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문호들이 칭송한 조지아
코카서스(캅카스) 산맥 남쪽에 자리 잡은 조지아(옛 그루지야)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코카서스의 스위스’라 할 수 있다. 코카서스의 설산이 알프스의 설산처럼 병풍을 두르고 있고 언덕에는 소떼가 풀을 뜯고 있고 계곡이 힘차게 흐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위스 사람들도 조지아에 여행을 많이 온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이렇다. 알프스 풍경에서 포토샵으로 케이블카와 호텔 등 인위적인 것들을 지우고 나면 코카서스의 풍경이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은 조지아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한다.
위치상으로는 터키의 동쪽, 이란의 북쪽에 위치하지만 조지아는 동유럽의 한 국가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묶이는데, 인종적으로 백인에 가깝고 종교도 기독교 일파인 조지아정교다. 조지아에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풍부한 와인이 있고, 이탈리아처럼 맛있는 음식이 있고 스페인처럼 정렬적인 춤과 음악이 있다. 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할 여행지’로 처음 꼽히는 곳이 바로 조지아다.
조지아는 러시아의 문호들이 앞 다퉈 칭송했던 곳이기도 하다. 막심 고리키는 조지아의 철도 기지창의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고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그곳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말했다. 조지아는 막대한 부채를 지고 도망 온 톨스토이가 주둔군으로 복무했던 곳으로 나중에 이곳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장기간 조지아를 여행했던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 음식은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조지아 여행은 특히 입이 호강하는 여행이다. 조지아의 음식과 와인은 정평이 나있다. 비유하자면 조지아 음식은 ‘러시아의 전라도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해외 러시아음식점의 메뉴 중 많은 부분이 조지아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와인은 조지아의 자존심이다. 와인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을 정말 사랑한다. 기쁜 날은 26잔을 마시고 슬픈 날은 18잔을 마신다. 전통 방식은 뿔잔에 마시는 것인데 뿔잔은 세워둘 수가 없어서 받으면 ‘원샷’을 해야 한다. 마트에 가보면 와인을 4~5리터 PET 통에 담아서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맛있는 음식과 와인, 여기에 조지아의 매력을 하나 더 꼽으라면 조지아정교를 꼽을 수 있다. 이슬람교 국가들 사이에서 박해 받으면서도 기독교를 지켜왔기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지아정교의 성당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성당 내부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기단과 기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제와 신도가 같이 서서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고 예배하고, 비신도인 관광객들은 조용히 둘러보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학습하는 등 하나의 사회가 구현되었다. 조그만 성당 안이 하나의 우주가 된 셈이다.
숱한 외침을 받았지만 조지아인들은 외지인에 대해서 호의적인 편이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았던 마야 씨는 “조지아에 관광객은 없다. 오직 적과 손님이 있을 뿐이다. 당신 손에 무기가 아니라 와인잔이 들려있다면 당신은 우리의 손님이다"라고 말했다. 구소련의 일원으로 오랫동안 사회주의를 경험해서 그런지 노인들의 인상은 좀 무뚝뚝한 편이지만 말을 걸어보면 바로 미소를 보낸다.
조지아에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경찰서와 경찰관이다. 예전에는 구태와 부패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투명성과 현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강력한 경찰개혁 덕분이다. 전임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부패한 경찰을 완벽하게 해체한 후 새로 경찰을 채용해 재구성했다.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조지아 경찰은 새로 태어났다. 경찰서는 투명 유리로 통창을 내서 내부가 보이도록 지었고 경찰관의 급료는 샐러리맨의 몇 배를 주어 부패에 노출되지 않게 했다. 덕분에 경찰관이 조지아 여성들에게 신랑감 1위가 되었다.
국민소득이 높지는 않지만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관광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학생에게 넷북을 지급했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고 노령연금도 지급한다. 쿠바처럼 의료체계도 좋은 편이다. 의대가 유명해서 인근 국가에서 유학도 많이 오는 편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여서 여행객이 기댈 마음의 여유가 있다.
