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월간 <말> 5월호 부록으로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 리더 1천명>을 기획해
386 세대의 사회 세력화를 도모했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386 세대를 위한 편지를 보냈다.
그는 386 세대에게
승리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생활 세계에서 작은 성취를 이루라고 충고했다.
298세대론을 본격적으로 펼치기에 앞서
386세대론을 정리하기 위해
오연호 선배가 시사IN에 기고했던 글을 올립니다.
(블로거뉴스에 별도로 포스팅하지 않고 블로그에 공개만 합니다.)
주눅 든 386이여,
만루 홈런 추억을 잊고 상큼한 1루타를 노려라
시사IN [24호] 2008년 02월 25일 -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내가, 내 자신이 포함된 386 세대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이었던 것은 같은 세대에 대한 사랑 때문만이 아니었다. 우리 세대의 독특한 특징이 있었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선 386 세대는 ‘사회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을 집단으로 체험했다는 점에서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캠퍼스에서 감옥으로, 농촌으로, 빈민촌으로, 공장으로 들어갔다. 나 개인의 소시민적 삶을 위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보다는 사회 개조를 위해 투신했다.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내 개인의 삶은 희생시킬 수 있다는 그 체험은 몇몇 선구자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유행’이었다.
또 하나, 386 세대는 승리를 집단으로 체험했다는 점에서 나라의 자산이 될 만하다고 보았다. 1987년 6월항쟁이 대표적이다. 군부독재와 싸워 이겼다는 승리감, 그것은 386 세대가 ‘세상은 우리의 힘에 의해 점점 좋아져간다’는, 역사적 낙관을 가지게 했다.
6월 항쟁과 노무현 정권 탄생으로 '만루 홈런'
그런데 <386 리더 1000명>을 편집하면서 내가 위의 두 가지보다 더 주목한 386 세대의 또 다른 특성이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 새로운 도전에 대한 적응력이었다. 그 단행본을 편집하던 1998년 봄 시점에서 보면 80년대 학번은 그 사이 참으로 다양한 국면의 도전을 받았다. 전두환 철권통치 시기에서 노태우·김영삼 정권의 유화기에 이르기까지. 내 눈에 보기에 그들은 각 분야에서 참 잘도 적응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타고 IT업계에 진출한 모습이다. 다른 세대, 특히 컴퓨터 자판을 배우는 것을 쉽지 않아했던 70년대 학번이 볼 때 386은 다소 얄밉게 보였을 법도 하다. 386은 독재에 대한 투쟁도 잘하고, 정보화 시대의 활동 공간도 선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보화 시대를 상징하는 컴퓨터에 빗대어 386이라는 조어가 나온 것은 그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월은 흘렀다. <386 리더 1000명>에 속한 사람 중에 수십 명이 국회의원이 됐다. 2002년 ‘바보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2004년 탄핵당한 대통령의 복귀 과정에서 386 세대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치 변화의 핵심 실무 동력이 됐다. 그들은 아래로는 20대, 위로는 50~60대의 가교 노릇을 하면서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은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7년 6월항쟁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친 홈런 한 방이었다면, 2002년과 2004년은 온·오프가 연결된, 인터넷 공간과 광화문 네거리에서 날린 홈런이었다. 그것도 짜릿하기 그지없는 홈런이었다. 지지 의원이 단 1명뿐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내는, 국회로부터 쫓겨난 대통령을 다시 복귀시키는 역전 만루 홈런이었다.
