만들고 있음.


..."


내용을 보면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말을 찌라시의 형태로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기업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 찌라시에서 지적하듯이 그쪽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1,2위 기업이 찌라시에 의지해 졸렬한 비방전을 벌인다는 것인데... 


미디어학자들이 이번 한전부지 매각 이후의 보도 행태와 이때 돌았던 찌라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언론사들이 더러운 싸움에 어떻게 동원되는지... 


기레기에 이어 찌레기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