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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9. 3.


‘권위주의로의 회귀’ ‘대량 구조조정’ ‘강한 언론통제’ 를 통해서
대학의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대학 사회의 현실을 짚어보았습니다.



고려대의 시간강사 88명 대량해고에 맞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김영곤씨.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 식으로 표현하면 지금 대학 사회는 ‘권위주의·구조조정·언론통제’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 양심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상아탑이 오히려 사회보다 더 뒷걸음치는 모습이 여름방학 기간에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지난 8월19일 중앙대 학부생 4명과 대학원생 2명은 학교 학생지원팀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한 통씩 받았다. “8월17일 총장실 무단침입으로 인하여 학칙 제15조4호에 의거, 징계 처리할 예정이다”라고 경고하며 사실 확인을 하겠으니 오라는 내용이었다. 중앙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진중권 교수를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직에서 해임한 것에 항의해 총장실을 방문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최동민 독어독문학과 대표는 “총장비서실에 서한 전달을 위해 왔다고 얘기했고 전달하라고 해서 들어갔다. 서한을 놓고 나왔는데 나중에 학교 측에서 ‘약속을 안 잡고 왔으니 무단침입이다’라고 주장했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것은 레드카드였다. 학생들은 서한을 전달하고 총장실에 레드카드를 붙이고 나왔다.

학교 측은 현장을 취재한 한겨레 기자가 블로그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참가자를 가려냈다. 학교 측은 학과 조교를 불러서 동영상을 보고 학생들의 신원을 파악하게 했다. 최 대표는 “졸렬함의 극치다. 징계의 근거가 되는 학칙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총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고 했다. 총장의 진노가 징계 근거냐고 묻자 답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중앙대 학생들은 진 교수를 위해 고별 강의를 마련했다.

당사자인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해임 소식에는 덤덤했지만 학생들에 대한 징계 소식에는 분노했다. 그는 “중앙대에서는 저를 잘랐지만 학생들은 마음속에서 저를 선생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학생들이 안 다쳤으면 좋겠다. 제발 학생들은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일에 훈련이 되어 있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선은 지켜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학습권’ 침해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과 교수들도 진 교수에 대한 일방적 해임을 ‘학문 자율성’과 ‘교수권’ 침해로 보고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오히려 징계 카드로 맞받아치며 문제를 키웠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학과 구조조정과 하남캠퍼스 이전 문제를 놓고 반발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미리 ‘시범 케이스’로 징계함으로써 단속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고려대 88명, 중앙대 60명, 부산대 70명 시간강사 해고

중앙대는 이재오 전 의원, 유인촌 장관, 백용호 국세청장 등 이명박 정부 실세가 졸업한 대학이다. 박범훈 총장 역시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다. 현 정부 실세가 배출된 학교에서 현 정부의 행태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인 대학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다. 지난 8월26일 지난 학기까지 고려대에서 ‘노동의 역사’를 강의했던 김영곤씨(59)가 학교 구내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씨를 포함한 강사 88명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4학기 이상 강의한 자, 박사학위 미소지자’ 따위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해당하는 181명 중 88명을 일방적으로 해임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노동조합 사무국장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의장을 거치고 1800쪽 분량의 <한국 노동사와 미래> 등 여러 권의 저작을 남겼지만 김씨는 ‘강의 부적격자’로 찍혀 해임되었다. 프로 기사 한철균 7단도 이 조건에 해당되어 바둑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영남대와 부산대와 성공회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남대에서는 60여 명, 부산대에서는 70여 명, 성공회대에서는 8명의 시간 강사가 같은 이유로 해고되었다. 김영곤씨는 “2년 이상 고용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현행 비정규직법을 의식한 조처로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상황 파악도 안 된다.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이런 상황에 처한 시간강사 규모가 5000명 정도는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분노하는 것은 대학이 더 이상 털 것조차 없는 시간강사의 주머니를 털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의 지위는 더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최근 10년간 시간강사 8명이 생활고를 이유로 자살했다. 서울대 강사만 4명이 자살했다. 최하위 그룹인 이 시간강사를 희생양 삼는 조처가 벌어지는데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부당해고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시간강사 신세

이번 학기에 임용되지 않은 강사 88명 중에 직접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김씨뿐이었다.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문제를 제기할 경우 찍혀서 교수로 임용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앞에서 만난 한 시간강사는 “울고 싶어도 소리 나게 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형편없는 대우에도 자괴감이 들지만 이런 현실을 하소연도 못하는 것이 더 비참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역시 비정규직 교수인 아내 김동애씨와 함께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 확보를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700일 넘게 ‘노숙투쟁’도 벌이고 있다. 20명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와 아내, 둘뿐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김씨가 시집간 딸에게 용돈을 받아가면서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노동운동가로서, 노동 전문 학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와 그의 아내는 고령이라 제도가 바뀌어도 혜택을 볼 수 없다.

김씨와 함께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을 쓴 아내 김동애씨는 “대학 교원에서 시간강사를 제외한 것은 1977년 박정희 독재정권이 정권에 비판적인 젊은 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취한 조처였다. 그런데 이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처럼 교원 자격이 없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뿐이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요즘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과 함께 용역회사와 ‘폐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한 달에 3만원의 식대 보조금을 받는 아주머니들은 그동안 모은 폐지를 팔아 식대로 써왔다. 그런데 용역회사 측이 등록금 동결로 고대측으로부터 받는 돈이 줄었다는 이유로 폐지 판매금을 회수하려 들자 갈등이 생긴 것이다. 한 총학생회 관계자는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학생들과 더불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해곧된 명지대 일반조교들이 총장실 앞 복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9월2일 이들은 해고 200일을 맞아 촛불집회를 열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조처는 대학이 사회보다 더 가혹했다. 명지대에서는 올해 초 ‘일반조교’ 95명이 한꺼번에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적게는 4년에서 많게는 13년까지 일해온 이들은 사실상의 행정직원이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 해고를 인정하고 복직 판결을 내렸지만 학교 측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일반조교’ 제도를 폐지한 대신 비정규직으로 행정보조원이라는 자리를 만들고 졸업생들에게 지원을 독려했다. 

