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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세대 아이콘 100

1996년 8월, 내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298세대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2. 7.


<독설닷컴>에서 화두를 던진
298세대론에 대해서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층
1970년대생, 1990년대 학번 이야기)
김상철님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386 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298세대론을 함께 써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해야죠.
기고 대환영입니다.)




1996년 연대사태. 학생들이 '우리는 집에 가고 싶다'는 글을 써서 들어 보이고 있다. 뒤에 유리창에 '엄마 배고파'라는 글귀가 보인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연대사태'라는 1980년대적 상황을 겪었던 96학번 분이 글을 한 편 보내왔습니다.
서태지니 엑스세대니, 소비대중문화의 첨단을 달리던 이들에게 갑자기 들이친 '연대사태'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 광주로 되돌아간 듯한 낯선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아본 분이라면 그런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읽으면서 공지영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지영의 겉멋보다 훨씬 진솔해서 좋았습니다. 
이 글이 96학번 건축학부님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씻김굿이 되었으면 합니다.
96학번 분들, 특히 '연대사태'를 직접 경험하신 분들은 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연대사태 당시 정문 대치 모습.





1996년, 내 인생이 꼬여버렸다



(글 - 96학번 건축학부생)



298세대라...386에 무시당하고 88세대에게 치이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어중간한 세대, 그다지 뚜렷한 영광과 시련도 없는 우리사회에서 무색무취한 세대의 대명사 정도 되겠네요.
 


구체제 호황기의 소비계층 대명사 엑스세대의 끝물, 김영삼 세계화 시대의 새싹, IMF시기에는 군대에 격리, 제대 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등등...얼핏 떠오르는 기억의 실마리들인데, 아무튼 96학번 건축학부생 기준으로 써 봅니다. 298세대가 겪었을 만한 것들을 연도별 키워드로 뽑고 제 개인적인 코멘트를 달았습니다(제 기억에 의존하여). 
 


1992년 - 서태지1집, 넥스트 1집, 일본만화 열풍(북두신권 시티헌터 드래곤볼 등등), 여명의 눈동자, 홍콩영화 전성기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자리 잡는 시기였죠. 더불어 일본만화가 개방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워크맨의 보급과 함께 중고딩들이 본격적인 문화소비자로 떠오르던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참 어린마음에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던...말이 필요 없는 드라마였죠. 코 묻은 돈으로 OST까지 샀었는데 표절로 판명되었습니다.ㅠㅠ
 


1993년 - 고등학교 입학, 내일은 사랑 (KBS 이병헌), 듀스 1집, 슬램덩크, 엑스세대열풍, 트윈엑스 화장품 광고(최대 히트광고, 이병헌, 김원준), 최초 수능실시(1994년도 입시. 연 2회 실시).
 


말 그대로 엑스세대 열풍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고딩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죠. 이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속 이병헌이 절 건축의 길로 인도(?)합니다. 수능이 처음 실시되었는데 1,2차 난이도 조절실패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결론은 연 1회로 축소. 
 


우리지역(모 광역시) 고등학교 전부가 저희 때부터 우열반을 실시했습니다. 철저하게 성적순으로 전 학년을 A,B,C 세 등급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A반은 서울상위권 본고사 대비반, B반은 중위권 수능반, C반은 나머지들.... 같은 반이지만 수업은 이동식 수업이었습니다. 물론 교재도 수준별로 달랐습니다. 지금 이런 학교가 있으면 사회면에 날 법도 하지만 그때는 조용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비인간적이었던......
 


1994년 - 마지막 승부 (MBC 장동건,심은하), X파일 첫방송 (KBS),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붕괴, 아현동 가스폭발, 1995학년도 수능(연1회로 변경-전년 난이도 조절실패)
 


참 다사다난 했었던 1994년이었네요. 우리세대가 구체제의 혜택을 받은 마지막 세대이자 구체제의 추악함을 똑똑히 본 첫 세대가 아닐까 하네요. 마지막 승부, X파일의 첫방송...아주 죽음이었습니다.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로 농구인기가 최고 절정이었죠. 남자들 대부분 농구화 착용.
 


1995년 - 삼풍백화점 붕괴 , KINO 창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모래시계 열풍, 1996학년도 마지막 대학별본고사실시(이후 폐지).


역시 최악의 한 해였습니다. 말이 필요 없죠. 구체제 추악한 모습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요. KINO가 창간하면서 바로 스크린, 로드쇼에서 KINO로 갈아탔습니다. 고3때라 모래시계는 못봤네요...나중에 봤지만..
 


