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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이탈리아의 악몽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KBS 황응구 PD)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6.


'언론장악 7대 악법' 개정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총파업'이 12월26일 시작되었습니다.

<시사IN> 69호에서는
'파업 동참 방송인 6명의 편지' 기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그 중 KBS PD협회 황응구 정책국장의 글을
본인 허락을 얻어 '독설닷컴'에 게재합니다.
(KBS 노조는 파업 참여가 아닌 파업 지지 중)

황응구 PD는 직접 이탈리아를 취재하고 
그 내용을 <KBS 스페셜>을 통해 방송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발 이 글을 읽고
법 개정을 포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가
암울한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글 - 황응구 PD (KBS 기획제작국)



 20세기후반, 이탈리아는 G7의 당당한 일원으로 영국, 프랑스와 함께 유럽선진국을 대표하는 자유와 문화의 나라였지요.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로마의 유적과 아름다운 지중해의 도시들로 꿈과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기민당과 사회당, 공산당 즉 좌우세력의 절묘한 분할로 90년대까지 안정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해 옵니다. 로마와 지중해가 엄청난 관광수입을 거저 주긴 하지만 피아트 자동차와 디자인, 패션 등 수공업을 바탕으로 한 많은 지역 중소기업들이 이탈리아 경제를 탄탄하게 받쳐주었죠. 이를 기반으로 좌우가 균형을 이룬 정치 속에 복지와 사회보장에 상당한 진전을 이룹니다.(이탈리아에서 의료서비스는 외국인까지 무료입니다)



 정치와 문화가 발달한 나라답게 90년대까지 이탈리아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수준 높은 표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언론과 방송에서 정치인을 비꼬고 풍자하는 것이 주류로 자리 잡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을 가진 이탈리아 최고의 재벌 베를루스코니가 권력까지 잡은 21세기 들어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법을 개정해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을 바꾸고 반대파들을 몰아냈습니다. 공영방송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의 방송과 신문을 키워 부패를 수사하는 검찰과 재판부까지 공격합니다. 언론과 권력을 장악한 미디어재벌의 힘은 결국 스스로를 부패수사에서 자유롭게 하는 면책법안까지 통과시킬 수 있게 됩니다. 21세기에 선진국 이탈리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도저히 믿기기 않는 이 일이 2002년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하고 불과 3,4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일단 이사회와 사장을 교체해 KBS를 장악한 1단계가 지났고 2단계로 방송을 재벌과 족벌신문에게 나눠주는 법을 강행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산업적인 논리, 즉 경제 살리기라는 논리로요. 벤치마킹이라도 했는지 정말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똑같이 따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방송의 공공성은 산업과 경제논리로 따질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은 재벌, 족벌 언론이 여론시장을 점령한 현실, 앞으로도 상업미디어가 대세를 이룰 미디어환경에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약자를 돌아볼 최소한의 균형 장치입니다. 백번 양보해도 왜 MBC와 KBS2가 민영화되어야만 방송 산업이 살 수 있는지 정부와 한나라당은 답해야 합니다. (<KBS스페셜-언론과 권력>편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한국의 공영방송 체제가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는 자부심이었습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방송에 나간대로 패배감과 무력감에 빠진 언론인들, 특히 공영방송인들의 모습이 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장 슬프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무기력은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공영방송에 재갈을 물리고 권력과 언론과 재벌이 한 몸이 된 이탈리아에서 중산층이하 서민들은 더욱 무력해졌고 무기력은 사회 전체의 활력을 잃어버리는 악순환을 가져왔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비판과 감시를 통한 여론의 다양성이 경제정의에 기반한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이지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이름이 아닌 게지요.



 KBS뉴스와 시사, 보도프로그램의 현격한 변신을 보셨겠지요. 저는 이제 KBS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다지 놀라지 않게 됐습니다.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재벌과 재벌신문들에게 주고 이탈리아처럼 공영방송이 국영, 관영방송이 되는 머지않은 순간 저 역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영방송인이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체제에 순응하며 보신을 위해 상업적인 경쟁에 나서야하는 일개 피디일 테지요.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이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악에 관심을 가지고 반대할 이유에 작은 보탬이 되길 빌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