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의 <PD수첩> 비판보도와 검찰의 <PD수첩> 수사발표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번역가 정지민씨의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번역가 정지민씨의 주장에는 문제점이 많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 점을 지적해왔다.
‘이것이 <PD수첩> 논란의 핵심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가 정씨에게 공개 질문을 보냈고
<PD수첩> 김보슬 PD의 기고문 “정지민씨, 이것이 <PD수첩> 논쟁의 진실입니다”를 게재하기도 했고
전 <PD수첩> 보조작가 이연희 작가의 고백 “정지민씨, 제가 기억하는 진실은 이렇습니다”를 싣기도 했다.
정지민씨는 자신의 네이버카페를 통해 이런 질문과 주장에 대해 해명했다.
정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 중에 ‘독설닷컴’에서 게재하지 못한 원고가 한 편 있었다.
바로 메인작가 김은희 작가의 글이었다.
사실 김 작가의 글은 ‘독설닷컴’에서 맨 처음 입수했었다.
그러나 김 작가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발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눈물을 머금고 양보했다.
‘특종경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글을 통해 정확한 사실이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테니까.
오마이뉴스는 이 기고문을
<이제 그만 '거짓의 상상'을 멈추어 주십시오>
<당신은 '퍼즐의 전체 그림'을 모릅니다>
<오역 의도성이라구요? 모든 진실을 밝힙니다!>
세 편으로 나누어 편집해서 게재했다.
이후 프레시안이 오마이뉴스의 양해를 얻어 김 작가가 내용을 다소 수정한
<이제 ‘거짓의 상상’을 멈추어 주십시오>를 게재했다.
그동안 ‘오역 논란’ 관련 글을 꾸준히 게재해 온 ‘독설닷컴’에서도 김은희 작가의 동의를 얻어 이 글을 게재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독설닷컴’에 ‘오역논란’관 관련해 정지민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세 편의 글이 모두 실리게 된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 글이 김은희 작가가 최초로 작성한 글이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은 일종의 ‘편집본’이고
<프레시안>에 실린 것은 ‘수정본’이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이 싣는 것이 ‘원본’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에서 원본을 올렸는데,
김은희 작가가 수정해서 완성도를 높인 글로 올려달라고 부탁해서
다시 <프레시안> 수정본으로 교환해서 올립니다.
‘독설닷컴’이 정지민씨에게 던진 공개 질문과
김보슬PD 김은희 작가 이연희 작가의 글
그리고 정지민씨가 자신의 카페에 올린 해명 글
이 내용을 보면 ‘오역논란’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008/07/29 - [위기의 기자들, PD들] -
2008/07/28 - [위기의 기자들, PD들] - 김보슬 PD, "정지민씨, 이것이
2008/07/23 - [위기의 기자들, PD들] - 이것이
이하 김은희 작가의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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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민 씨, 저는 지난 4월 29일 <PD수첩> '광우병' 편을 집필했던 메인 작가입니다.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막상 얼굴 보면 낯이 익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층 편집실에서 오며가며 마주쳤을 수도 있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공통점 하나는 있군요. 정지민 씨처럼, 저 역시 MBC에서 월급 대신 일한 만큼 돈을 받는 '프리랜서'이지요. 하는 일은 각자 다르더라도 말이지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메인작가는 PD를 도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전 조사에서 취재, 마지막 후반 작업까지 제작 전반을 함께 하는 '제작진' 중 한 명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편집콘티(구성안)를 작성하고, PD의 1차 편집 후 2차 편집(파인커팅)에 참여하며, 마지막으로 내레이션 대본을 집필하는 일이 주요한 역할입니다. 1차적으로 편집의 흐름을 잡고 방대한 취재 자료 중 방송에 쓸 인터뷰와 영상을 골라내는 것도 저의 맡은 바 몫이지요. (물론 그 모든 것은 제작진 회의와 PD 편집, 데스크 시사, 종합편집을 거쳐 판단되고 수정, 완성됩니다.)
그런 역할을 생각하면, 저는 당신이 말하는 '왜곡·거짓 방송'의 주범 중 한 명쯤 되겠군요. PD가 과장과 왜곡과 조작을 의도했다면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봤을 것이고, 혹은 공모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PD수첩>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제재, 농림수산식품부와의 반론·정정 보도 민사 소송, 농림부 명예훼손 제소에 따른 검찰 수사,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촛불시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더군요. 앞으로 또 누가 어떤 죄목으로 소송이나 재판을 걸어올 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걸 PD들은 감당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느라 점점 녹초가 돼가고 있지요.
나는 '광우병' 편을 끝으로 <PD수첩>을 떠나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던 터라 한동안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언론 보도로 접하거나 오며가며 들은 얘기들로 짐작만 할 뿐. 그렇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프로그램으로 인한 모든 파장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PD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지, 누구도 작가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묻거나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간 내가 한 일이라곤, 사무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잠든 PD들을 볼 때마다 착잡해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저 젊은 PD들이 왜 저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광우병' 편을 만들 당시의 그들을 떠올려보았지요. 방대한 자료와 전문가 보고서들을 파고들고,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을 쪼개고 또 쪼개며, 섭외와 취재와 후반 작업을 연달아 하느라 단 한 시도 쉬지 못하고 뛰던 그들은, 작가의 눈에 참 신선해 보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PD들은 밥을 먹다가도 졸고, 생방송을 위해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복도에서 비틀거렸습니다. 나는 그때 그들에게 어떤 '진정성'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끝내 버텨내 방송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왜 지금은 온갖 재판과 악의적인 언론 보도와 권력 기관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요.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걸까요. 그들이 정말 왜곡과 과장을 했던 걸까요? 그들이 정말, '촛불 정국'의 원인제공자이자 '괴담'의 주범일까요?