1996년 -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삐삐. HOT 데뷔, 남자셋 여자셋 (MBC), 김광석 자살, 서지원 자살, 노수석 사망(연대 법학), 815 연대항쟁, 노동법 파동,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연초부터 연예인들 자살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특히 꽃미남 서지원의 자살은 우리세대 여자분들에게 큰 충격이었죠. 김광석은 제 바로 윗세대에게 충격이었겠고. 
 


고등학교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삐삐를 드디어 구입합니다. 1010235, 1004, 8253 자주 쓰던 숫자표시였죠. 더 있었는데 다 까먹었네요. 생각이 안나요.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왔습니다. 주택 200만호 건설신화(?)와 이병헌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건축학부생의 ‘졸’ 멋진 모습에 홀딱 빠져 우수한 성적(?)으로 건축학부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유사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학부체제 초창기의 희생자였죠. 이 시기에 각 학교마다 ‘학교 발전 비전’이라는 것을 앞다퉈 선포합니다. 그 비전이라는 게 학교건물 몇 개 더 신축한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캠퍼스의 공사판화가 시작됩니다. 결론은 등록금 폭등.. 학부제 초창기라 말 그대로 ‘개판오분전’이였습니다. 몇 개의 학과를 준비 없이 통폐합하고 나니 커리큘럼이 꼬여버린거죠. 95학번이랑 96학번이랑 커리큘럼이 다르고 전공학점비율도 달라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복학하고나니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는..



이전 학과들은 학과들 나름대로 밥그릇 챙기랴. 애들은 뽑아놨는데 준비는 안 되어있고. 학부 1기 95학번들은 열 받아서 대부분 군입대했고 96학번들은 완전 ‘나가리’... 꽃 같은 새내기 시절을 94,95학번 다 건너뛰고 90,91,92,93 예비역 아저씨들이랑 같이 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학부회장도 1명이 아니라 건축학과, 건축공학과 별로 따로 뽑아 2명인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나마 인원수 적은 우리학부는 다행이고 다섯 학과가 통합된 전기,전전, 제어 이런 학부는 같은 학번끼리 얼굴도 모르는 모래알 학부로 재탄생하게됩니다.



아무튼 학년별 대면식도 건축학과, 건축공학과별로 따로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학부엠티도 따로 갈 뻔 했었네요. 가장 즐거울 새내기 첫 두 달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각 학부별로 개판인지라 동기 대부분이 동아리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전 기숙사 룸메이트 형의 꼬임으로 찾아간 게 노래동아리였는데, 알고 보니 민중노래패였네요(그런데 오디션을 왜 대중가요로 봤을까요?). 동아리에서 나름 즐겁게 한 학기를 보냅니다. 여차여차해서 한학기 무사히 마치고 농활 갔다가 고향집으로 고고싱. 



문제의 96년 8월, 범민족대회



옥상의 학생들과 대치한 전경들.

김영삼 정권이 연대에 학생들을 가둬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물론 저희 동아리 학우들도 대부분 갇혀버리죠.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 갇히고 동아리 전원이 갇힙니다. 여기서 문제는 가장 큰 희생자가 새내기들과 여학생이었다는 겁니다. 같이 간 동아리 사람들 중에 제 동기 대부분이 불구속되었고 한명은 구속까지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TV에 나와서 연대 가서 쇠파이프 들고 생난리를 치고...


여기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연대에 있었던 자와 없었던 자. 연대에서 빠져나온 자와 남은 자. 데리고 갔었던 선배들과 따라갔던 새내기들..또 진압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학우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없었던 자의 슬픔’과 ‘빠져나온 자’의 슬픔을...느껴야 했습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회관에서는 연대진압 장면이 줄창 상영되었고, 구속학우를 위한 바자회가 열렸고, 재판참관으로 바쁘게 생활했습니다(결론은 ‘학고’ 맞고 군대가는 것이었지만).



가을학기는 패배감과 허무함 속에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동아리 특유의 끈끈하던 유대감도 희미해져 버린 것 같았고, 선배들과의 관계는 뒤로 하더라도 동기들 간의 관계도 처한 상황에 따라 갈리더군요. 선배들을 옹호하는 자와 비난하는 자. 그냥 눈물 흘리는 자.. 조용히 떠나는 자와 남는 자.


경찰에 진압당한 후 학생들이 끌려나가고 있다.


갓 입학한 새내기가 뛰어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벽을 만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도 답은 안나오네요. 동아리방에서 불 꺼놓고 조용히 흐느끼던 여자 동기녀석 얼굴이 새삼 떠오르네요. 


