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와 핑클이 등장해 인기를 끌기 시작한지 10년 만에 제2의 걸그룹 열풍이 불고 있다.
SES와 핑클 이후 간간히 걸그룹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인기를 끌진 못했다.
10년만에 걸그룹 장이 다서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세대 SES 핑클과 3세대 소시 카라 원더걸스 2NE1의 차이를 알아보았다.
대략 4가지 정도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1> 내부 멤버끼리의 치열한 경쟁
걸그룹 멤버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경쟁’이다. 엄격한 오디션을 통과해 연습생이 되고 다시 치열한 경쟁을 거쳐 데뷔하기 때문에 경쟁에 익숙하다. S.E.S와 핑클이 활동하던 10년 전과 가장 다른 점은 멤버 개인 연예활동에 제한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기가 있는 멤버는 혼자 활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그룹 멤버와 활동하는 ‘합종연횡’도 종종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 공익캠페인 ‘4tomorrow’다. 애프터스쿨의 유이, 카라의 한승연, 브아걸의 가인, 포미닛의 현아가 공동 모델이 되었다. 서로 다른 걸그룹 멤버들이 광고를 위해 일종의 ‘프로젝트 걸그룹’을 만든 것인데, 누리꾼들은 ‘걸그룹 드림팀’이 만들어졌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각 그룹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멤버를 한데 모아주었다는 것이다.
KBS 2TV <청춘불패> 역시 서로 다른 걸그룹 멤버들로 출연진을 구성했다. 브아걸의 나르샤, 소녀시대의 유리와 써니, 티아라의 효민, 시크릿의 한선화, 카라의 구하라, 포미닛의 현아가 출연한다. <청춘불패>의 김호성 PD는 “걸그룹 멤버들이 농촌 마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경쟁코드가 익숙해서 그런지 멤버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잘 어울린다”라고 말했다.
<청춘불패>의 경우 편성시간이 금요일 밤 11시인데, 인기에 힘입어 주말 오후나 저녁시간으로 편성시간이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팬 중에 '누나부대'들도 있는데 이들이 편히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이 주말 오후나 저녁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는 인기가 좋은 오락프로그램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조만간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2> 치열한 경쟁에 져도 패자부활전 통해 부활
걸그룹에게 익숙한 경쟁, 그러나 경쟁은 필연적으로 ‘낙오’를 양산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쟁이 치열한 걸그룹계에는 ‘패자부활전’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활동하던 그룹이 해체하거나 방출되어도 다른 걸그룹을 통해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걸그룹 ‘오소녀’는 사라졌지만 그 멤버들은 애프터스쿨(유이), 원더걸스(유빈), 시크릿(전효성)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룹 아이써틴(i-13)은 해체되었다가 JQT로 재결성되었다. 소녀시대 연습생이던 소연은 티아라로, 원더걸스 연습생이던 김현아는 포미닛으로 데뷔했다.
경쟁 시스템이 빚어내는 흥미로운 결과는 그룹 멤버 중에서 인기가 좋은 멤버가 계속 변하는 ‘회전문식 인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카라의 기획사인 DSP미디어 김기영 이사는 “카라도 그렇고 많은 걸그룹에서 인기 있는 멤버가 그때의 유행에 따라 변한다. 처음에는 존재감이 없다가 볼수록 매력이 있다며 ‘볼매’로 불리는 멤버가 생겨나곤 한다”라고 말했다.
카라의 경우 데뷔 초기에는 한승연이 인기가 좋았지만 ‘엉덩이춤’이 유행하고부터는 니콜의 인기가 올라갔다. 소녀시대는 ‘구석 파니’로 불리던 티파니가 ‘중심 파니’로 불릴 만큼 그룹의 중추가 되기도 했다. 다른 그룹에서도 처음에 에이스로 내세웠던 멤버와 다른 멤버가 인기의 중심이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3> SES와 핑클 좋아했던 소년들 아저씨 되어 소시와 카라에 환호
이런 걸그룹에게 대중은 왜 갑자기 열광하게 된 것일까? 엔터테인먼트업계 종사자들은 첫 번째 요소로 불황을 꼽는다. IMF 전후 S.E.S 핑클 베이비복스가 인기를 끌었듯이 불황에 가장 저렴한 대중문화를 향유하다보니 남성 팬들이 걸그룹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잃은 남성들의 ‘롤리타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후크송’과 자극적인 율동이 통했다는 것이다.
세대론적인 분석도 나온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중간지대에 속하는 ‘298세대(386-88=298)’ 남성들이 문화적으로 부활하는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오렌지족, 신세대, X세대 등으로 불리면서 1990년대의 풍요를 만끽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자신 있게 드러내면서 걸그룹 현상을 견인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폭폭수를 맞고 청소년기를 보냈던 298세대가 성장하여 걸그룹의 제2 부흥기를 이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걸그룹에 대한 문화적 리터러시가 있기 때문이다. 298세대인 문화평론가 홍설일씨는 “요즘 친구들 모임에 가면 걸그룹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모르면 소외감을 느낄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미 298세대 여성들은 대중문화계의 파워소비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꽃미남’ ‘연상연하 커플’ ‘초콜릿 복근’ ‘짐승돌’ 등 소비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행을 만들어냈다. 동년배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298세대 남성들도 자신들의 취향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고 있다. SBS 라디오 <송은이 신봉선의 동고동락>의 남중권 PD는 “조카뻘 걸그룹 멤버들에게 ‘유이신’ ‘윤아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들에게는 이런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라고 말한다.
4> 걸그룹에 대한 팬덤, '집착'에서 '취향'으로
걸그룹 팬인 ‘삼촌부대’는 남성 아이돌 그룹을 따라다니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로 구성된 ‘오빠부대’와 행태가 많이 다르다. ‘오빠부대’를 특징짓는 말이 ‘집착’이라면 ‘삼촌부대’를 특징짓는 말은 ‘취향’이다. 특정 그룹을 좋아한다기보다 각각의 그룹에서 자신의 취향인 특정 멤버를 콕 찍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삼촌부대'의 장점은 경재력이다. 이들은 팬을 넘어선 서포터즈로서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주고 있다. 포털사이트에는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걸그룹 서포터스 커뮤니티가 있다. 남중권 PD는 “소녀팬이 남성 아이돌 그룹에게 보내주는 선물과 삼촌팬이 걸그룹에게 보내는 선물은 차원이 다르다. 볼 때마다 놀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걸그룹 현상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내년 초 여러 팀이 데뷔하는 또 한 번의 ‘창고 대방출’이 예정되어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한 번 정도 구조조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카라의 소속사 DSP미디어의 김기영 이사는 “세계 2위의 음악시장인 일본에서도 걸그룹은 5팀 내외다. 우리 음악시장이 지탱할 수 있는 걸그룹의 수도 그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류 열풍의 또 다른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흥우 PD는 “이미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걸그룹들이 하향 평준화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간다면 아시아권에서 보이그룹에 이어 한류를 다시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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