제가 오늘 정지민 씨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PD수첩>에 붙어있는 온갖 왜곡, 조작, 거짓이란 단어들의 '열쇠'가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미 신문 지상에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당신을 떠난 말들은 홀로 생명력을 갖고 확대 재생산 되었고, 왜곡된 실체로 눈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개인 의견을 가지고 있고 어디서건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신 역시 그럴 권리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정지민 씨. 당신은 '개인'의 자리가 아닌 '<PD수첩> 번역자'의 위치를 내세워 그런 발언들을 했습니다. '제작진 내부 고발자' '양심고백'으로 포장돼서 말이지요. 몇 주에 걸친 제작 과정 중 보조 작가 한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당신을 만난 적이 없다는 PD들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그 날이었을까요. 몇 번의 연기 끝에 새로운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이 고시되던 날. 왜 그 날,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당신의 주장을 대서특필하고 여당과 청와대가 '일벌백계' 분개하고 검찰 전담반이 꾸려졌는지. 광우병과 미국의 축산시스템에 무지한, 불과 2,3일 영어 단순번역을 도와준 한 번역자의 말이 어찌하여 국가의 핵심 권력기관들을 그토록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는지. 그러나 그런 건 일개 프리랜서 작가가 여기서 논할 내용은 아닙니다.
'광우병' 편 제작 과정에 참여했던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란 한 가지뿐입니다. 정지민 씨가 제기했던 그 모든 '거짓과 조작의 근거'들이 작가로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어떻게 다른가. 그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의 '양심'이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말하는군요. 비록 누구도 내게 그것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젊은 피디들과 함께 모처럼 '일할 맛'을 느꼈던 한 작가가, 미약하나마 자신의 그런 기억에 예의를 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PD수첩>의 취재 자료 상당 부분의 내용을 아는 입장'을 내세워 당신의 주장을 사실인 양 포장하곤 했지요.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당신의 주장들이, 어찌하여 '<PD수첩> 취재 자료 전체를 아는 입장'인 저에겐 모두 거짓과 과장, 허위 사실이 되는가, 에 대한 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CJD→vCJD' 의역을 두고 'MRI상 CJD' 진단이 나왔는데 제작진이 인간광우병으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러 'vCJD'라고 바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은 정확히 'MRI 상 vCJD'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가 인터뷰상으로 말하는 CJD란 모두 vCJD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인터뷰 테이프 4권 중 단 한 권만을 번역한 당신은, 당신이 번역하지 않은 나머지 테이프 3권의 내용은 모른 채 그런 주장을 하셨겠지요. 오직, 미 현지 카메라맨을 별도로 섭외해 찍은 아레사 빈슨 장례식 테이프를 근거로 해서 말이지요.
또한 당신은 다우너 소 동영상 제작단체의 인터뷰 테이프 3권 중 단 한 권도 번역하지 않은 채, '동물학대 영상 속 다우너 소를 광우병과 연결시키는 건 왜곡'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도축 시스템의 문제가 다뤄진 4·29 방송도 보지 않은 채 그런 주장을 했지요. '젖소→이런 소' 의역이, 당신의 '광우병 위험성 과장' 주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위험성 축소'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 지 못했겠지요.
<PD수첩>이 인정했던 '번역 오류'를 '의도적 오역'이라 주장합니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단정적으로 몰아가기 위해 PD들이 번역, 감수 결과와 다르게 자막을 바꿨다는 것이지요. 번역·감수자였던 자신의 번역 실력 상 절대 오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르군요. '의도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다른 번역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초벌 번역했던 원본 파일 하나를 공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당신의 허위 주장들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도 따져 볼 생각입니다. 이 점은 왜 당신이 제작진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한가, 에 대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정지민 씨. 당신은 '당신이 본 것'을 토대로 말해왔으니, 저 역시 그러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기억과 추측'에 의존해 말하는 것과 달리, 나는 '근거를 토대로 한 사실'만을 말하려 합니다. 그 대부분은 '당신이 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설명하겠습니다.
참고로, <PD수첩> '광우병' 편의 촬영 원본 테이프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영상 자료를 포함해 모두 150여 권에 이르며, 시간으로 따지면 총 5000여 분 가량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MBC나 <PD수첩>과 관계없이, 프리랜서 작가 개인으로 당신께 드리는 편지임을 분명히 합니다.
2. 아레사 빈슨의 진단명 'CJD→vCJD'
당신이 주장한 '왜곡'의 핵심은 '아레사 빈슨의 MRI 상 진단 결과는 분명히 CJD였는데, 제작진이 그걸 인간광우병으로 몰기 위해 vCJD로 의도적으로 바꿨다'입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내가 CJD라고 한 뒤 누군가가 vCJD로 바꿨다'라고 묘사를 해놓으셨더군요. 순간, '줄기세포 바꿔치기'란 옛말이 생각나 잠깐 웃었습니다. 그거 누군가가 바꾼 거 맞습니다. 담당 PD인 김보슬 PD입니다.
