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대학 총학 선거 감상법’의
마지막 기고글로
‘서울대 선거뉴스’팀으로 활동했던
박은하님의 글을 올립니다.
올해 서울대 총학 선거 분석이 빠져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는데,
막판에 ‘조용필’이 나타났습니다.
올해 서울대 총학 선거 분석과 함께
촛불이 서울대생의 의식에 미친 영향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한 좋은 글입니다.
(글 - 박은하, 서울대학교 4학년)
촛불 이후의 대학생을 말하다
촛불정국, 20대 언니 오빠들이 어디에 있었냐면...
우선은 지난 촛불 집회 초반에, 왜 10대들이 20대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다. 바꿔 말하면 10대에 비해 20대들이 촛불정국 초반 이를 주도하지 못하고 10대들에게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는가 하는 물음이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20대들의 무기력함과 이기심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은 거 같다. 무기력함의 상징이 된 지금의 20대들이 6년 전, 월드컵 거리응원을 주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답은 어쩌면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10대들이 광우병 쇠고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급식을 통해 그들이 가장 먼저 먹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그 인식을 서로 나눌 ‘공동체’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촛불집회에서 보았던, 10대들의 폭발적 열기를 볼 수 있었을까? 10대들은 매일같이 학교에서 한 반으로 묶여 억압적인 생활을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억압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불만을 나눌 수 있는 끈끈한 공동체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한 반의 몇몇만이 촛불집회를 참여했더라도, 그 경험은 빠르게 공유될 수 있고, 열기는 폭발적으로 점화될 수 있었다. 반면 20대들이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교실과 달리 현재의 대학이란 그러한 공동체의 역할을 못하는 데서 연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20대들이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7,80년대의 저항운동과 달리 ‘대학’의 이름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20대들은 정치적 담론을 나누고 이를 공유할 공동체로 대학이 아니라 ‘아고라’, ‘소울드레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택했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학내 분위기가 보다 경쟁적으로 변하고, 더욱이 광역화 이후 ‘과’와 같은 학내 기본 커뮤니티의 연대감이 느슨해진 대학이 더 이상 사회적 담론을 고민할 공간으로서 자리하지 못한다는 점이 큰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촛불정국 후반기로 갈수록 20대들이 다시 대학이라는 공동체로 회귀했다는 점은 짚어볼 만 하다. 집회에서 총학생회 깃발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고, 촛불집회가 오랫동안 괴리되었던 총학생회와 학생들을 묶어주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총학생회 선거가 진행된 지금, 각종 언론이 촛불 경험 이후의 대학생들과 총학생회를 주목하고 있다. 촛불은 정말 대학 사회에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대학생은 촛불을 통해 각성되었나? 이 모든 문제에 합리적인 답을 하려면 애초에 제기했던 근본적 문제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대학은, 촛불을 통해, 20대들에게 정치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의미 있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났는가?
서울대학교가 기억하는 촛불의 추억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각 학교 총학생회에서 운동권 총학생회가 속속 복귀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지만, 이를 촛불과 직접적으로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촛불과 총학생회의 변화에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촛불집회의 경험을 통해 총학생회가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이라는 견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 그러한 판단이 투표로 이어져야 수긍할 수 있다.
52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촛불 정국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선거였다. 서울대 51대 총학생회는 ‘비권’을 표방했던 <실천가능>이었다. <실천가능>은 총학생회의 역할을 학교생활에서의 학생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는데 있다고 보고, 이와 관련 없어 보이는 정치적 활동 대신 학내 문제에만 주력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펼쳐 당선되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실천가능>은 대학신문에서 조사한 선본 성향 조사 설문에서도 FTA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총학생회에서 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총학은 비권이고자 하나, 시대는 총학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던 듯 하다. 51대 총학은 공약대로, ‘낙성대역 셔틀 신설’, ‘수강신청 최대학점 확대’, ‘남학생 휴게실 실설’ 등의 활동을 수행했지만, 정작 학우들의 뇌리에 가장 강력하게 남은 것은, 결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촛불집회 참여문제였던 것이다.