구소련 국가지만 조지아는 최근에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임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친미 외교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사업가들의 투자를 많이 이끌어냈다. 조지아 젊은이들도 미국 문화를 선호한다. 구소련 시대를 경험했던 노인들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지만 젊은 사람들은 러시아어가 프랑스어나 독일어보다도 선호도에서 밀린다. 러시아 끼릴문자도 거의 볼 수 없다.
조지아는 관광지가 갖춰야 할 여러 요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그래서 오감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조지아 여행은 길면 길수록 좋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조지아를 둘러보아야 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꼭 들러야 할 곳을 꼽아본다. 트빌리시, 시그나기, 보르조미, 카즈베기, 이 네 곳이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는 역사가 깊은 곳이고, 성곽도시 시그나기는 낭만적인 곳이고, 보르조미는 숲과 계곡이 좋은 곳이고, 카즈베기는 설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두루 만족감을 준다.
# 24시간 불이 켜진 고대도시, 트빌리시
조지아 여행의 시작은 트빌리시 구도심(올드 트빌리시) 산책으로부터 시작한다. 트빌리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다. 공존은 건축을 통해 나타난다. 미래의 후손들과 겨루는 첨단 건물이 곳곳에 성채처럼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지금의 불경기를 말해주는,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반창고처럼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오래된 성벽이 가로지른다. 이 공존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을 보여준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오래된 건물들의 발코니를 감상하면서 걸으면 조지아 관광이 시작된다.
올드 트빌리시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도시를 관통하는 므크바리(Mtkvari) 강 남쪽을 올드트빌리시라고 부르는데 우리로 치면 ‘북촌’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들은 강북쪽 사람을 ‘저쪽 사람들(the other side people)'이라고 부른다. 권력자나 종교 지도자 등 모든 결정권자가 올드트빌리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교회부터 가장 중요한 교회까지 중요한 시설들이 구도심에 몰려 있어서 걸어 다니며 두루 볼 수 있다.
조지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지아정교의 교회다. 가장 '조지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지아는 페르시아(이란) 오스만투르크(터키) 제정러시아(러시아)에 둘러싸인 나라다. 중국과 일본에 숱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있는 기독교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강한세력이 나오면 언제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 조지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 한 것은 바로 조지아정교였다. 조지아인들은 조지아를 구성하는 세 가지로 조지아정교와 조지아어 그리고 와인을 꼽는다. 페르시아 몽골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등 당대의 강대국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교회를 둘러싼 성 위에서 맞이했다. 코카서스 산맥 깊숙이 피난을 가면서 먹을 것 대신 교회의 성물을 챙겼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압박도 이겨낸 조지아정교는 이제 마지막 외세인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정교의 특징은 관용이다. 모든 종교는 비신도와 신도를 구분하고 신도와 사제를 공간적으로 혹은 역할적으로 구분해서 엄숙함을 구현한다. 그런데 조지아정교는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충분히 엄숙하고 경건했다. 이것이 유럽의 어떤 오래된 성당보다도 혹은 이스탄불의 어떤 화려한 모스크보다도 조지아정교 성당이 가슴에 더 깊숙히 박히는 이유였다. 종교적 관용은 성당 밖으로도 확대된다. 이렇게 어렵게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에 관대하다. 조지아인의 83% 정도가 조지아정교를 믿고, 10%는 이슬람교, 2%는 아르메니안정교, 그 외 가톨릭과 신교, 유대교 등을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관용적인 자세가 타 종교로도 전이된다는 점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는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함께 이용하는 모스크가 있다. 한 쪽은 시아파가, 다른 한 쪽은 수니파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에 3곳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유대교 역시 다른 종파가 하나의 교회를 사용한다. 조지아에는 다른 종교 혹은 다른 교단에 대해 관대한 태도가 자리 잡혀 있다.