정지민 씨. 아레사 빈슨의 MRI 진단명은 정확히 'vCJD' 의심이 맞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사전 취재 中 어머니와의 통화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기 전, 제작진은 언제나 취재원들과 사전 통화로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팩트'를 정확히 알지 않고 취재를 시작할 수는 없지요. 당시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의 아레사 빈슨 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 경우 가장 정확한 팩트는 바로 의사에게 직접 진단을 들은 어머니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자를 섭외해 몇 번의 시도 끝에 통화에 성공했고, 정확한 의사 진단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MRI 검사 결과 vCJD 의심 진단을 받았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제작진은 '부검 결과가 나왔는지' 물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인터뷰
미국에 가서 어머니와 한 인터뷰 테이프는 모두 4권입니다. 의자에 앉아 한 인터뷰 상으로만 어머니는 열 번 가까이 '인간광우병 혹은 vCJD 의심'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그 사이 몇 번 CJD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국 취재 중 PD가 위성으로 취재 영상을 전송하며 전화로 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인터뷰하실 때 중간 중간 vCJD를 CJD라고 표현하시는데 그건 모두 vCJD를 말하는 것이니 테이프 볼 때 헷갈리지 마세요."라고 하더군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나중에 테이프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누구든 인터뷰 전체를 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CJD는 vCJD의 상위 개념입니다. vCJD를 CJD로 표현하는 경우는 있어도 CJD를 vCJD라고 표현하지는 않지요. sCJD를 CJD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도 인터뷰 때 vCJD를 CJD라고 표현하더군요.
정지민 씨가 번역한 테이프 1+3
당신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원본 파일을 찾아보았습니다. 정지민 씨. 당신은 제작진이 어머니를 인터뷰한 테이프 총 4권 중 단 1권(40분)만을 번역했더군요. 그런데, 당신이 번역했던 테이프 안엔 CJD니 vCJD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억하시겠지요. 어머니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질문 던질 틈도 없이 매우 장황하게 혼자 말을 이어갔지요. 살아생전 딸의 자랑스러운 모습에서 시작해, 위 절제 수술을 받고 무슨 증상을 보이고 약을 먹고 의사에게 가고, 그러고도 아무 소용이 없자 의사의 권고를 받고 MRI를 찍었지요. 공교롭게도 당신이 유일하게 번역했던 한 권의 테이프는 막 그 진단 결과를 듣기 전에 끝납니다.
(번역 원본 中 : 정지민 씨 번역)
남편이 아레사로부터 수화기를 받아 내게 말했는데, 신경학자(신경전문의겠지요. 이 사람이 바롯입니다.)의 MRI 결과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결과가 왔는데 안 좋다고 말했다. 어떻게 안 좋냐고 물었다. 남편은 말하길 너무 안 좋다고 (…) 의사들이 말하길 그녀가 매우 희귀한 뇌 질환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광우병과 흡사한 병이라는 것이었다. (…) 나는 들은 말 때문에 너무나 충격 상태였고 정신 차리기 힘들었다. 신경학자가 돌아와서 남편과 내게 (…) 남편이 내게 대강 해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기까지가 정지민 씨가 번역 당시 본 내용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의사로부터 들은 진단명은 정지민 씨가 번역하지 않은 나머지 세 개의 테이프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이 인터뷰들 중 네 개가 7월 15일 이른바 '해명 방송'에 나갔고, 그 중엔 'MRI 결과 vCJD'라고 하는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지민 씨는 다른 주장을 하고 계시군요.
(정지민 씨 까페 글 中)
내가 번역한 40분 가량의 로빈 빈슨 인터뷰에서 증상, 진단 부분이 다 나왔다.
해명 방송에서 나온 로빈 빈슨 인터뷰는 하나같이 내가 번역한 부분들뿐이었다.
왜 해명 방송에서는 그런 부분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특히, MRI상 vCJD였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왜 사용하지 못했는가? 지금 와서 그런 게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정지민 씨. 제가 가진 기록으론 당신은 그 인터뷰들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록은 번역료를 지급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며, 당신이 스스로 목록을 작성해 보내준 메일을 토대로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당신 스스로 이미 '40분 가량'이라고 인정하고 계시지 않나요.
아레사 빈슨 장례식 TAPE 2
당신이 어머니 인터뷰 한 권 외 번역한 또 다른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레사 빈슨 장례식을 찍은 테이프 두 권.
정작 제작진은 장례식 그림만 쓰고 인터뷰는 눈여겨보지 않았었지요. 그 테이프는 미국 현지의 카메라맨을 따로 섭외해 찍은 것이었고, 나중에 제작진이 직접 어머니를 만나 정식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굳이 이 인터뷰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안에 각각 짧게 두 번, 총 8분간 인터뷰가 있더군요. 그리고 각각 한 번 병명이 나옵니다. 한번은 '광우병'으로, 한 번은 'MRI 통해 CJD 진단'으로.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번약 원본 中 : 정지민 씨 번역)
여/@ 언제 광우병이라고 생각이 들었냐고요? 지금은 모르지만 광우병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형태가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아레사는 MRI를 통해 CJD 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쿱스펠트-야커 병이라고 한다. 정말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병이 내 딸을 내게서 뺏아간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상실감을 정말 크게 느낀다.
