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무산,
3번의 재선거,
1번의 탄핵.
파란만장했던 서울대 총학 선거...
'서울대 선거뉴스' 팀의 박은하 기자가
최근 6년간 서울대 총학 선거를 분석한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박은하 기자는 올해 서울대 총학 선거도
분석하는 글을 보내줄 예정입니다.
김진섭, 올해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당선자. |
박진혁,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
선거는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80년대 한국의 대학사회는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학생회 조직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 점은 오히려 민주화된 공간에서 대학사회가 쉽사리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대안적인 학생상을 만들어내려는 노력 역시 꾸준히 시도됐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변화된 학생상에 걸맞는 새로운 학생회에 대한 구상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던 것이다.
최근 6년간 서울대의 총학생회 선거는 기록만 봐도 매우 파란만장하다. 2번의 무산. 3번의 재선거. 2006년에는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장 탄핵이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2000년대 이후 학생사회의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지속되는 산고는 변화를 위한 멈추지 않는 고민이 존재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지난 6년간의 파란만장한 선거사는 결국 2000년대의 학교는, 학생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의 역사였다.
46, 47대 ‘네트워크 학생회론’ (2003~2004) :
수평적 교류와 연대의 매개체. 하지만 그 알맹이는?
제 46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비운동권 선본 ‘학교로’는 ‘네트워크 학생회’론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학교로>는 학생들과 유리된 기존의 거대 담론 중심의 학생회를 비판하며, 학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수평적 교류를 매개하는 네트워크로서의 학생회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실제 학교로 구성원들은 생협, 스누라이프, 도서관자치위원회, 『서울대저널』,밴드 등 서울대 내의 다양한 집단에서 활동경험이 있었으며, 제 46대 총학생회는 축하사(축제하는 사람들), 예자위(예산자치위원회)에게 총학 권한을 대폭 이양하여 각 자치단위의 자율적 활동과 교류를 대폭 지원했다. 또한 학내 인디음악 지원에서부터 이라크 파병반대 동맹휴업 성사(2003)에 이르기까지 여러 집단의 관심을 반영한 다양한 활동들을 성공으로 이끌어 호의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학교로>에게는 한계도 있었다. 막연한 소통은 강조하지만 정작 소통의 내용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알맹이 없는 네트워크’라는 비판(제 47대 <좋은대학> 정책자료집)이 제기되었다. 확실히 ‘학교로’는 도서관 개방 문제와 같은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학교로’ 내부의 이질적 집단의 공존은 때로는 네트워크 자체에 의해서라기보다 뛰어난 개인의 중재능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선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제 47대 학생회 선거가 투표율 50% 미달로 재선거를 치러야 했던 점은, ‘네트워크’가 학생들의 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다시 높여주지 못한다는 쓰린 실패를 반영했다.
하지만 <학교로>의 시도는 기존 학생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으며. 특히나 비권을 표방하는 학생회에게 여전히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이전에도 비권 학생회는 있기는 했지만, 학생회 자체를 조롱하고 희화하기보다 뚜렷한 대안과 철학을 제시한 선본은 <학교로>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교로’는 여러 가지 숙제를 내 놓았지만, 최근 총학 선호도 조사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총학으로 평가받기도 했다.(2007년『서울대 선거신문』)
48대(2005) :
신자유주의 반대와 여성주의로 정면돌파. 하지만 합의 없는 동원의 실패
2004년 11월에 있었던 총학선거는 최근 몇 년간의 선거 중 그 어느 때보다 이슈대립이 분명했다. 2년차가 된 <학교로>의 ‘네트워크 학생회’에 대한 평가가 진행됐으며, 2004년 서울대 여름농활 성폭력 사건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논쟁도 활발히 일어났다. 이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선 선본은 당시 대장정(현 전국학생행진) 계열의 학생정치조직 <Q>였다. 90년대 이후 학생사회의 위기를 ’학교로‘는 네트워크 학생회론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면, Q는 ’신자유주의 반대와 여성주의‘라는 새로운 정치담론을 적극 수용하여, 당시 선거국면을 정면돌파했다. 기존 ’운동권 선본이 학생들의 삶에 유리돼있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학점취소제‘와 같은 교육관련 공약에 특히 주력한 것도 효과를 보았다. 특히 제 48대 총학생회장 정화 씨는 서울대 최초의 여성총학생회장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Q>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부를 상대로 교육권 이슈 투쟁에 주력했지만, 학우들의 충분한 동의없이 투쟁의 현장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05년 3월 비상총회가 의결을 목전에 앞두고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휘말려 실패하자, 오히려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학생들은 환멸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생정치조직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올해 치러진 52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작년에 이어 실천가능 선본이 당선되었다.
49대 (2006) :
환멸과 실망 속에서 태어난 '시대의 아들'
2005년 총학선거에서는 이단아가 등장했다. <Suprise> 선본의 황라열․ 송동길 후보가 바로 그들이었다. 선본명의 철자도 틀렸거니와, 정장차림으로 격식을 차리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후보들은 캐주얼하고 언뜻 무성의해 보이는 차림으로 일관했으며 선본원도 모집하지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퇴하겠다’는 자퇴공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선본이 첫 선거에서 득표율 1위를 달성했지만, 2위와의 득표차가 오차범위 내에 머물렀기 때문에 결선투표까지 치렀고, 이듬해 3월 다시 벌어진 재선거에서 진짜로 당선되었다.
