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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실험실

트위터 follower 1000명을 모은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8. 16.



8월4일에 트위터(http://twitter.com/dogsul)를 시작했으니 아직 채 2주가 되지 않았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참 많은 것을 경험했다.
트위터를 5일 정도 이용한 후에 기사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블로그 악플에 지쳐있던 나에게 트위터는 ‘인터넷 청정지역’이었다.

이미 트위터 신드롬에 대해 소개한 기사는 많이 있었지만 실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커뮤니티의 성격은 어떻고, 어떤 콘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는지를 얘기해 보고 싶었다. 
절절한 경험담을 통해서. 

경험을 좀더 빡세게 하기 위해서 follower 1천명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려면 트위터에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1천명이 그리 어려운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정말 어려운 숫자였다.

처음에 유명인 위주로 following(5천~1만 정도)을 하다보니 그 숫자가 그리 큰 숫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위터 공간은 ‘유명세’가 작동되는 공간이었고, 일반인에게는 한계가 명확했다.
1천명을 설정한 이유는 그 정도 확보해야 미디어로서 유의미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편집국장에게는 기사 마감날까지 1천명을 모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배우 애쉬턴 커쳐와 CNN이 트위터 follower 모으기 내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서
중간에 오연호 오마이뉴스대표(@ohyeonho)와 김철균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saunakim)에게 내기를 걸었다. 
진보적인 이용자와 보수적인 이용자를 대표할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650~750명 정도의 follower가 구독하고 있었다(나는 350명 정도인 상태였다).
오대표는 트위터는 소통의 양보다 소통의 질이 중요하다며 완곡히 거절했고 김비서관은 주춤하다 응했다.

follower 천명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독설닷컴’ 블로그 독자들이 follower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트위터 이용이 아직 일반적이지 않았다.
트위터 이용은 아직 얼리어답터적인 성격이 있었다. 
follower나 내가 following하고 있는 트위터를 보면 1/3 정도가 IT업계 종사자 CEO 혹은 IT담당기자였다.

follwing을 많이 해서 follower를 모으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무턱대로 following을 남발하면 글들을 도저히 얽어낼 수가 없다. 
지금 4백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글이 몰리는 시간에는 솔직히 버겹다. 대체로 점심시간 전후와 자정 전후에 글이 몰리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특히 나처럼 '빅마우스' 위주로 following을 해두면 특히 그렇다.  
(나중에 누가 신규 트위터를 following하면 바로 follower로 붙는다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어쨌든 이 방법은 쓰지 않기로 했다)

내기는, 맥주 1만CC 내기였다.
트위터를 해보니 사람들과 오프라인 만남을 한번 가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마실 맥주값을 내기로 걸었다.
중간에 양광모 소장이 자신과도 1천명 내기를 하자고 해서 그것도 응했다. 안주 내기를 걸고.  

내기 중간에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leegian)이 follower 모으기를 도우며 자신이 막걸리를 낸다고 했다(이 부대변인은 트위터 이용을 계속 권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해 다시 막걸리 한 말을 걸었다.
마감 때까지 1천명을 달성하면 맥주 한 말을 내겠다고. 이것 역시 트위터 이용자와의 오프라인 번개를 염두한 것이었다.

이런 ‘조직표’의 도움도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 노력을해야 했다.
트위터에서 팔로워를 모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팔로잉을 많이 해서 그 사람이 나를 팔로잉하게 하는 일종의 품앗이고
열심히 글을 올려서 팔로잉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후자를 택한 나는 하루 평균 30건의 글을 올리며 매진했다. 

글을 올리면서 되도록 규칙성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유명인 트위터 중에서도 인기 있는 트위터들의 특징을 분석해보니
'일정한 시간에 반드시 나타난다' '일정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퀴즈 등 일정한 방식이 있다'등 규칙성이 있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설문을 돌려보거나, '이외수 어록에 토달기' 등 고정 코너를 만들어 보았다.

그래도 정체상태였다.
김제동같은 유명인은 글 하나 올릴 때마다 팔로워가 2000~3000명 늘어나는데,
나같은 '모글'은 2~3명 늘어나는 식이었다.
메신저 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트위터 이용을 권하기도 해보았는데,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850명~900명 선에서 계속 답보상태였다.