학교 측은 일반조교의 언로를 차단했다. 대부분이 학교 졸업생이지만 학교 홈페이지에 아이디를 차단했고 심지어 이들을 돕는 학생들의 아이디까지 차단했다. 서수경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장은 “학교 측 임원이, 교수들이 커피 자판기에서 직접 커피를 뽑아 마시면 되는데 불필요하게 일반조교를 두고 있다며 우리를 자판기 정도로 보는 것에 분노했다”라고 말했다. 일반조교들은 총장실을 2박3일 동안 점거한 뒤에야 8월24일 문제 해결에 임하겠다는 학교 측의 답변을 받아냈다.


노조 돕는 사람은 졸업생이든 재학생이든 ID 차단

대학 내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것은 바로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다. 학생 자치활동에 대해 학교 당국이 고압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고려대에서는 출교생들이 법원 판결을 받고 복학했지만 학교 측은 재징계를 진행했고 동국대에서는 총장부속실 점거를 했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에게 유기정학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6월20일, 연세대 총학생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를 열 예정이었다. 그런데 행사 사흘 전 학교 측은 공연 다음 날 2차 사법시험이 있다며 불허 통보를 했다. 공연이 시험 준비에 방해된다는 것이었다. 총학생회가 공연을 강행하려고 하자 학교 측은 정문 앞에 ‘버스산성’을 쌓아 공연 준비차량의 출입을 막는 한편 징계 협박을 하며 총학생회를 위협했다. 결국 공연은 장소를 옮겨 성공회대에서 열렸다. 박준홍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학우들이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안타까웠다. 집회도 아니고 콘서트라는 형식을 통해 추모하는 것이었는데, 대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막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7월10일, 노무현 추모 콘서트 부산 공연을 열었던 부산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었다. 학교 측은 추모 콘서트가 ‘정치색이 짙다’며 행사를 불허했다. 연세대와 마찬가지로 정문에 ‘버스산성’을 쌓고 공연 준비차량 출입을 막았다. 학생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사흘 동안 비를 맞으며 손수레에 나눠 실어 반입한 끝에 어렵게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다. 

‘정치색이 짙다’는 것은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막는 데 쓰는 ‘전가의 보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정치색이 있다’며 예술을 학교 밖으로 밀어냈다. 학생과 강사들이 준비한 ‘자유예술대학’이 총장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불허했다. 결국 ‘자유예술대학’은 ‘자유예술캠프’로 격하되어 학교 밖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비상대책위원회 이현빈 부위원장은 “실망스러웠다. 학교 측과 한 달 정도 협의하고 모든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는데도 학교 측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총장이었던 황지우 시인이 시간강사 신분으로라도 강단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학교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무현 추모콘서트를 막는 학교 당국의 조치에 항의하는 연세대 학생(왼쪽)들과 부산대 학생들(오른쪽)

학생들의 자율활동을 막는 대학 당국의 조처는 ‘학원 사찰’ 시비까지 낳고 있다. 지난 8월24일 서울대 공대 학생회는 “농활을 끝내고 농민대회에 참석하려는데 공대 행정실에서 학생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집회에 참석한다고 들었다. 집회에 참석하지 마라. 징계를 주겠다’고 통보했다. 경찰이 학원 사찰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라고 폭로했다. 학교 측은 “경찰은 원래 학생들의 활동에 관심이 많다”라고 항변했다.

총학생회 간부에 대한 ‘연행·수배’ 빈번

촛불집회 1주년을 전후해 경찰의 학생운동 견제는 본격화되었다.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운동권 학생들과 학생회 간부를 마구잡이로 연행해갔다. 누리꾼에게 ‘고대녀’로 알려진 ‘다함께’ 활동가 김지윤씨를 5월28일 연행한 것을 시작으로 7월7일에는 건국대 총학생회장 등을 연행했고, 7월11일에는 노무현 추모 콘서트를 마치고 귀가 중인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을, 7월24일에는 성공회대 부총학생회장을 연행했다.
 
무분별한 연행으로 가장 고생을 한 대학생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이다. 그는 벌써 세 번이나 연행되기도 했다. 이원기 회장은 “정부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개 끌듯이 끌고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건국대 정치대 학생회장, 생활도서관장 등과 연행된 하인준 총학생회장은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고 나온 그는 “캐비닛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수사자료가 많았다. 내 모든 이메일이 수사당했고 내가 참석했던 모든 집회에서의 행적이 채증되어 있었다. 두려웠다”라고 회고했다.

대학생들은 경찰의 마구잡이식 연행이 학생의 사회참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부당한 수사라며 경찰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현재 고려대·숙명여대·덕성여대 총학생회장 등 5~6명의 학생이 수배된 상태다. 이제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이 방학 동안 퇴행한 학내 민주주의를 되돌리기 위해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줄지, 민주주의 최대의 적이라는 ‘무관심’에 또 한번 좌절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 위 글은 시사IN 103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이번호 시사IN에 실린 노암 촘스키 교수 인터뷰는 열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뷰에서 '마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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