52대 선거를 맞이하여, 서울대 선거뉴스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51대 총학생회에서 추진한 17개 정책을 나열하여, 이 중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못 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 각각 복수응답하라고 설문을 구성했다. 그러자 그 결과, 총학생회에서 잘 했다고 생각한 일에 ‘촛불집회참여’가 수위에 들었지만, 못 했다고 생각한 일에는 ‘촛불집회참여’가 아예 1위를 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사유가 재미있다. 누군가는 설문지에 직접, 누군가는 심층인터뷰를 통해 밝혀주었는데, “촛불집회참가는 잘 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너무 미적거렸다, 적극적이지 않았다”가 51대 총학의 촛불 정책을 비판한 가장 주된 근거였다. (촛불집회참여가 잘 한 일 1위를 했다는 것과, 다만 학우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는 <시사IN>의 보도는 다소 오류가 있다는 점을 밝힌다.)
실제로 광우병 파동이 터진 직후 총학생회에서는 서울대 학생식당에서는 논란이 가라앉기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겠다고 즉각 선언했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학생들이 건강 문제는 엄연히 ‘학내’사안이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FTA와 마찬가지로 찬반을 떠나 ‘총학생회가 개입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5월말부터 촛불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을 무렵, 학내에서는 스누라이프나 총학생회 게시판을 중심으로 서울대 차원에서도 촛불집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총학에서는 ‘합의되지 않은 정치적 사안에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이유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총투표를 통해 학우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는데, 이 역시 여러 가지 절차적 이유로 총학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 사이 동아리 연합회나 학생정치조직들이 촛불집회를 다녀오며 그 결과를 자보에 내기도 하고, 총학생회 역시 참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총투표가 실시되었지만, 참여를 독려한다기보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우리도 여기에 참여 할까요? 말까요?” 식의 단순 물음으로 투표를 진행하여, 책임을 미루는 태도라고 비판받았다.
그러던 것이 전경의 군홧발에 밟힌 여학생이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총학 차원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결국 동맹휴업 및 총투표가 성사되었고, 서울대 총학생회는 6월 4일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성격이 쇠고기 외의 다른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면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총학이 밝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총학의 해석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대 51대 총학은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고,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정치는 없고 행정만 있다’, ‘논쟁이 첨예한 주제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과연 진정한 정치적 중립인가?’하는 비판도 많이 따라다녔다. 대학신문에서는 촛불집회 참여에 관해 모든 학생들의 다수결로 결정하고자 하는 총학을 ‘대의민주제의 책임성’을 모른다고 비판했다.(참고: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725)
올해 서울대 부총학생회장(김진섭, 왼쪽) 총학생회장(박진혁, 오른쪽) 당선자
촛불보다 근본적인 것은 학생회론이다
‘서울대 총학이 찌질해서야 쓰겠습니까?’
지난 11월 관악캠퍼스에는 상당히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자보가 등장했다. 52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로켓펀치제너레이션>(이하 <로켓펀치>)의 선제공격이었다. <로켓펀치>는 51대 총학의 촛불집회 참여 경험을 맹렬하게 비판하며, 선거 초반 주목을 끌었다. <로켓펀치>는 ‘88만원 세대를 극복하는 역
동적 총학’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인들은 2007년에 이어 2008년에서도 비권 <실천가능>을 택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도 51대 총학의 전체적 평가는 ‘대체로 잘함’으로 긍정적인 편이었다. <실천가능>이 당선된 까닭은,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운동권 못지않은 개념 비권’이어서가 아니었다. 서울대인들은 <실천가능>의 일관된 학생회론에 표를 던져 주었다. ‘학생들의 복지 증진 기구’라는 <실천가능>의 학생회론은, 복지를 매우 물질적이고 피상적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운동권 선본은 자신들만의 뚜렷한 학생회상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학우들은 오히려 더 회의적이었다. 물론 <리얼리스트>(행진)는 자치단위의 복원을 말하고, <바로잡기>(615연석회의)는 ‘민중적으로 대학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강조했고, <세잎클로버>(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는 ‘정치와 복지의 이분법은 있을 수 없다’고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냈다. 그러나 80년대가 아닌 21세기 대중대학시대, 또한 청년실업시대, 그리고 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시대 ‘학생회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조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는 기성 언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각 학교에서 ‘운동권 총학’의 귀환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정말 이슈는 촛불이었을까. 서울대 총학선거에서 <실천가능>의 핵심 공약은 ‘군 복무 중 학점이수제도’와 ‘중앙전산실 및 인문대 신양관 24시간 개방’이었다. 전통적으로 서울대에서는 3위를 넘어서지 못했던 민주노동당 계열 <로켓펀치>를 2위까지 밀어올린 추동력은 선거초반의 공세가 아니라, 졸업학기에 그 동안 들은 학점 중 성적이 나쁜 학점을 취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점취소제’였다. 선거 이슈의 핵심은 학점과 관련된 문제였으며, 이 점에서는 운동권과 비권 간에 별로 차별성이 없다. 오히려 비권인 <실천가능> 쪽에서 ‘학점취소제’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요구인가를 묻자, <로켓펀치>에서 ‘학우들은 학점취소를 원한다’는 운동권식 레토릭으로 답하기도 했다.
