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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KBS 기자들이 김인규 사장에 결사반대하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1. 30.


KBS 사장 공모에서 KBS이사회가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을 사장으로 결정한 후 <시사IN> 편집국에 KBS 기자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김 회장이 사장으로 추천된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문답이었습니다.

왜 김인규씨는 KBS 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는 KBS의 부끄러운 역사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청산’의 대상이지, ‘영전’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

언론특보를 했다는 것 때문인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표적인 정치기자 어용기자였다. 과거 정치부 기자 시절 그는 민정당에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민정당 창당기념식 뉴스를 전하며 ‘투명한 정당’ ‘현대 정당의 모범’이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무마하려는 민정당의 성명을 곧이곧대로 보도하기도 했고, 야당은 분열과 돈으로 얼룩진 정당이라고 매도하는 보도를 했다. 그가 참여했던 1987년 대선 보도는 언론학자들에게 가장 편파적인 보도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에 그와 함께 민정당을 출입하던 고대영 기자는 지금 KBS 보도국장이 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인규씨를 KBS 사장으로 선임할 것으로 보인다.
막아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과거에 행한 보도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KBS 기자협회가 김인규 사장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을 맡았다는 것이지만 
기자로서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인규 기자는 KBS 오욕의 과거라 할 수 있는 '땡전뉴스'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KBS 기자협회 블로그(http://kbsjournalist.tistory.com)에서 
김인규 기자의 과거 리포팅 동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독설닷컴'에도 전합니다. 
먼저 KBS 기자협회가 이 동영상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이 글 아래 콘텐츠는 모두 KBS 기자협회 콘텐츠임을 밝힙니다.
이 콘텐츠를 제작한 KBS 기자들은
이 일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권에 완전히 장악된 KBS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하고 있는
KBS의 방송 '텔레반'들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인규 씨는 도둑 취임식에서 ‘정치 권력으로부터 KBS의 독립을 지키러 왔다‘고 공언했습니다. 비록 잠시 정치활동을 했지만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인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MB 특보를 한 것만으로도 분명한 결격이 되겠지만 한번 검증을 해 봅시다.

김인규 씨는 기자였고 본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인규 씨는 KBS에서 정치부 통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센터장, 이사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김인규를 만든 당시 김인규 기자의 활약상을 보시겠습니다. 이 분이 KBS의 정치적 독립을 지킬 수 있을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기자로서 방송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1987년 1월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87년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새해 벽두부터 수많은 양심인사들이 각종 이적단체 혐의로 구속되고 시국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은 정권연장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이 와중에 1월 15일 민정당은 창당 기념식을 열었고 당시 민정당 출입기자였던 김인규 씨는 이를 보도했다.

리포트:

지난 6년 전 극심한 사회혼란과 정치적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출번한 민주정의당은 무엇보다 구정치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시대 새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역사 창조에 나섰습니다. 민정당은 창당 때부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당원들이 당비에 의해 당을 운영해 나가는 자립정당상을 우리나라 정당사상 처음으로 확립하고 구시대적 정치 병폐의 재현을 막기 위한 청렴정치에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국민속의 정당을 목표로 민생 문제와 관련한 참신한 정책 개발에 주력해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와 국민연금제도 최저임금제 도입, 그리고 농어촌 종합대책 등 실제 국민 복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서 정책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굳히고 있습니다. 특히 민정당은 선진조국 창조에는 다른 분야에 비해 뒤져 있는 정치 선진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아래 헌법 개정문제가 제기되자 날로 변화하는 사회 추세에 부응해서 권력의 분산과 국민의 정치 참여라는 두가지 측면에 역점을 둔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마련함으로써 이를 관철시켜야 하는 개헌 정국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세차례 선거를 통해 집권당의 위치를 다져온 민정당은 이제 88년에 평화적 정부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업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합의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관철과 제13대 총선에서의 압승을 통한 정권재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직면한 것입니다.