<Suprise>의 당선은 철저히 기존 학생정치조직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빚어낸 결과였다. 학생정치조직에 반감을 가진 학생들은 학생정치조직 중심의 기존 선거문화를 완전히 조롱하는 황라열 후보에게 오히려 열광했다. 49대 총학생회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기존 운동권 문화와의 결별을 수행해나갔다.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관용적 수식구를 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삭제했고, 도서관을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아크로 집회를 금지했고, 4.19 행진 등 이전까지 총학이 아크로에서 주관했던 각종 행사를 보이콧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들 역시 학우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 학내는 그 어느 때보다 논쟁으로 들끓었다.
가장 극적인 사태는 2006년 6월의 탄핵이다. 본래 사건은 총학생회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바다이야기’의 제조업체 지코프라임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아도 될 것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촉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회장 황 씨가 지코프라임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특히 이 사실은 선거 과정에서 그의 독특한 여러 이력에 포함되지 않아, 의도적 사실 은폐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퍼졌다. 이후 학생회장의 경력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이를 해명하기 위한 언론사 연합 청문회가 벌어졌지만, 학생회장의 불성실한 태도는 학내의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결국 몇 가지 경력조작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자, 전학대회 공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됐고, 대의원 3/2 이상의 출석 및 과반 이상의 표결로 탄핵이 성사되기에 이른다.
비권을 넘어서 반권을 표방했던 49대 총학이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49대 총학이야말로 학교를 공론공간으로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재임 내내 아크로 집회 문제, 4.19 행진 보이콧 문제, 탄핵 문제, 심지어 탄핵 이후에는 전학대회의 민주성 문제 등으로 학교 전체가 항시적 ‘만민공동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만큼 학내 곳곳에 붙은 자보와 이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격렬하게 토론하는 광경을 자주 보기란 당분간은 어려울 듯 하다.
50대 (2007) :
비권과 학생정치조직의 치열한 난투 끝의 조용한 탄생
50대 총학 선거는 다수 후보의 난립과 난투로 기억될 것이다. 2006년 11월에 열린 선거에서는 비권계열 3개, 학생정치조직계열 4개를 포함한 총 7개 선본이 출마했으며, 투표율 미달성으로 이듬해 3월에 열린 재선거에서도 비권계열 3개 학생정치조직계열 4개가 출마해 총 7개 선본에서 14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덕분에 학교는 리플렛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정작 학생들은 무관심했다는 사실이었다.
50대 선거는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복지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치러진 선거이기도 하다. 비권 선본들은 하나같이 ‘탈정치’를 내걸며 ‘복지’ 담론을 내세웠으며, 학생정치조직들은 등록금 문제 등 교육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비권 선본의 복지담론이 ‘VIPS할인’ 등과 같은 소비지향적 담론에만 머물러있다는 비판을 받게되자 지지는 한풀 꺾였고, ‘대학국어 S/U제’라는 매력적인 공약을 걸고 나온 전국학생행진 계열의 <SPOTLIGHT>가 결국 당선이 되었다.
50대 학생회는 2007년 한 해를 큰 이슈도 문제도 없이 무난하게 넘어갔다. 어쩌면 그 이유는, 모두가 이제 싸우는데 지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여 간의 극적인 변화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한편으로는 합의점을 찾고자 하는 열망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 선거뉴스'는 올해 대학 총학생회 선거 보도에서 단연 발군이었다.
51대 (2008) :
탈정치 이상의 담론을 찾아낸 비권. 그러나 그 이상을 고민해야
51대 총학에 당선된 <실천가능> 선본은 적어도 ‘탈정치’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진화된 비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탈정치’도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시각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실천가능>은 총학생회의 실천성과 절차적 민주성을 담보로 하는 학생사회의 신뢰회복을 주장했다. 나름의 대안적 학생회상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안적 학생회상에 대한 논쟁은 아직 남아있다. 51대 총학은 ‘일은 잘 했지만 거시적 안목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애초에 실천 가능한 ‘행정적 사안’들에만 천착해, 오히려 학생회의 존재 의의를 매우 협소한 차원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51대 총학생회의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졌던 사건은 지난 6월의 ‘촛불집회참여 총투표 및 동맹휴업’이었다. 학생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뒤늦게나마 총투표를 실시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가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히 학내 행정서비스에 만족하는 것 외에도,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반응하고 공론영역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 역시도 학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 의미가 얽힌 공간이다. 학습의 공간이기도 하고, 연구의 공간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일터이다. 1만 7천여 명의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자 거대한 소비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한편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지역사회의 일부이자, 관악산 자락의 일부이기도 하며, 한국의 대학사회라는 사회적 지형에 위치한 상징공간이기도 하다. 학생회의 구성은 이러한 다양한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답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은, 삶의 지표는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6년간 당선된 총학생회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서울대 내 학생들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존재양상을 반영한다. 그러니 파란만장함도 때로는 나쁘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말이다. 다만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선거는 자기 자신의 실존에 물음을 던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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