트빌리시 구도심 산책은 메테키 다리를 건너 므크바리(Mtkvari) 강 언덕에 있는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에서 얼추 마무리 된다. 무려 37번이나 다시 지어진 이 교회는 조지아정교 수난의 상징이다. 구소련 시절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교회 옆에는 트빌리시를 세운 박탕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이 구도심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메테키 다리를 다서 건너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Narikala) 요새에 올라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다. 요새에서 내려오면 폭포로 가는 협곡이 있다. 폭포는 크지 않지만 협곡 위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이 볼거리다. 협곡 입구에는 벽돌무덤 단지처럼 생긴 유황 온천 지대가 있다. 가족 욕실도 있어서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구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트빌리시 벼룩시장도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진귀한 골동품들이 많고 구소련 물품들이 많아서 물건을 고르는 재미가 유별나다.
올드트빌리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현대화를 많이 느낄 수 있다. 문화의 혼합에 익숙한 조지아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이 더해진 것을 설명할 때 조지아인들은 ‘재즈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재즈의 합주처럼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24시간 마트 약국 패트스푸드가 있다. 심지어 은행도 24시간 연다. 현금지급기만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원이 근무를 한다(카지노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빌리시에서는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대부분 비번을 걸어두지 않는다).
트빌리시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전통음식을 먹으면서 전통춤과 전통음악 연주를 관람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므크바리 강을 따라서 이런 곳이 50여 곳이나 있다. 조지아 전통춤은 마치 탭댄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경쾌하고 스페인 플라멩고처럼 정렬적이다. 전통음악(Polyphony)은 안데스산맥의 노래들처럼 멜로디가 신비로운데 그중에는 우리의 아리랑과 후렴구가 비슷한 노래도 있다.
트빌리시는 야간관광 하기에도 좋은 도시다. 조지아의 치안이 좋은 편이기 때문인데, 이유가 있다. 이전까지 조지아 경찰은 부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이 대대적인 경찰개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무늬만 해경 해체’가 아니라 정말 경찰을 해체해 버렸다. 기존 경찰 조직을 전부 해체하고 새로 경찰을 뽑아서 조직을 재구성했다. 경찰서도 가장 화려한 건물로 새로 짓고 유리로 외벽을 지어 투명한 경찰임을 강조했다. 급료도 비약적으로 높여주었다. 이제 조지아에서는 경찰이 ‘신랑감 1위’로 꼽힌다. 조지아 경찰은 대체로 친절하고 영어도 잘 해서 의사소통도 잘 된다.
# 조지아 와인과 조지아 음식 이야기
트빌리시 다음으로 여행할 곳은 와인의 고장 카케티와 카케티 바로 옆으로 조지아의 가장 동쪽인 시그나기 지역이다. 와인과 함께 ‘코카서스의 이태리’로 불리는 조지아 음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트빌리시에서 카케티로 가기 위해서는 1900미터 내외의 텔레비 구릉을 넘어야 한다. 이 구릉을 넘어서면 카케티 평원과 그 뒤로 코카서스 산맥의 설산이 보이는데 풍광이 일품이다.
카케티 평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바로 양떼나 소떼 혹은 말들과 도로에서 만나는 것이다. 갈 길 바쁜 여행자들도 수백 마리의 양떼가 도로를 점유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게 된다. 양떼와 목동들을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양과 사람 모두 서열이 있기 때문이다. 양도 뿔이 가장 큰 숫양부터 차례로 걷고 목동도 연장자가 맨 앞에서 걷는다. 그 카리스마를 보면 왜 목동을 선지자라 불렀는지 이해하게 된다.
카케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조지아인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지아인들이 자신들의 와인사랑을 이야기할 때 드는 우화가 있다. 신이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았는데 조지아인이 늦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와인을 마시며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라고 변명했다는 것이다. 신도 포기할만큼 와인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조지아를 지배하면서 조지아인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포도나무를 자르기도 했을 정도다.
조지아 와인의 특징은 일단 포도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지아에서 기르는 포도의 종류는 565종이나 된다. 조지아인들은 3km마다 기후가 달라져서 포도품종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중 Saperavi 종으로 만든 와인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각종 사연을 담은 와인을 조지아에서 만날 수 있다.
