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책방 (Ver 2.0)
문단의 두 원로 라이벌 인기 작가 W와 H가 대학병원 VIP 대기실에서 만났다. 둘은 앙숙이었다. 어설프게 수인사를 한 후 서로 병원에 온 이유를 돌려 돌려 돌려 묻다가 둘 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같았다.
둘은 병원을 나와서 호기롭게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암환자 이전에 문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앞다퉈 지난 일을 사과했다. 그렇게 밤을 새고 아침에 헤어지기 직전 둘은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팟캐스트를 해보기로 합의했다.
첫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둘은 그동안 살면서 저지른 온갖 갑질에 대해 참회했다. 출판사 에디터들에게, 문하생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이것은 나중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자신들의 시한부 선고에 대해서 알렸다.
첫 방송 조회수가 폭발하자 출판사들이 달려들었다. 자신들이 방송 제작비를 대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송 내용을 책으로 내겠다고도 제안했다. 둘은 거절했다.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출판사들은 곧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문제는 두 번째 방송부터였다. 둘은 동료 작가들에 대한 뒷담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침없었다. 작품은 쓰레기라 했고 인간성은 말종이라 했다. 뇌에서 성기까지 완전히 훑어냈다.
그래도 시한부인 그들에 대해 욕을 먹은 작가들이 항의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은 문단의 원로였다. 욕을 먹은 작가들은 그들의 험담을 위트 있게 받아치며 짐짓 점잖은 척을 했다.
그렇게 그들이 방송을 계속 하면서 유탄을 맞는 작가들이 늘어났다. 급기야 사생활도 폭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고백부터 했다. 마음에 드는 문단 후배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작품을 대신 써준 것도 고백했다. 그러면서 시인이 부럽다고 했다. “시는 짧기라도 하지.”(W)
동료 작가 얘기에서 출판사 사장 얘기로, 다시 언론사 문학담당 기자 얘기로, 어리석은 독자들 얘기로... 뒷담화의 대상이 늘어갔다. 도대체 그들의 데쓰노트에 얼마나 많은 이름이 올라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각기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을 대표했던 두 작가는 두 진영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잡스러운 이야기들도 쏟아냈다. 전쟁이 나면 보수진영 인사들은 24시간 안에 전부 국외로 도망칠 것이라는 둥, 진보진영 인사들이 알고 보면 꼰대라는 둥…
팟캐스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도 그들이 혹평하고 나면 판매량이 급전직하 했다. 문단이 쑥대밭이 되었다.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았던 둘은 단숨에 ‘문화권력'으로 등극했다.
조회수에 목을 맨 인터넷언론은 두 작가의 말을 실시간으로 받아썼다. 언제나처럼 그들은 둘의 말을 확대 해석했다. 둘이 간혹 이니셜로 말한 작가도 있었는데 그가 누구인지 탐구정신을 발휘했다.
총기난사 수준의 독설을 한 이들은 대상을 더욱 확장해 정치인에 대해서도 비난을 시작했다. 여야는 이들의 말을 받아 정치공세에 이용했다. 정치인들은 은밀히 줄을 대 두 작가가 라이벌 정치인을 씹어달라고 청탁했는데 둘은 그 청탁 내용도 고스란히 방송했다.
어느날 W가 폭탄선언을 했다. 항암치료를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죽는 쪽이 더 조명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물론 H역시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그는 여유 있게 받아치며 말했다. “임마 나는 술담배까지 다시 시작했어.”
늘 오늘이 마지막 방송일지 모른다며 클로징을 했는데 두 작가의 병세는 생각보다 나빠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지는 기색이었다. 둘은 자신들을 진료한 의사들도 사이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방송이 길어지자 그들에게 욕을 먹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두 작가는 더욱 신이 났다. 둘은 주 1회 하던 방송을 주 2회 하는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나마 종일방송 하려던 것을 참은 것이었다.
문단에 두 작가의 팟캐스트 문제를 논의하게 위한 비대위가 설치되었다. 해명 방송용 팟캐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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