이 무렵 안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트위터가 소통의 공간인데 왜 숫자에 연연하느냐는 것이었다.
트위터는 커뮤니티 속성이 있어서 상당히 섬세한 곳이었다.
follower를 모으는데 연연하는 것은 이 커뮤니티의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트위터는 소통의 공간이지 일방적인 의도를 관철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트위터 공간에서 ‘숫자 밝히는 남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중에서는 follower는 9백인데 following은 그 절반도 안 되는 4백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following은 4백도 버겨운 숫자였다. 2백 정도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시간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자정무렵 등 활발한 시간대에는 글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특히 다른 일을 할 때는.

follower가 1천명 넘는 이용자 중에서 follower와 following 비율이 1:1인 경우는
십중팔구 정치인이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합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무리하게 following을 하고 있다.
충실히 읽어줄 숫자를 벗어난 following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following한 사람은 나를 following한 사람보다 내 글에 댓글을 달아준 사람을 주로 했다.
그들이 소통의 제스쳐를 보내왔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것도 쫓아가기 힘들었다.

기사를 위한 체험에 집중하느라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안티는 빨리 확산되었다. 
트위터가 사랑방과 빨래터의 복원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소문도 빨랐다. 
다양한 태클이 들어왔고, unfollow하는 트위터도 생겨났다.
오연호 선배가 직접 연락해서 이런 기류를 전하기도 했다.
‘독설닷컴’ 매니저 역할을 하는 후배 신호철 기자도 잔소리를 한 바가지 쏟아냈다.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지만 익숙한 곳이 아니라서 사실 조금 위축되었다. 

그러나 블로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가지고 진정성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였다.
몇몇 보수언론 기자들이 내가 트위터에서는 안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 오기도 작용했다.
그래서 궤도를 수정하지 않았다.

궤도를 수정하지 않은데는 트위터 공간에 대한 판단도 작용했다.
기술적인 관심에서 시작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로 생각하는 사람들 외에
진보성향 이용자들이 새로 많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MB OUT을 내건 트위터가 많았다) 이들이 서로 화학적으로 잘 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반응도 의미 있는 성장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트위터 체험 기사를 위해 기꺼이 감내했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만의 트위터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그 중 하나는 단 한 사람에게만 하는 답변은 트위터보다 DM(direct message)을 이용하는 것이 다른 트위터들의 어뷰징을 줄여주는 일이라 것이었다.

여하튼 이런 과정을 거치며 트위터 취재는 열기를 더해갔다.
무작위 설문조사에 응해주는 많은 트위터들이 있었고,
일러스트 구성에 필요한 프로필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는 많은 트위터들이 있었다.
트위터 기사에 필요한 트위터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마감을 30분 앞두고 1천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막판에 소울드레서-화장발-쌍코카페의 햏자들이 ‘조직표’를 동원해 기적을 만들어 주었다.
following을 위해 새로 트위터를 만든 햏자도 몇 명 있었다.
퇴근도 안 하고 지켜보던 인턴 기자와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본 트위터 이용자 등 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었다.
그것으로 트위터 기사 체험기는 종료되었고 나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블로그를 1년 반 정도 운영하면서 많은 화살을 받았다.
그 화살 중 많은 수는 적진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부상과 불법 연행의 위험을 안고 현장을 취재하고,
명예훼손이나 손배소의 위험을 안고 글을 올리는 동안,
조용히 뒤에서 팔짱을 끼고 보고 있다가 비평의 화살을 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받은 상처가 적에게 받은 상처보다 더 깊었다.

그들은 '다름'의 문제를 '옳그 그름'의 문제로 치환한다. 
상대적인 문제를 절대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맹공을 퍼붓는다.
그 까다로운 감식안을 당해낼 사람은 없다.
행동하는 자를 평가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자들의 극성에, 질릴 만큼 질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도 이제 익숙해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이니까.
용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원칙,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훈련하는 과정이었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언론 자유를 위한 싸움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이 글이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그들은 나를 미워할 이유를 더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이글은 그들보다는 1000명 모으기에 동참하며 그 이유를 잘 몰랐던 분들에 대한 설명서다.
연유를 밝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감 마치고는 몸이 퍼져서, 어제는 애랑 놀아주느라 퍼져서, 글이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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