카케티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은데 그중 트윈 셀라(Twin’s Cellar)라는 와이너리에 들렀다.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정통 크베브리 (qvevri) 와인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크베브리 와인은 으깬 포도를 넣은 점토항아리를 땅에 묻어 발효시키는데, 정통 크베브리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데 금빛이 난다. 조지아 지역은 와인이 최초로 발원한 곳으로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 와인은 대체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가격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제공하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고급레스토랑에서 납품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와인도 많다.
트윈 셀라에서 정통 조지아 주도를 배웠다. 조지아인들은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 와인을 마신다. 단 원칙이 있다. 여러 가지 와인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 새 해가 되면 한 달 동안 이런 파티를 한다. 술자리를 이끄는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건배 제의를 한다. 이렇게 식전에만 5번을 외친다. 맨 처음은 신에게 그 다음은 평화를 위해, 그 다음은 성조지를 위해, 대략 이런 순서다. 가우마조스는 계속된다. 조지아인들은 와인 3잔은 곰(bear)이 되게 만들고 그 다음 3잔은 황소(bull)가 되게 만들고 그 다음 3잔은 새(bird)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취하는 것 같으면 스스로 멈춰야 한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는 Pirosmani라는 와인이다. 심수봉씨가 번안한 라트비아 민요 <백만송이 장미>의 실제 모델인 조지아의 화가의 이름이다. 사모하던 여인에게 백만송이 장미를 바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보통 와인을 만들 포도를 기르는 농장에서는 담장에 장미를 심는다. 장미가 포도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와인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지역마다 맥주도 있다. ‘알파인 지역’이라고 하는 구릉지대에서는 주로 맥주를 마신다. 독주도 즐긴다. 마트에 가면 주류코너가 거의 절반에 달한다. 짜짜라는 와인을 증류해 만든 독주도 있는데 맛이 일품이다. 향이 풍부해 중국 바이주를 연상시킨다. 술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술친구가 되기는 좋지만 같이 일하기는 불편하다는 말도 있다. 술문화가 관대한 조지아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들은 조지아인에 대해서 “같이 동료로서 일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같이 즐기기에는 최고의 파트너다”라고 말한다. 흡연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조지아인들은 ‘몸에 그렇게 해롭지 않다. 정신 건강에 이롭다’라고 설명한다.
트윈셀라와 같은 와이너리는 보통 식당을 겸하는데 여기서는 ‘므쯔바리'라는 돼지고기 꼬치구이를 먹어줘야 한다. 므쯔바리는 포도나무 가지를 태운 숯으로 구워야 제 맛이 나는데 소금간만 하는데도 돼지고기의 풍미를 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아에서는 잔칫상을 차릴 때 ‘식탁 바닥이 보이지 않게' 차려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조지아는 ‘코카서스의 이탈리아'로 불릴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음식 문화가 다르다. 일단 식당에서 커리를 볼 수 없다. 화덕에 구운 푸리라는 빵을 음식들과 같이 먹는데 피자처럼 생긴, 안에 고명을 넣은 빵 ‘하차푸리’도 같이 나온다. 지역마다 고명이 다른데 감자나 팥앙금같은 것을 넣는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음식은 다음의 5가지다. 힝칼리는 만두와 비슷하고 하차푸리는 피자와 비슷하다. 므츠바디는 러시아 샤슬릭과 닮았다. 대체로 이 세 가지를 한국인이 좋아한다. 포도즙을 굳히고 그 안에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넣어 만든 간식도 있다. ‘조지아군의 스니커즈’라고도 부르는 이 음식은 조지아 목동들이 일을 나갔을 때 주로 먹었던 간식이라고 한다.
시크메룰리(Shkmeruli) : 튀긴 닭을 전통 토기에 담고, 그 위에 다진 마늘, 물, 우유를 끓여 골고루 부어 오븐에서 살짝 조리한 마늘을 사용한 닭요리.
