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풍경> 시사회에서 프로듀서는 이 영화를 연말에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위한 영화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다. 연인을 따라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고민할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도 많은데 이 영화를 나에게 보여준 이유가 뭘까?’ 연인 사이에 감정보다 생각이 많아지면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 빅데이터 통계를 보면 크리스마스 전후는 연인들이 가장 많이 헤어지는 시즌이다. 그래서 권하지 못하겠다.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말에 조용히 삶을 관조하려는 이들이다. <풍경>은 이주노동자들의 인터뷰와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단순히 나열한 다큐멘터리다. 많은 사람이 재미없다고 느낄 형식이자 내용이다. 그런데도 나름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들여다보고 싶고 말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대신 화면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본령 아닐까? 기교 부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고양시킨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다큐멘터리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한마디로 ‘창조경제 영화’다. 대학생 네 명의 유럽 무전여행기인데 발상이 참신하다. 유럽 숙박업소들의 홍보 동영상을 찍어주고 그 보수로 유럽 여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잉여로움’으로 무장한 대학생 네 명이 단돈 80만원과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프랑스 파리에 내렸다. 그러나 시작은 비참했다. 그들을 불러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넷은 추위를 피해 무작정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간다. 자포자기할 무렵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고 승승장구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 호스텔계의 슈퍼스타’가 되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영국 런던까지 횡단한다. 그렇게 그들은 유럽에서 1년을 버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어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냈다. 완성하는 데는 5년이 걸렸다.
영화 개봉과 함께 이들은 2차 여행 계획을 발표했다. 악기를 연주해서 그 공연료로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시바, 인생을 던져>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영화죠)
12월13일 세상을 떠난 이성규 감독의 유작 <시바, 인생을 던져>는 다큐멘터리에 인생을 던진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인도를 말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혹은 인도에 대해 선망과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권하고 싶다. 이 영화에는 ‘진짜 다큐멘터리’와 ‘진짜 인도’가 있기 때문이다.
극영화로서 <시바, 인생을 던져>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다소 작위적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리 무르익지 못했다. 평생을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감독에게 연출한다는 것은 뭔가 어색해 보였다. 마치 평생 한식을 만들다 중국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추천한다. 이 영화는 극영화 형식이 줄 수 있는 재미와 다큐멘터리 형식이 주는 진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필립 할스만 사진전>
날아올랐다.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다들 날아올랐다. 크레용팝의 <빠빠빠>에 맞춰서? 아니, 사진가 필립 할스만의 카메라 셔터에 맞춰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와 마릴린 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주먹왕 무하마드 알리, 영국 왕위를 버린 윈저공과 심슨 부인, 클리포드 후드 US스틸 회장과, 포드 자동차의 회장 부인, 화가 마르크 샤갈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그들이 필립 할스만의 카메라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날아올랐다.
화보 잡지 <라이프> 표지 사진을 101번이나 등재한 세기의 사진가 앞에서 점프를 하며 이 유명인들은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살바도르 달리와 윈스턴 처칠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와 마릴린 먼로는 사랑을 갈구했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과 SNS를 활용해 소통하며 운영된다.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점핑 사진을 보낼 수 있고 현장 참여도 가능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2월3일~2월23일)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
현대 사진 역사의 결정적 기점을 구축한 인물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 115점이 한국을 찾았다. 스위스 태생인 로버트 프랭크는 주로 뉴욕에서 활동했는데, 뉴욕에 이주하기 전 스위스에서 찍은 초기 사진, 남미와 유럽과 뉴욕의 풍경을 담은 중기 사진,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말기 사진까지 두루 망라되었다. 로버트 프랭크는 다양한 실험을 펼쳤는데, 독립영화 제작자로 활동할 때의 동영상과 후반기의 폴라로이드 작업도 소개된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은 독특했다. 노출과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일부러 구도를 흐트러뜨린 사진도 많았다. 그렇게 기형적으로 표현된 인물 사진에 강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사진에 직접 메모를 적어넣는 ‘포토 몽타주’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미국인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포착한 ‘미국인’ 연작 시리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2014년 2월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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