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씩씩한 척 하느라, 지금 많이 힘들거든요..."
무심코 던진 실없는 농담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반응이었다.
그랬다. 난다 긴다하는 검사들이 '적개심'을 가지고 덤비는데, 얼마나 머리속이 복잡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정도를 걷는 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KBS 이강택 PD가
김은희 작가를 위해 연대의 글을 썼기에 소개한다.
언론종사자들이 김은희 작가를 지켜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강택 PD는 이명박정부의 KBS 장악을 막는 과정에서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지지자가 보내준 텀블러를 들고 있는 김은희 작가. 방송 준비하느라 피곤한 상황이어서, 뒷모습만 허락했다.
나는 고백한다
- 김은희 작가를 생각하며
이강택(KBS PD)
“더빙 당일 새벽, 혹시나 해서 가봤더니 원고를 거의 못 쓴 채 울고 있더래요...”
최근 방송가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PD수첩> 김은희 작가의 근황은 내심 걱정하던 그대로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간수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고통 받다가, 점차 그 규율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의 죄수. 아무리 당차고 씩씩한 그녀라지만 그 내상을 어찌 견딜까...
적의로 가득한 권력의 시선에 의해, 언제든 다시 얼토당토않게 엮여, 만천하에 ‘맨몸’이 공개될 수 있다는 공포. 그 앞에선 작가실도, 가정도 더 이상 안락한 공간이 아니며, 그 정보감옥 하에선 어떤 사적 행위나 대화도 입맛대로 가공돼 전파될 테니...누군들 영혼을 규율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MBC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공개된 메일 문구, 진실은 이렇습니다>를 통해 그녀는 또렷이, 낱낱이 항변하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한참 후 우연히 만난 담당PD와 시니컬하게 주고받은 농담이 마치 정색을 하고 나눈 ‘사전모의’로 각색되고, 세간의 표현에 거리를 두고자 사용했던 따옴표와 이모티콘들이 의도적으로 누락되고, 결코 자신의 뜻이 아닌 구절이 마치 작가 김 은희의 육성인양 억지로 갖다 붙여진 전말들. 아마도 그들 검찰과 조중동은, 적어도 정식 재판이 열리기 전에는, 자신들 이외의 그 누구도 원본을 대조해 보지 못한다는 점을 노렸으리라.
그 글을 다 읽고서 나는 그녀에게 한없이 미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보면 나 자신 80년대에 보안사에서, 무수히 얻어맞으며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쓰고, 그것이 그들에 의해 ‘사건’으로 창조되는 과정을 몸소 겪지 않았던가! <추적60분>을 담당할 때, 얼마 전 재심이 결정된 진도고정간첩단 사건을 다루면서 그들이 어떻게 간첩을 ‘조달’하는지 그 수법을 낱낱이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잠시나마 진실을 헷갈려하다니.
무슨 수를 쓰건 반드시 그녀의 ‘악의’를 입증하고, 그래서 <PD수첩> 제작진들의 ‘악의’를 입증함으로써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채워 넣고, 그것을 대대적으로 공표해 기정사실화할 의도임을 어찌 단박에 꿰뚫어보지 못했던가!
하여, 나는 참으로 아둔하게도 이제야 온전히 분노한다. 진정 악의를 가진 쪽은 검찰과 조중동 바로 당신들이 아니던가? 독사의 새끼들처럼 혓바닥을 날름대며 피에 주려 인격살인을 자행한 파시스트 잔당 그대들이 아니던가? 이것이 당신들이 입만 열면 떠벌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맨 얼굴인가? 진정 민주주의를 말하려거든 생각해보라. 정녕 감시받아야 할 대상은 한 개인이나 저널리스트의 사생활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검찰과 국세청 등 소위 공권력, 온갖 탈법을 일삼으며 자기 신문의 발행부수조차 공개 않는 언론권력, 그리고 그들과 패거리를 짓는 정상모리배들의 행태에 대한 공적 정보이다. 그 실상이 알려진다면 얼마나 악취가 진동할 것인가? 그럼에도 당신들은 어둠 속에 숨어 낄낄대며 시민들을 감시하는 간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꾸로 뒤집힌 시대를 배경으로.
그녀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개인 김은희는 짓밟히더라도 작가 김은희가 열정을 다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의 정당성까지 함부로 짓밟히고 공격받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후배 PD와 이야기하고 있는 이강택 PD(오른쪽)
20여 년을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나는 이 대목을 떠올리며 그 절절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처절한 심경의 일단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방송이 나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며칠씩 날밤을 새운다. 누가 뭐래도 진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저널리스트의 명예요 최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 심정을 알기에, <PD수첩> ‘광우병’편과 관련된 Fact들을 나 역시 줄곧 고민해 왔기에, 나는 선언한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나는 거기에 저널리스트로서 나의 식견과 명예를 건다! 아울러 고백한다. 만약 그 상황에서 다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 나도 거의 유사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불가피하게 몇 가지 사소한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광적으로’ 분노했으리라는 것을.
작가 김은희는 우리 시대의 ‘유태인’이다. 교활한 ‘떡볶이 놀음’과 공안통치의 부활이라는 음험한 이중주 속에서, 그녀를 가두고 있는 원형 정보감옥은 벌써 YTN 노조원들을 또 다른 죄수로 맞아들였다. 바야흐로 허다한 시민사회의 성원들이 ‘빨갱이’의 낙인 하에 고립되어 그 감옥의 수인이 될 것이다. 하여, 그녀가 당한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이 시대 지식인의 죄악이다. 신종 파시즘의 도래를 방관하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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