하쵸(Kharcho) : 쌀, 쇠고기, 살구 열매로 만든 퓌레와 잘게 다진 견과류를 넣어 만든 조지아의 전통 스프.
하차푸리(khachapuri) : 조지아 피자’라고 알려진 대표적인 치즈빵으로, 화덕에 잘 구운 얇은 빵 사이에 치즈를 듬뿍 담아 냄.
므츠바디(Mtsvadi) :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작은 덩어리로 잘라 소금, 후추, 와인 등에 재워 샴푸리라는 쇠꼬챙이에 꽂아 굽는 대표적인 바비큐 요리.
힝칼리(khinkali) : 밀가루 반죽을 만두피처럼 밀어 그 속에 다진 고기, 채소와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한 소를 넣어 찐 음식.
트빌리시에 전통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구한 요리책이 조지아 전통요리에 대한 것이어서 그에 맞춰서 요리를 하는 곳이다. 우리의 음식디미방과 비슷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에 나와 있는 800여 가지 레시피 중에서 36가지를 재현했다고 한다. 이 식당의 요리사는 한국에서 열리는 요리사 행사에도 미슐랭 스타 셰프들과 함께 초청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이 바라다 보이는 평원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시그나기는 천혜의 요새다. 중국의 산해관처럼 동쪽의 이민족들이 조지아를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어서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프스의 관문 역할을 했던 벨린초네 지역과 형세가 비슷하다.
요새도시였던 시즈나기는 이제 낭만의 도시다. 풍경이 예뻐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서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24시간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기도 하다. 시즈나기는 또한 카페트 장인들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조합이 있다. 낭만의 도시 시그나기의 명소는 ‘꿩의 눈물(Pheasant’s tears)’이라는 와인바다. 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이 바는 카케티 지역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한 병 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 러시아 황제들의 휴양지를 둘러보다
- 보르조미 지역
알프스에 에비앙이 있다면 코카서스에는 보르조미가 있다. 보르조미 생수는 조지아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다. 보르조미 생수가 나오는 남코카서스 보르조미 지역은 제정러시아 시절 황실의 휴양지이기도 했다. 우렁찬 계곡을 따라 시원한 산책로가 나있다. 산도 좋고 물도 좋은 이곳을 러시아 황실이 휴양지로 택한 이유는 온천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산은 추운데 물은 따뜻해 침엽수와 활엽수가 교차하는 숲이 형성되어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조지아 아이들이 천식을 앓으면 부모들이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한다.
보르조미를 가는 길에 잠깐 들를 도시가 있다. 스탈린의 고향 고리시다. 독재자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었다. 이 스탈린에 대한 조지아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나이 든 세대는 우리의 ‘박정희 향수’처럼 스탈린향수가 있다. 중공업 육성정책으로 조지아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스탈린과 소비에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스탈린을 싫어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 청년들을 징발해서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아인 70만 명 정도가 징집되어 그 중 35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스탈린 집권 기간 동안 희생당한 조지아인이 5만 여 명이고 시베리아 등에 유형을 당한 사람도 15만 명에 이른다.
스탈린은 조지아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조지아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스탈린에 대한 반감은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반러 감정으로 이어졌다. 조지아 청년들 중에는 외국어로 러시아어를 하는 경우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나 독일어보다 적다고 한다. 하지만 조지아는 스탈린시대의 흔적도 강해서 고리시의 스탈린기념관은 꼭 들러볼만한 곳이다.
보르조미 가는 길에는 전형적인 조지아 농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농촌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은데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환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조지아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는데 은퇴한 노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조지아의 노인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소비에트연방시절의 영향이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면 더없이 친절하다. 조지아 젊은이들도 정이 많다.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정이 많은 백인의 모습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조지아인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내가 있다’라는 교육을 받는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남이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 혹은 친구이므로 나와도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조지아인들은 외지인들에게 대체로 호의적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조지아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조지아 역시 한류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한류팬인 조지아인을 만날 수 있었다. 카즈베기에서 묵었던 룸스호텔의 매니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의 팬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스스로 한국어를 공부해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가이드 마야 씨의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 <주몽>의 팬이었다.