 
결론적으로 엑스세대로 대변되는 사치, 향락이나 캠퍼스의 낭만은 96년 8월을 기점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제 기준으로다가....1996년도 한총련 의장님은 뭐하시려나? 한 번 찾아봐 주세요.


1996년 연대 사태 당시 진압된 학생들이 포승줄에 묶이고 있다.



1997년 - 군입대, IMF, 김대중 당선



1996년의 쓰라린 기억을 뒤로 하고 ‘학고’와 함께 입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길...전경차출.. 완전 드라마 찍습니다. 경찰학교에서 연대집압장면을 다시 보여주더군요...정반대의 입장에서.. 쇠파이프에 쪼개지는 방패와 터지는 화염병. 끌려가는 대원들...여기저기서 한숨소리와 함께 욕설이 튀어나오더군요. 이 프로파간다의 진수를 맛 본 여러 명의 동기들이 전의(?)를 불태웁디다. 물론 저도 순간적으로 두 주먹 불끈(인간은 참 단순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 메가톤급 핵폭탄이 한반도에 터집니다. IMF. 김영삼이 거덜낸 대한민국을 김대중씨가 이어 받습니다. 군대에 격리된 상태라 세상물정 모르고 무덤덤한 상태였습니다.
 


1998년 - 나라살림 거덜, 건설회사 줄도산, 금모으기, 박찬호, 박세리, 노동자 파업, 딴지일보 창간, 스타크래프트 출시. 
 


노동자 파업의 절정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국 방방곡곡 안가본데가 없네요. 결론은 노동자 아저씨 쇠파이프 맞고 경찰병원행.. 이후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고 무덤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9년 - 군대 제대, 동창찾기 열풍(아이럽스쿨,다모임), 다음 카페 열풍, 다단계광풍.

아이럽스쿨인지 아이럽동창인지 아무튼 열풍이 붑니다. 저도 몇 번 만났는데 아이럽동창 단계까지 못가고 학교만 줄창 사랑했었던 기억이..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단계 광풍이 휘몰아 칩니다. 물론 저에게도 다단계의 마수가...학교 친구 중 한 놈이 알바자리 있다고 연락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그 놈한테 걸려든 동기 놈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2000년 - 복학



새천년을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복학하려했으나 엄청 뛰어버린 등록금고지서를 보고 눈알이 뒤집혀버립니다. 복학 후 만난 학부선배들이 자기들처럼 피 보지 말고 수능 다시 보라고 적극 권유합니다. 실제로 몇몇이 수능을 다시 보고 의대나 약대 진학해버립니다(독한 놈들. 부럽당). 운동권 동아리는 거의 다 몰락했고 1학년 때 본 총학 선배들이 그때까지 학교에서 운동 중이었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는데, 노무현이 ‘전 국토의 공사판화’를 해준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저는 후배들 앞에서 ‘이 직업도 할 만 하다. 열공하라’고 격려하게 됩니다.



노무현 후반기로 가면서 좀 기우는가 싶더니, 40년 삽질 ‘쥐박 선생’ 당선되면서 대운하가 선포됩니다. 우리 회사는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저도 은근 기대를 걸도 다시 한 번 학교후배들을 독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젠장, 2008년 회사는 휘청하고 펀드는 반토막나고 결혼자금은 굿바이(차라리 솔로인 게 속편함)입니다. 올 송년회도 불참예정.



(2000년 이후 중요한 일은 다음 정도인 것 같습니다.) 

 
2002년 - 월드컵, 노무현 당선
2003년 -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대학교 졸업, 취업, 청계천 복원 실시, 카드대란
2004년 - 대통령 탄핵, 뉴타운 실시
2006년 - 부동산 폭등
2007년 - 펀드 열풍. 이명박 당선
2008년 - 나라 전체가 휘청



글재주도 없는데 간만에 글을 쓰려니 머리가 띵하네요.. 제 과거를 총정리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나머지 년도는 저번에 썼던 글이랑 비슷합니다. 1996년도 추억에 너무 심취해서 갑자기 소주가 땡기네요.. 1996년도 이후의 기억은 어찌된 일인지 희미해져있네요. 역시 1996년 8-15의 기억은 내 인생의 트라우마인가 봅니다.


'298세대 아이콘 100'은 <독설닷컴>의 야심작입니다.
6개월여에 걸쳐 100편 내외의 글로 298세대를 총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기고 대환영입니다.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