피/
여/@ 우리는 그저 쇼크 상태다. 그렇게나 희귀한 병이었다는 것이… 부검 후에도 정말 이 병이 사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쇼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번역 당시에 본 유일한 '진단명'일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어머니 인터뷰 전문을 보고, 취재한 PD의 설명을 들었다면, 위와 같은 대목에서 'CJD'를 곧이곧대로 'CJD'라고 확신하지는 않았겠지요.
어머니와의 재회
7월 초, 미국에 가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격앙돼 계셨습니다. 왜 자신의 말이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한국 언론을 이해할 수 없어했습니다. 제작진은 거듭 죄송하다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다며 인터뷰도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다신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요. 대신 사실관계는 다시 확인해주셨습니다. 그 중 몇 마디만 소개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사과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했던 인터뷰, 그러니까 당신들과 했던 인터뷰는 이곳 미국의 언론들과 했던 인터뷰와 같았으니까요. 더한 것도 뺀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단지 그 이야기를 보도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보건당국도 의심된다고 말했고요.
우리 딸은 변종 CJD(vCJD)에 걸렸다고 의심되었었습니다. MRI 결과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CJD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변종(v)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CJD에는 다른 종류들이 있지만 항상 변종 CJD로 의심되었었어요. 그 진단은 MRI를 통해 내려졌어요. 진단을 내리는데 유용하다고 인정받은 실험방식입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 전화했었다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도 위와 같은 대답을 들었겠지요.
3. 'CJD 가능성' 누락
정지민 씨는 '미 언론에서는 CJD 가능성 언급했는데, <PD수첩>은 의도적으로 그 가능성을 누락시켰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보건당국의 보도 자료에도 그런 가능성이 언급돼 있다고 했지요. 이것은 <PD수첩>의 '객관성'을 의심받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네 가지 CJD 중 'iCJD'로 분류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수술 과정에서 sCJD 감염'을 의미하는 그 CJD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미 언론에 언급된 내용을 보고 취재과정에서, 그리고 방송 전 다시 한 번,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근거 자료도 찾아보았습니다. '수술 중 sCJD' 감염은 '신경' 관련 수술일 경우에 가능성이 있고, 감염됐다 해도 발병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잠복기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정지민 씨도 아시다시피, 아레사의 경우 위장 절제술은 신경 관련 수술이 아닌 일반 외과 수술이었고, 아레사는 수술 3개월 후에 발병했지요. 혹시나 해서 아레사 빈슨이 수술 받았던 병원에 sCJD 환자가 있었는지도 물어봤습니다. 없었다고 하더군요.
의사 바롯의 인터뷰에도 '수술 중 감염 가능성'이 나옵니다. 그가 말하는 건 '수술 중 vCJD 감염 가능성'이었습니다. 즉, '진단 결과 인간광우병이 의심되긴 하지만 그 원인이 쇠고기를 먹어서 생긴 건지 수술 중 혈액에 의한 감염 가능성인지를 알 수 없다'는 얘기였지요. 그 경우엔 다시 말해 인간광우병 환자의 혈액이 어딘가 돌아다닌다는, 또 다른 인간광우병 환자가 있다는 무서운 의미입니다. 방송에선 이 부분도 생략했습니다.
닥터 바롯의 자격
최근 '<PD수첩>이 자격도 안 되는 의사 말만 믿고 vCJD로 보도했다'는 의혹을 새로 제기하셨더군요. 아레사 빈슨의 신경과 주치의인 바롯 박사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를 하셨지요.
미안하게도 깨알같이 쓴 당신의 글들과 링크해놓은 근거 자료들을 다 들여다보진 않았습니다. 그저 웃었습니다. 바롯이 전문의이건 아니건 그게 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걸까요? 메인 작가였던 나는 지금도 그가 미국 의료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의사인지 모릅니다. 그것과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았다는 '팩트'와는 하등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렇습니다. 보통 현대 의학에서 vCJD를 1차적으로 판단하는 근거는 MRI 검사와 EEG(뇌파 검사), 편도 생검, 뇌척수액 검사 등이 있고, 그 중 MRI는 두 가지 구분이 가능합니다. sCJD(iCJD와 fCJD는 이 경우 의미 없으니 논외로 하죠)와 vCJD이지요. 시상베게 형태에서 sCJD와 vCJD가 다른 소견을 보인다고 합니다. EEG의 경우에도 sCJD는 이상이 보이고 vCJD의 경우 이상이 없다, 즉 차이가 있다, 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뇌척수액 진단, 나이, 유전자 형 등 WHO 진단기준이 있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당신이 번역했던 1권의 테이프에 EEG 검사도 했다고 나와 있죠. MRI와 EEG, 두 가지 검사 결과를 두고 바롯 혼자서 진단을 내렸는지 다른 동료 의사들이 같이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그 결과가 보건당국과 프리온 학회에 전달됐고, 그 후에 부검이 결정됐다는 것이 제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당신이 번역하지 않은 테이프에 이런 내용이 있군요.
(재번역본 * 방송 후 재번역본으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정부에서 접촉을 해왔나 /네. 그게 법칙이에요. 우리 딸이 걸렸던 병처럼 희귀한 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이는 공공의 업무가 됩니다. 보건부가 관여하게 된다는 뜻이죠. 다른 주립 기관들도 관여하게 되는데 질병통제본부 CDC와 다른 몇 개의 단체들, 재단들도 관여했어요. 저는 놀랐어요. 우리 딸이 앓고 있을 수도 있는 이 질병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에 말입니다.
