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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I 누리꾼 수사대

'최악의 드레서' 김정일에게서 프라다는 영감을 얻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8. 17.


<타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최악의 드레서'로 선정했다네요.
인터넷판에서 세계 정상 가운데 '최악의 드레서'를 선정했는데, 김 위원장이 맨 먼저 꼽혔다는군요.
5인치 높이의 키높이 구두, 부풀려 올린 머리, 큼지막한 선글라스, 국방색 인민복...이 아니올씨다 라고.
특히 튀어나온 배를 가리지 못하는 인민복을 혹평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최악의 드레서' 김정일 위원장이 입은 인민복이 세계적인 패션그룹 프라다에게는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6년 전 프라다의 Autumn-Winter 시즌 테마는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습니다.
프라다의 전략 거점 매장인 뉴욕 소호 매장을 '아리랑 카드섹션' '사열하는 마네킹' '인민군 비주얼' 등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뉴욕에 출장갔다가, 흥미로워서 관련 기사도 하나 썼습니다.
프라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영감을 받은 이유가 있더군요.
그 사연을 듣고 나니 갑자기 프라다 옷을 한벌 사고 싶어지더군요.
프라다는 왜 '인민복'을 선택했는지, 한번 들어보시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그리고 프라다는 김정일을 입는다?



세계적인 쇼핑 거리인 뉴욕의 소호. 브로드웨이 5번가와 메디슨 가를 제치고 소호 가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쇼핑가로 떠오르고 있다. 맨해튼을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프린스 거리가 만나는 소호의 심장부에 프라다의 뉴욕 중앙매장이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로 루이뷔통과 함께 세계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프라다의 뉴욕 중앙매장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호 분관을 개조한 곳인데, 프라다 본사가 전략적으로 건축한 이미지숍이어서 물건을 팔기보다 프라다의 이미지를 선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프라다의 창의성이 집결된 이 매장은, 그 자체가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 집결체로서 현지 예술가들로부터 웬만한 갤러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 말 완공된 이 중앙매장은 개조 공사와 실내 인테리어에 2천만 달러(약2백40억원)가 넘게 들었다. 램 쿨하스와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공동 설계하면서 이 매장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에서도 가장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AMO팀은 구매자가 자신의 전신 모습을 다양한 방향에서 감상하고 어울리는 옷을 시뮬레이션으로 고를 수 있도록 최첨단 디지털 장비를 동원했다.

시즌마다 내부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는 이 매장의 인테리어가 얼마 전 바뀌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척 낯익은 모습이다. 새로 바뀐 매장의 컨셉트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매장 내벽에는 북한 여성들의 카드섹션 장면을 찍은 거대한 사진이 벽을 장식하고 있고, 곳곳에 인민군 사진이 걸려 있다. 마네킹들은 사열하는 인민군 사병처럼 도열해 있다.

프라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뉴요커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검정색을 바탕으로 한, 평범함 속에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프라다의 미학이 실용적인 뉴요커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기 때문이다. 프라다 뉴욕중앙매장의 새로운 인테리어는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프라다의 미니멀리즘과 간결한 메시지의 사회주의 선전선동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반영한다.

프라다는 단지 패션적인 면만을 고려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뉴욕중앙매장의 주요 컨셉트로 잡았을까?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프라다 제국을 이끌고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내 수공업 수준에 머물렀던 프라다를 세계적인 패션 제국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정치학 박사 출신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당에 몸 담기도 했던 급진 좌파 학생이었다. 한때 여권운동에도 투신했던 미우치아는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로 침체 일로이던 가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스물여덟 살이던 1978년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전문 디자이너 수업을 받지 않은 그녀는 ‘컨셉터’로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프라다의 컨셉트를 명확히 했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 실용적이고, 두고두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프라다는 거품 경기가 꺼진 후 실용적인 패션에 눈을 돌리던 여성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특히 낮과 밤, 정장과 캐주얼, 어떤 상황에도 어울리는 프라다의 핸드백은 그 실용성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1985년 토드 핸드백이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일약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프라다는, 이후 여성복과 남성복을 잇달아 선보였고, 저가 캐주얼 브랜드인 미우미우, 활동적인 프라다 스포츠를 선보이며 실용성 위주의 디자인으로 패션 혁명을 주도했다. 1990년대에 해마다 성장세를 기록한 프라다는 헬무트 랭·질 샌더·펜디 등을 인수하며 20년 만에 세계적인 패션 그룹으로 도약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뉴욕 중앙매장의 주요 컨셉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설정한 것은, 좌경화하고 있는 뉴요커의 의식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뉴욕은 9·11 사태 이후 ‘반부시 감정’이 팽배해 있다. 뉴요커들에게 부시 대통령은 ‘이디엇’(멍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리 곳곳에서 부시의 대외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자를 만날 수 있다.

뉴요커들의 좌경화 성향은 다른 미국 언론에 비해서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욕 타임스>보다도 더욱 진보적인 타블로이드판 <빌리지 보이스>가 무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특성에 맞게 이미지숍을 만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미우치아 프라다가 뉴요커들의 이런 성향을 읽고 부시가 ‘깡패 국가’로 지목한 북한을 매장의 주요 컨셉트로 도입한 것으로 짐작된다.

섣부른 예상일지 모르겠지만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프라다가 북한 인민군 제복을 디자인해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프라다와 군복은 낯설지만은 않다. 프라다를 세계적 브랜드로 이끌어준 소재인 ‘포코노 나일론’은 미우치아가 버려진 군용 물품 공장에서 찾은 것이었다.

(2003년 11월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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