보르조미 계곡은 조지아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많다. 보르조미 고지대에는 스키 리조트도 있는데 이곳 역시 주로 어린이들 스키캠프가 진행되는 저렴한 리조트다. 스키리조트로 올라가는 협궤열차도 볼거리다. 조지아를 가족여행으로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이곳에서는 계곡 트레킹을 꼭 해봐야 한다. 계곡은 물살이 거세서 수영을 하기에는 위험하다. 하지만 수영을 할 수는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온천 주변에서 캠핑도 할 수 있다. 계곡 옆에서 캠핑을 즐기고 온천에서 목욕을 한 다음 돼지고기 꼬치구이 므쯔바리를 만들어 먹는 조지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카즈베기 지역
카즈베기 산이 있는 북동부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조지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다. 만약 조지아에 왔다 가면서 카즈베기산에 와보지 않으면 조지아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조지아인들은 ‘유럽의 기원은 조지아다’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와인이 조지아에서 발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천이 코카서스라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카프카스라고도 하는 코카서스는 여러 신화의 배경인데, 카즈베기산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산이다.
카즈베기로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 바로 트빌리시 전에 조지아의 수도였던 므츠케타다.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조지아정교의 중심이다. 조지아를 관통하는 두 주요 강의 합수 지점에 스베티스코밸리 교회가 있는데 조지아정교의 역사가 집대성된 곳이다. 외적이 침입할 때 조지아인들이 마지막까지 지켰던 곳이 이 교회로 교회 안에는 강으로 탈출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므츠케타 교회에서 올려다보면 즈바리(Zvari) 수도원이 있는데 이곳 역시 조지아정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처음 포도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가져와서 만든 교회로 종교를 철폐하려는 소비에트의 명령을 어기고 아 수도원을 재건했던 건축가가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기도 했다. 주로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서는 므츠케타를 지나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즈바리패스를 넘게 된다. 빙하 녹은 물이 눈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카프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 이름)를 점령하라’는 의미로 ‘블라디카프카스'를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세운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을 넘는 ‘밀리터리 하이웨이'라는 군사도로를 냈다. 이 길이 지금 산업도로와 관광도로로 쓰인다. ‘밀리타리 하이웨이’를 따라 가다보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흑해로 옮기는 송유관을 볼 수 있다. 산유국을 옆나라에 둔 덕분에 조지아는 석유와 전기를 싼 값에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도시가스가 산골짜기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에너지 상황이 좋다.
카즈베기는 풍광이 압도적이다. 평범한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곳이다.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도 작품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나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꼽는 곳이 바로 카즈베기다. 카즈베기산이 있는 자바케티 지역은 알프스 마테호른산 밑의 체르마트 마을을 연상시킨다.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는 디자인호텔로 유명한 룸스호텔이 있다. 카즈베기산 반대편 언덕에 자리 잡아 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절이 들어설만한 곳에 만들어진 호텔인데 전망이 일품이다. 디자인호텔에 등록될 정도로 세련된 호텔이지만 1박 가격이 13만원~15만원 정도로 시설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해발 5047m 카즈베기산은 평범한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올라야 할 곳이 있다. 게르게티 언덕에 있는 성삼일치 교회다. 해발고도가 2천미터가 넘는 이 교회는 전쟁이 났을 때 조지아정교의 성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조지아인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처음 장소를 정할 때 ‘독수리가 고기를 묻어 두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지아정교의 경건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게르게티 언덕에서 찍은 사진이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줄 것이다. 발아래 구름을 두고 아련한 설산을 배경으로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되고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누가 찍어도, 누구를 찍어도, 어디를 찍어도, 언제 찍어도, 예술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건져올 수 있는 곳이다. 조지아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사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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