이들이 바롯의 '말'만 믿고 부검을 했을까요? 최종 결과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바롯의 의사자격을 문제 삼았을까요? 미국 언론도, 보건당국도, 심지어 어머니도 문제 삼지 않은 바롯의 '전문의 자격'에 왜 대한민국의 한 여성이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보건당국의 보도자료 中 '미미한 가능성' 누락
'보건당국의 말은 참고 안 하고 바롯의 말만 듣고… 보건당국의 권위가 바롯의 권위보다 못했나?' 라고 하셨더군요.
정지민 씨. 당신은 보건당국의 보도 자료를 번역하며 '아주 미미한 vCJD 가능성'을 읽으셨나요? 저는 '언론에 애써 vCJD 가능성을 축소하고 있는 듯한 보건당국'을 읽었습니다.
<PD수첩>이 보건당국의 보도 자료를 상세히 보도하지 않은 건 보건당국의 '권위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PD수첩>은 취재원을 '권위'에 따라 구분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문제는 권위가 아니라 '취재원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과 여부에 따라 정부의 축산 시스템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 있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한미 쇠고기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미 몇몇 언론에도 보도된 예민한 내용에 대해 보건당국이 어떤 보도 자료를 냈어야 했을까요?
정지민 씨가 아시는 바와 달리, 당시 <PD수첩>은 보건당국을 뚫어보려 애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저 조사 중이며 개인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가 전부였습니다. 겨우 몇 마디만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질문과 답은 담당 PD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인간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부검 중인가" 물었고, 보건당국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인간광우병으로 확인될 경우 어떤 대책이 있는가"라는 질문엔 "현재로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국 언론도 못한 취재를, 우리가 할 수 있었을까요?
정지민 씨, 아레사 빈슨의 사례는 <PD수첩>이 새로 '추적·발굴'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녀가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았던 건 미국 언론에도 보도된 내용이지요. 그들이 어느 쪽에- 어머니의 증언과 보건당국의 보도 자료-더 중점을 두고 보도했는지는 각 언론들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요. 미국의 언론 보도 내용과 다르다고 해서 한국 프로그램 <PD수첩>의 보도가 왜 '객관성'을 의심받아야 하는 걸까요? 대체 '누구를 위한' 객관성이며, '누구에 대한' 편파성일까요?
'아레사 빈슨', 그리고 '아레사 빈슨들'
<PD수첩> '광우병' 편은 '아레사 빈슨의 죽음'을 다룬 특집물이 아닙니다. 그녀의 진단명을 두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혹시 다른 가능성은 어떤지,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도 아니지요.
<PD수첩>의 핵심은 미국 검역 시스템의 문제와 정부의 졸속 협상 과정이었고, 다우너 소 동영상과 아레사 빈슨 사례는 그 각각을 가늠해보기 위한 척도로 방송에 사용되었습니다. 원론적이고 독립적인 개별 사례로서가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사례이지요.
아레사 빈슨 사례의 유일한 '팩트'는 '미국의 한 젊은 여성이 사망했는데, 사인이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있다'였습니다. 가능성이 크든 작든, 그 팩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방송 한 달 보름 뒤, 결과적으로 vCJD가 아니라는 최종 부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당시 상황에서 보도한 내용을 '오보'나 '허위 사실'이라고 부를 수 없음은 언론 보도의 기본 상식입니다.
아레사 빈슨 사건은 그 진단명만으로도 세계 언론의 관심사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미국 보건당국도 꽤 긴장했던 사례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된 후 5년. 그녀가 만일 인간광우병이 맞는다면, 미국 본토 거주인 최초의 사례이며 미국에서 광우병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인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봤다면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부디 인간광우병이 아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아닐 가능성'에 더 주목했겠지요. 그러나 제작진의 상식에 따르면, 협상 전 우리 정부는 '그럴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보여준 협상 결과는 그렇지 않았음을 말해주었고, <PD수첩>은 협상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광우병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 당시의 문제의식까지 의미 없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론 우리도 미국인들처럼 '아닐 가능성'에 더 주목해 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라는 판정이 나오면 가슴을 쓸어내리겠지요.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또 다른 '아레사 빈슨들', 그때마다 우린 그의 MRI 진단 결과를 두고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을까요?
3. 다우너 소 동영상과 광우병 가능성
"다우너 소를 광우병과 연결한 건 왜곡"이라는, 보수언론들의 대문짝만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보고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만약 광우병을 오래 연구해왔던 유명한 학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세계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제목에 "인용부호"가 붙어 있더군요. 문제가 되더라도 신문사는 상관없겠지요. 정지민 씨의 주장을 받아쓴 기사였으니까요.