그래서 참 복도 많다, 386세대는. 특히 이웃 나라 일본의 학생운동 세대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 60대 전후인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대학생 때 좌파 학생운동을 치열하게 했지만 제대로 승리해본 경험이 없다. 정치 주류가 돼본 적도 없다. 그래서 늘 콤플렉스를 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해봤자 별 수 없다’는, 일본 시민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무기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은 바뀐다’를 체험한 그룹과 ‘해봤자 별 수 없다’를 겪은 그룹의 스트레스 혹은 인생 행복지수는 적지 않게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데 그 복많은 한국 386 세대가, 특히 이들의 생각과 행동에 주도적 영향을 주었던 진보 386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여기서부터 ‘386세대’와 ‘진보적 386’을 구분하고자 한다). 386을 개혁적이고 진보 성향이 강한 세대라고 볼 때 보수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386 세대의 정치 패배를 뜻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대선 결과도 그랬지만 그 과정에서도 진보적 386들은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단체든, 언론계든, 지식사회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자기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 집단적으로 승리를 체험했던 그들은 이제 집단적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왜 그랬을까?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린 것이 2004년인데, 386세대가 주도해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30만명의 촛불시위대가 세상을 뒤흔들던 것이 불과 4년 전인데, 그 짧은 시기에 왜 진보적 386 세대는 팬을 몰고 다니는 홈런 타자에서 관중의 야유를 들어야 하는 무기력한 타자가 되어버렸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다. 나는 그 중의 핵심은 진보적 386이 여러 코스, 여러 구종의 볼을 때려낼 수 있는 진정한 타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386 세대의 응집력은 정치 분야에서 주로 발휘됐다. 홈런의 추억을 되짚어보면 특히 그렇다. 김대중·노무현 두 개혁 정권의 출범은 여러 세대의 합작품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진보적 386이 정치 코스로 들어온 볼을 제대로 때려 담장을 넘긴 경우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에 치러진 4·13총선에서 의회 권력을 보수 우위의 여소야대에서 개혁 우위의 여대야소로 바꿔놓은 것은, 그 과정에서 진보적 386이 대거 배지를 단 것은 ‘짱’출신의 386과 유권자인 보통 386이 결합해 정치 권력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장악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세상은 정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386 세대는 김대중·노무현 두 개혁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보수 세력이 장악해온 정치 권력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 권력을 바꾸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어온 대기업 중심의 경제 권력은 개혁 정권의 잇단 탄생에도 불구하고 끄덕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10년’ 논쟁의 대상이 되는 그 시기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불일치하던 때였다. 두 개혁 정권에서 실시된 경제 개혁은 그 불일치를 일치화하려는 나름의 시도였다. 그러나 그 시도는 겉돌았고 우왕좌왕했다.
진보적 386은 한국의 주도 세력 될 수 없다?
국민 대중은 2004년 탄핵 사태 이후 정치에서 경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도, 그 정권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는 진보 386 정치인과 지식인도 정치 민주화 이후의 경제 개혁 청사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데 기여한 그들은 한국 사회의 물질 토대인 경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서도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자만감에 빠져 있었다. 정치 권력이 만들어낸 거품에 나른하게 안주해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연패하면서 거듭 민의의 경고를 받았지만 국회에 가 있는 진보적 386 정치인 누구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우린 다시 역전 만루 홈런을 칠 수 있어! 하는 막연한 자만심뿐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은 그래서 대중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좁혀보면 진보적 386 정치인에 대한 일반 386의 심판이다. 대중은 개혁적 정치 권력이 보수적 경제 권력을 어설프게 개혁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경제 권력의 색깔에 맞는 정치 권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는 분명하게 말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 사회의 경제 권력을 어떻게 재편 혹은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 대안 없이는, 그것을 주도하는 세력이 진보적 386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진보적 386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도 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만만치 않은 것이 어디 경제뿐인가? 이게 민주화의 역설이지만, 386 세대가 중심이 돼 정치민주화를 이뤄낸 지금 정치민주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그다지 높지 않다. 대신 대중의 관심은 교육·문화 영역 등으로 매우 다양화돼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삶의 질이 어느 때보다 중시되었다. 상대편 투수의 구종은 날로 다양해진다. 타자는 옛 폼의 문제점을 깨닫고 있을 뿐 아직 효과적인 새 자세를 만들지 못하는데 말이다.
여러 처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루 홈런에 대한 추억을 잊자, 이제 깨끗한 1루타를 노리자, 그래서 10년 뒤를 다시 준비하자. 광화문에서 30만명이 모여 만루 홈런을 치는 시대는 이제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각자 자기 삶의 터에서 배트를 짧게 잡고 상큼한 1루타를 때리자. 이제 힘 빠지는 100m 달리기를 반복하진 말자. 상황에 몰려 어설프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느린 속도나마 마라톤을 뛰는 심정으로 앞을 내다보자, 10년 뒤를 다시 준비하자.
국회의원 자리는 정치 지망생에게 넘겨라
지난 대선 때 여권의 한 386 정치인에게 물었다. 국회에 들어간 진보적 386 세대 의원이 수십 명인데 왜 지난 4년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나? 답은 솔직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국회의원으로서 관성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와 관계 맺기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386 의원이 대부분 다시 이번 총선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게 또 한번의 ‘힘만 빠지는 100m 달리기’라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다른 선택도 있을 것이다. 심신도 너무 지쳐 있을텐데, 국회의원 자리는 다른 넘쳐나는 정치인 지망생들에게 넘겨주면 어떤가. 정치권에서 충전이 아닌 방전의 삶을 살고 있다면 각자 삶의 영역으로 돌아가 차분히 깨끗한 1루타를 노리는 게 어떤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작고 옹골찬 실적을 서로 나누는 대안사회연구소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10년 뒤를 다시 준비하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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