2> 1987년 4월13일 전두환 “호헌 선언”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일부 폭로되면서 민주화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4월 13일 전두환은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현행 헌법으로 정부 이양을 한다”는 내용의 ‘4.13 특별 선언’ 발표했다. 김인규 기자의 보도를 보자.

리포트:

전두환 대통령이 오늘 특별 담화를 통해 임기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른 정부 이양과 국력 소모적인 개헌 논의의 지양을 선언한 것은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년의 양대 국가 대사를 차질없이 차질없이 치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헌법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명백히 제시한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헌법 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합의 개헌을 추구하면서 무작정 기다리던가 아니면 다수의 힘을 배경으로 일부 정치세력과의 합의만으로 개헌을 강행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현실 여건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상 일단 국력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지양하고 현행헌법에 따라서 안정속에 국가 대사를 실천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야당의 내분과 갈등으로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합의 개헌 기대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대로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이며 책임 회피일 뿐 아니라 앞으로 열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우리 헌정사의 최초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평화적 정부 이양에까지 차질을 빚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헌논의 출발의 당초 목적과는 달리 혼미한 현 정국의 원인이 되고 평화적 정부 이양에 장애가 되고 있는 국론 분열적이고 정쟁적인 개헌 논의 자체를 일단 뒤로 미뤄 정치적 파국을 막는 동시에 내년에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헌법문제의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1987년 6월3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제청

군부 독재 정권은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인 요구를 희석시키기 위해 “평화적 정권 이양”이라는 해괴한 조어를 만들어 낸다. 김인규의 보도에서 당시 노태우의 대통령 후보 제청은 <우리 역사의 큰 전환점> <진정한 민주화 선진화> <헌정사의 새로운 이정표> <대통령의 외골 신앙> <소중한 정성> 등으로 묘사된다. 화가 나서 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선거보도의 공정성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쓰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하겠다는 게 지금 상황이다.



 

리포트:

오늘 민정당 대표위원이 중앙집행위원회의 제청으로 차기 대통령 후보 신청 등록까지 마친 것은 내년 초 평화적 정부 이양을 위한 일련의 정치일정 가운데 첫 단계 작업이 이행됐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리 역사에 큰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헌정 40년에서 가장 부끄러웠고 우리 헌정사의 비원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평화적 정부 이양임에 틀림없습니다. 제1 공화국의 이승만 대통령이나 제3 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끝내는 1인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물리적인 힘에 의해 헌정 중단 사태를 되풀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집권자가 스스로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이같은 평화적 정부 이양을 경험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와 선진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일부에서는 여야가 바뀌는 것 만이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이 선택하는 즉 선거의 결과에 따라야 하는 것이며 이보다도 우선 정부 이양이 없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는 현직 대통령 임기중에 집권여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결정 제청한 그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의 변함없는 단임의지와 평화적 정부 이양의 외골 신앙이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정부나 여당이 모두 말 한마디 절차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정부 이양을 위한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진지한 분위기 그 자체가 바로 진정한 민주정치를 해 보겠다는 소중한 정성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권 내에서 후계 후보를 선출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제 저녁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후보 결정을 위한 합의 도출 과정이나 오늘 있을 중앙 집행위원회의 제청 등은 모두가 민주정치의 새 장을 열어나가는 좋은 선례가 될 것입니다.



4> 1987년 6월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6월 10일을 더 말해서 무엇하겠나. 하루 전 이한열이 최루탄에 피격돼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개최가 열리면서 6월 민주 대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그 날........김인규의 뉴스는 이렇다.