다우너 소와 광우병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기서 길게 다시 늘어놓진 않겠습니다. 미국 정부도, 우리 정부도, 한 미 전문가들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을 저는 더 이상 당신에게 납득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글 중 가장 눈에 띄는 한 대목만 언급해보겠습니다. 아마도 '다우너 소 동영상'에 대한 정지민 씨의 인식의 한 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지민 씨 카페 글 中)
참고로 도살 직전에 갑자기 쓰러지는 소들은 어릴 적에 읽은 탈무드에서도 나온다. 도살당하기 전에는 소가 알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고대부터 다반사라는 내용. 물론 특정한 원인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광우병일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 "광우병 의심 소"라느니 하는 자막을 만든 것이라 보기 힘들다. 참고로 앞글에서 말했듯이 이건 의역이나 오역문제가 절대 아니다. 과연 광우병의 1%, 0.001%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안고 만든 방송인지 잘 생각해보면 판단이 서리라 믿는다.
정지민 씨. 어릴 적 읽은 탈무드 속 주저앉는 소를 아무도 '광우병 의심소'라고 하지 않지요. 그 시대엔 '동물성 사료'라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광우병의 1%, 0.001%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안고 만든 방송인지 잘 생각해보라.' 는 마지막 문장.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PD수첩>은 그 소들 중 1%, 0.001%라도 있을지 모를 광우병 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안고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동영상 속의 소들 중 광우병 소일 가능성이 0.001%였다 해도 우리 정부는 '그 소들이 100% 다 광우병 소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협상에 임했어야 한다는 게 제작진의 상식이었고, 역시 그렇게 하지 않은 우리 정부의 협상 결과를 지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화면 속 다우너 소들 중 99%가 골절이나 노령으로 인한 질환, 혹은 당신이 언급했던 '피곤해서' 안 일어나는 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1%의 소가 광우병이 아니라는 장담을 당신은 할 수 있나요?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전문가는 변형 프리온 0.001g만 있으면 인간에게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의 소에서 나온 쇠고기를 먹었을 때 몇 명의 사람들이 감염될 수 있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작가인 저는 취재 당시,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질병의 원인이 푸드 시스템에 들어오면 그걸 정화하는 데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인터뷰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는 영국의 사례가 잘 말해주고 있지요. 10만, 100만, 1000만 마리 중 1마리라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들이 동물성 사료를 전면금지하거나, 전수검사를 하거나, 최소한 30개월 이상의 소들을 전수 검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동영상이 주는 제각각 '다른' 충격
정지민 씨. 다우너 소 동영상, 충격적이지요. 맞습니다.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에서 방송에 쓰도록 허락받아 PD가 가져온 그 동영상을 보는 순간, 저도 대단히 충격이 컸습니다. 훗날 방송을 본 시청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건 '현실'이 주는 충격입니다. 우리가 그 동영상을 '연출'해 찍은 게 아니지요. 병든 소들이 검사 없이 참혹한 방법으로 억지로 일으켜 세워져 검사를 통과시키는 '미 축산농장의 현실'이 거기 담겨있었습니다. 인부들은 농장주의 명령에 따라, 다우너 소를 걸러내야 하는 1차 육안검사에 통과시키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정지민 씨. 그 동영상이 만약 동물사료를 전혀 쓰지 않는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청정국가에서 발생한 것이었다면 저 역시 당신처럼 '동물 학대'만 보았겠지요. 그러나 그 동영상은 우리가 곧 쇠고기를 수입하게 될 미국 축산농장 내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동물사료로 인한 교차 감염 위험이 있고, 70% 이상의 소들이 이력 추적제 없이 이빨로만 월령 검사를 하며, 무엇보다 전제 도축 소 중 0.1%만이 광우병 검사를 받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이 주는 충격의 크기와 의미는 각자 가진 지식과 정보에 따라 달랐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동물학대'를 일삼는 인간의 잔인함과 '불법행위'라는 것만 보았겠지요. '미국산 쇠고기 안전하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이가 본다면, '허위·날조'라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도축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그 동영상을 본다면, 단박에 '광우병에 대한 검역시스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규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지민 씨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그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젖소→이런 소
'<PD수첩>에 나온 소들은 대부분 젖소'라는 제목의 기사 안에 이런 글귀들이 있었습니다. 역시 당신의 주장을 보도한 기사이지요.
"<PD수첩>에서 사용한 이 단체의 영상에 등장하는 소가 대부분 젖소. 젖소는 나이가 들면 결정적으로 칼슘이 부족해서 다우너 증상을 보인다."
"소비자들은 심지어 젖소까지 도축하는 것은 모르겠죠" 라고 말한 음성도 동물 학대를 고발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왔던 것.
<PD수첩>이 '젖소→이런 소' 의역을 한 것은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하기 위한 의도적 오역이다. 위험하지 않은 젖소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바꾼 것이다' 라고 주장하셨지요. 그러나 작가였던 저에게 '의도'를 물으신다면, '정반대'였다고 말해드리고 싶군요. 오히려 광우병 위험성을 '축소'했다면 모를까요.
<PD수첩>은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 7월 15일 방송 당시, 문제가 됐던 마이클 그래거 씨의 '젖소' 인터뷰를 뒷부분까지 연결해 모두 공개했었습니다.
(7.15 방송 中 마이클 그래거 씨 인터뷰. 4월 촬영)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보거나 알면 상당히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 이런 소(젖소)가 도축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여기까지가 4.29 방송에 나갔던 부분입니다.)