모든 조직체는 역사적 구성물이며 대학교 총학생회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 총학선거에서 이미 6년 전 등장한 문구이다.(당시 46대 선거 <학교로>선본) 80년대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반독재 대중투쟁에 학생들을 동원하기 용이한 구조로 재편하기 위한 고민에서 오늘의 학생회체제가 만들어졌다. 21세기 학생회는 21세기의 문제의식에서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는, 근본적인 질문, ‘학생회가 정치사회적 역할을 반드시 담당해야만 하는가?’도 포함한다.
실제로 촛불정국에서 어떤 대학생들은 자기 학교 총학생회 대신 인터넷 패션 동호회 ‘소울드레서’를 선택하기도 했다. 총학생회 차원으로 나가는 것과 익명의 인터넷 카페 회원으로 나가는 것에 도덕적 차이가 존재하는가? 오히려 대학 외에서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정치사회적 담론을 논할 수 있게 된 환경의 축복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에는 대학 외의 다른 집단도 이처럼 충분히 ‘운동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학 내에서는, ‘운동권’ 역시 학생들의 취업과 학점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업문제에 보다 속시원히 답하는 ‘비권’을 찍고, ‘소울드레서’의 회원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운동권적 성향의 학생도 분명 존재한다.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대학가 선거의 문법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2008 대학사회, 촛불이 바꾸지 못한 것, 하지만 바꾸어 낸 것
물론 21세기의 맥락으로 총학생회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과거 총학생회에 대한 총체적 부정일 필요는 없다. 오늘의 맥락에 맞게 다시 한번 토론과 논의가 거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촛불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선거뉴스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에 48.5%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와 같은 대답은 올 해에 들어온 08학번들에게서 특히 높았다. (부정적 18.7%) 쇠고기 이슈는 학내 문제가 반드시 정치적 담론과 구분될 수는 없음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총투표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학내에서 적극 토론하고 그 결과를 생산해 낸 경험이 주는 의미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다. 꼭 굳이 총학생회에 반영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촛불이 여전히 바꾸어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 여전히 오늘의 20대들은 대학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공동체여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리라서가 아니라, 대학이 공동체의 의미를 잃어가는 배경에 BK 21로 대표되는 ‘대학의 기업화’와 같은 현상이 있기 때문에 주목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는 촛불을 통한 각성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촛불의 경험이 지속적 문제의식과 결합할 때만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해 내는 총학생회가 등장한다면, 진정으로 ‘촛불총학’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한다.
52대 선거에 당선된 <실천가능>선본은 선거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대학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사회간에 신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총학생회는 우선적으로 합의되기 쉬운 사인인 복지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면서, 학생사회의 존재의미를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학내 기업화나 다른 개별 질문에 관해서는 학생들의 합의를 우선하겠다고 구체적 답을 밝혀주지 않았다. 2008년 촛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촛불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된 선거를 통해 얻어낸 서울대인들의 답이다. 언론과 사회는 이러한 답이 오늘날 대학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춧돌이 될 것인지 좀 더 지켜보았으면 한다.
참고 기사 : 2008/12/12 - [2008 전국 대학 총학 선거 감상법] - 파란만장했던 서울대 총학 선거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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