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에 서울의 4대 분향소를 모두 순례하고 왔습니다.
맨 처음 조계사 분향소에 갔다가
서울역사박물관 국민장 분향소에 들렀다가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거쳐
서울역 앞 국민장 분향소까지 가 보았습니다.
조계사 분향소
중간에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두 광장은 ‘버스 산성’에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전혀 없고, 현직 대통령만 예우하고 있구나’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시절 치적으로 내세우는 곳입니다.
서울시와 경찰은 이곳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객에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포기한 것이지요.
전경버스로 막은 청계광장
물론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의 운영 주체는 서울시입니다.
그리고 통제하는 곳은 경찰청입니다.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죄부가 주어질까요?
저는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폐쇄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가한 마지막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무현을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옹졸했습니다.
(내년 서울시장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한 것인지, 오세훈 시장이 알아서 기는군요)
경찰들은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지도도 막았다.
예의바른 경찰은 ‘현직 대통령’뿐만아니라 ‘밤의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깍듯이 했습니다.
추도객들이 조선일보(정확히는 코리아나호텔) 앞으로 줄을 서지 않도록 서울시의회 빌딩 앞에서 막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추도객 줄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유턴해서 시청역 안으로 이어졌습니다.
‘밤의 대통령’에 대한 예우 때문에 애꿎은 추도객들이 침통 더위에 생고생을 했습니다.
전의경들이 조선일보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다.
여전히 경찰은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주변을 차벽으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위협적인 진압복을 입고 와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참배하는 추도객들의 인내심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조선일보 쪽 길이 막힌 탓에 시민들은 지하철역 구내로 줄을 섰다.
차벽을 쌓아 막는 것에 대해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경찰버스가 분향소를 막아주니까 오히려 아늑하다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으면 '달인을 만나다'의 김병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향냄새 맡으면서 병풍 뒤에 누워봤어? 안 누워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요.
이 분은 아마 시민이 "잘한다. 잘해"라고 말하면,
"경찰이 촛불집회를 막으니까 오히려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말 꿋꿋했습니다.
정부가 공식 분향소를 서울역사박물관에 세웠지만,
이용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지요.
시설도 좋고, 줄도 짧고, 심지어 의장대가 국화꽃까지 절도 있게 집어주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은 별로 없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설치된 국민장 분향소
가장 많은 곳은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였고,
그 다음이 서울역 국민장 분향소였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국민장 분향소 이용자는 조계사 분향소 이용자보다도 적었습니다.
시민들은 정부가 마련한 공식 분향소보다
초라하고 불편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시민의 힘으로 만든 시민분향소를 선호했습니다.
분향 하나 하는 것에서도 '노무현 정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에 설치된 국민장 분향소
조문을 방해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오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이유만큼 서거에 대처하는 자세 역시 문제였습니다.
두고두고 후유증을 겪을 것입니다.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첫날부터 강압적으로 진압하며 촛불을 껐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촛불을 끄고도 끄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은 껐지만
마음에 품은 촛불은 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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