(7.15 방송 中 추가. 4월 촬영)
그러나 미국에서는 젖소가 값싼 햄버거로 사용되기 전에 약 4년까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육우는 오직 약 2년 정도가 지난 후에 도축됩니다. (젖소가) 4년을 살도록 허용되어 있다는 사실은 BSE와 같은 병원균에 잠재적으로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그것이 바로 왜 북미에서 발생한 BSE 사례 15건 중 대부분이 젖소에서 발견되었는가에 대한 이유이죠.
월령이 높아질수록 광우병 위험성 역시 높아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그런데, 방송 후 정지민 씨는 카페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셨더군요.
(정지민 씨 카페 글 中)
물론 그레거가 준 정보가 엄청 전문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취재 자료에 없었던 내용이고 또 이것을 갖고 오역 아니었다는 입증을 받았다고 하는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7월 15일 피디수첩은 그 정보를 "새로이" 얻어왔으면서 다음과 같이 나레이션을 내보낸다. (중략)
결정적으로, 4월부터 피디수첩은 그레거가 알려준 저 정보를 알고 "이런 소"라고 의역했다는 거다. 근데 그레거는 7월에 저 정보를 알려줬다. 김보슬 피디와 마이클 그레거 둘 중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탄 건가? ㅎㅎ
정지민 씨, 당신은 이 인터뷰가 4월 방송 당시 취재자료에 있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당신이 번역하지 않은 테이프 안의 인터뷰이기 때문입니다.
다우너 소 동영상 관련 <<PD수첩> 방송내용을 모두 과장, 왜곡이라 주장해왔던 정지민 씨는 알고 보니 정작 동영상 제작자인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마이클 그래거 인터뷰 3권 중 단 한 권도 번역하지 않았더군요. 심지어 위의 '다우너 소 광우병 연결 왜곡'은 4월 29일 방송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장한 것라지요?
당신이 보지 못했던 마이클 그래거 씨의 인터뷰 안에는 '젖소'가 광우병 위험이 더 높다는 내용과, 다우너 소 동영상이 단지 '동물학대'만이 아닌 식품 안전 문제라는 인터뷰, 그리고 미국의 축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다우너 소 동영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지요. 정지민 씨는 다우너 소 동영상 제작자의 해설과 설명을 전혀 듣지 않은 채로, 자신이 가진 상식만을 근거로 동영상에 대해 '왜곡'이라는 주장을 계속 해 오셨던 것입니다.
다우너 소 동영상 속의 소들은, '다우너 소'이기에 일반 소보다 광우병 위험이 높았고, 게다가 '젖소'들도 있었기에 더 위험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다우너 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이 프로그램 첫 도입부분에서, 젖소까지 특화시켜 얘기하자면 너무 어렵고 길어진다는 판단 하에 화면 속 다우너 소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이런 소'로 바꿨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다소 의미가 축소되더라도 시청자의 이해와 프로그램의 흐름을 매치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려를 수차례 제작진에게 전달했으나 묵살당했다?'
<PD수첩> 제작과정에는 수십 명의 스태프들(제작진 외, 촬영 스태프, 후반작업 스태프, 프리뷰어와 번역자 등 외부 인력)이 각각 자신의 위치와 분야에서 제작에 관여하며, 그 과정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작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의견이 '타당하다면' 제작진은 당연히 그 의견을 수용하겠지요. 번역 감수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수자가 제작진의 의견과 전혀 다른 감수를 제시했는데 그게 '타당하다면', 당연히 취재 작가가 PD에게 와서 얘기해야만 합니다. 실제로 종종 그런 경우들이 있지요.
정지민 씨는 자신의 우려를 '제작진에게 수차례, 강하게 전했으나 묵살당했다'라고 주장하셨지요. 당신이 '수차례, 강하게' 얘기했든 '단 한 번' 얘기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PD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취재작가는 당신의 의견을 '묵살'한 것이 아니라, '타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PD에게 전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4. 오역의 의도성 여부
지금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으나 최근 고재열 기자의 '독설닷컴'의 '정지민 씨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 기사로 인해 수면 위로 등장했기에 이번 기회에 짚어보고자 합니다.
<PD수첩>이 인정하고 시청자에게 사과했던 '오역'은 모두 네 군데입니다. 그런데, 정지민 씨 말대로 공교롭게도 이 오역들은 모두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단정적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지요. 그 때문에 <PD수첩>은 '의도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내레이션이나 다른 인터뷰들은 모두 '-한다면' '의심' '-일 수도' 였는데, 그 사이 사이 '-걸렸던' 등의 오역을 넣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단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의도성'이 있었나 없었나를 가리기 위한 과정은 간단합니다. 초벌 번역과 감수 과정, 그리고 방송
에 나간 최종 자막을 비교하면 되지요. 그러나 <PD수첩> PD들은 이 과정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번역자들과의 신뢰' 때문입니다. PD들은 다른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미쳐 제작진과 번역자 사이의 '신의'가 깨지게 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지요.
번역자들은 많지 않은 번역료와 빡빡한 일정, 안정되지 않은 편집실 공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번역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엔 설령 실수로 한두 군데 오역을 했다 해도 제작 과정 어딘가에서 걸러질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실수 하나가 프로그램의 진위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그 부담을 안고 번역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제작진은 그 '믿음'을 위해 '감수'라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감수 과정에서 오류가 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수를 잘못 했다며 나중에 감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제작과정에 개입되는 모든 스태프들의 크고 작은 사고와 실수는 모두 PD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PD수첩> PD들은, 공개적으로 한 번도 번역자들의 초벌 번역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번역 오류는 <PD수첩> 제작진의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였다고 해명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기자가 '의도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번역 원본과 감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정지민 씨가 번역·감수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냈을 것입니다.