 

리포트:

오늘의 민정당 정당대회는 현직 대통령 임기 중에 집권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 낸 우리 헌정사상 처음있는 정치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는 단임 의지를 거듭 천명해 온 전두환 대통령의 약속이 확인되는 정치적 절차였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현실화되는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민정당 정당대회는 단순한 정당행사가 아니라 우리 헌정사 40년에 새 장을 여는 획기적인 첫 걸음이라고 민정당은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사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화적 정부 교체의 실현은 단순한 구호나 선동으로 이룩될 수 있는 쉬운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순탄치많은 않은 길을 민정당은 오늘 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추진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야당 측에서는 이러한 정치일정의 취소를 요구하며 강경투쟁을 계속하고 있어 내년초의 목표 시점까지는 넘어야할 난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수락 연설을 통해 대화의 필요성과 조화의 정치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태우 대표위원이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정국 안정과 정치 활성화라는 시대적 정치 과제를 원만히 풀어나갈 때 오늘 대회의 정치사적 의의와 역사적 의미는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시국수습방안발표

다들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다른 언론사에서 ‘김인규의 과거’를 보도한 것을 빼고도, 이동영상을 본 사람만 4만5천명이 넘는다. 기자협회 블로그에도 2천5백 명 이상이 방문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기여한 선거 특보 경력은 그저 가장 가까운 흠결에 불과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찾을 수 있는 것만 따져도 끝이 없다. 기자 8년차 본격적으로 정치부 기자 초에 입문한 뒤 김인규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1,2편에서 봤듯이 민정당을 출입하면서 전두환을 미화하는 최전선에서 일하고, 6월 항쟁 이후에는 노태우로 대표되는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전력한다.

-김인규에게 민정당 창당은 “구정치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시대 새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역사 창조”하기 위한 사건이었다.
-김인규에게 전두환의 4.13 호헌선언은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었다.
-김인규에게 노태우 후보 선출은 “민주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였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해진다. 87년 전두환은 결국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국적인 6월 항쟁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대통령 직선제와 일부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결정적 국면에서 김인규의 스탠스는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6.29선언 이후 김인규의 리포트를 감상해보면서 ‘진정한 달인의 면모’를 살펴보자.

6월24일 전두환이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하면서 시위는 격화됐다. 26일 전국 150만 명이 동시 다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루 전국에서 3,467명이 연행됐고, 경찰서/파출소 31개가 불에 타거나 부서졌다. 결국 전두환은 국민에게 굴복했다. 전격적인 6.29 선언이 이뤄졌다.

김인규는 당시 6월29일 9시 뉴스에서 노태우의 6.29선언을 “어려운 국면에 처한 현 시국을 타개하겠다는 그러한 결연한 의지”,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정국수습에 관한 문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풀어나가겠다는 그러한 결심” 등으로 노태우의 개인적인 결단으로 규정한다.

이밖에 6.29 선언과 관련된 김인규의 여러 리포트가 있지만 가장 한심한 리포트 한 번 구경해 보자. 카메라샷, 선택된 어휘 등등 조선중앙TV가 위협을 받을 정도다. 아래는  7월1일 9시 뉴스이다.

 


 

리포트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오늘 오전 연희동 자택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시국수습안에 대한 특별담화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시청한 뒤 자신의 건의를 대통령이 전적으로 수용하고 뜻을 같이 해 준데 대해 무어라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대통령의 담화내용은 대통령의 애국충정과 민주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어 감명스러웠다고 밝혔습니다. 노태우 대표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특별 담화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일일이 메모하고 담화발표가 끝나자 상기된 표정으로 취재기자와 주위 사람에게 다함께 박수를 치자면서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노대표는 이어 지난 29일 특별선언을 한 이후 처음으로 중앙당사에 도착했는데 중앙당직자와 소속의원 사무처 직원 등 200여 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자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노대표는 당사 본관 1층에 있는 총무국을 빙 둘러선 당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자신은 그동안 당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제 모두가 하나가 돼 최선을 다해 나가자고 격려한 뒤 대표위원실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김인규: 노태우 대표위원은 또 이제는 야당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민이 원하는 열매를 하나하나 맺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어느 누구의 반대도 없이 그 열매를 맺어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기자가 아닌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김인규가 학습한 내용은 뭘까. MB정권 창출에 공헌을 한 뒤 다시 KBS에 나타나 하려는 짓이 뭘까.
다음 편에서는 87년 대선 과정, 92년 3당 합당 과정 등에서 김인규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주> 뉴스 원본은 KBS 기자협회 블로그 http://kbsjournalist.tistory.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