그에 따른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기자의 질문에 PD가 한 답변은 결코 그 책임을 당신을 포함한 번역자들에게 돌리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번역자들의 번역 실력을 '폄하'하고자 했던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진심으로 이 문제가 누군가의 '책임'이 아니라, '사실관계 확인' 차원으로만 다뤄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번역·감수자였던 정지민 씨의의 아래와 같은 '답변'의 진위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요.
(정지민 씨 카페 글 中)
<PD수첩> 방영분의 모든 오역에 대해 하나하나 내가 하지 않았다고 굳이 말할 필요가 뭐가 있었나? 당연지사니까 하나하나 말을 안 한 것이지. 초벌번역이라고 표현하는 파일들을 봐도 그렇게 내가 번역한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번역/감수한 대로 자막 내용을 만들었다면 오역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실제로 내가 잘못 번역한 것은 전혀 없으며, 또한 책임질 것도 없으니까, 내게 책임을 씌울까봐 걱정했던 부분은 전혀 없다.
그래서 저는, 다른 번역자들의 깊은 양해를 구하며, <PD수첩>이 인정했던 번역 오류 중 한 개의 원본 내용을 공개할까 합니다. 영상자료 테이프 12번에 있는 내용입니다.
(번역 원본 中)
기자/@ 로빈 빈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의사들은 아레사가 변형성 크로이츠펠트-야콥 질병 또는 vCJD에 걸렸다고 한다. 이 병은 뇌 질환으로, 스펀지처럼 될 때까지 구멍을 뚫리게 하느 것이다. 광우병의 인간감염 형태이다. CDC에 따르면 이 병으로 세계전역에서 1996년부터 200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문제의 'suspect' 부분입니다. '걸렸을지도 모른다'가 '걸렸다'로 자막 표기 돼 오역 논란이 생겼고, <PD수첩>이 번역 오류를 인정했던 부분이지요. 이 자료 테이프 12번을 누가 번역했는지는 정지민 씨가 가장 잘 아실 겁니다.
정지민 씨.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번역 실력을 모릅니다. 다른 번역자보다 번역료를 더 받는지 덜 받는지도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PD들이 번역과 감수 결과와 다르게 의도적으로 자막을 단정적으로 바꿨는가,에서 중요한 건 '팩트'이며,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의 번역자이자 감수자였던 정지민 씨에게도 정중한 양해를 구합니다.
검찰 수사-원본 제출?
(정지민 씨의 카페 글 中)
방송제작에 대한 이해 따위 없이 내가 본 취재 자료 내용만 알아도, 편집이 의도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왜곡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피디수첩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는 왜곡을 해명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갖고 있는 일부 자료 그리고 취재 자료에 대한 기억만을 갖고도 아래 주장들을 펼칠 수 있다. 만일 취재자료에 대한 내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면, 피디수첩은 필히 방송이 아닌 취재 자료로 반증해야 할 것이다.
지금 취재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기억에 의존해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인데, 내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면 취재 자료를 제출해서 반증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이런 주장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아마 다른 신문·방송 종사자들이 봤더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기억'에 의존해 말하는 정지민 씨의 발언을 반증하기 위해 왜 <PD수첩>이 검찰에 원본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걸까요. 자신의 발언 진위만 밝히면 될 뿐, 한국 언론 전체가 막대한 대가를 치러도 좋다고 말하는 걸까요 혹은 <PD수첩>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동료 언론인들과 동종 언론사들에게 장차 족쇄가 될 것임에 분명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정지민 씨. 당신이 검찰에 넘긴 취재 원본이 어느 정도인지 저는 모릅니다. 또한 다른 어떤 번역자가 당신에게 혹은 검찰에 원본 파일을 넘겼는지도 모릅니다. 검찰은 원본을 90% 이상 '복구'하였다며 조만간 '중간수사 발표'를 한다고 하더군요.
검찰에 원본을 제출한 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한 일이기에 <PD수첩>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려면 조용히 할 일이지 다른 번역자들까지 거론하며 떠들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군요.
<PD수첩> '광우병' 편엔 당신 이외에도 많은 번역자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영어 번역자만 모두 13명이었지요. 그 분들에게 PD들은 면목 없어 하고 있습니다.
정지민 씨. 저는 진심으로 다른 번역자 분들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상처 입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 역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5. 당신은 '퍼즐의 전체 그림'을 모릅니다.
정지민 씨. 나는 이 긴 글을 읽고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거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당신은 수긍하기 힘들겠지요. 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당신의 글에서 짐작합니다.
(정지민 씨 카페 글 中)
개인적으로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따라서 쇠고기의 위험성 때문에 졸속 협상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한 번에 전면적인 개방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현재 외국에서는 대부분의 시각이 이렇다. 황당한 괴담을 낳고 균형성, 객관성, 진실성을 결여한 프로그램 때문에, 비록 추가 협상을 하기는 했지만, 한동안 한국이 비이성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는 힘들리라는 것.
굳이 '외국' 어딘가의 시각을 덧붙이지 않아도 당신이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어떻게 봤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당신이 왜 그토록 피디수첩에 적의를 갖고 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정지민 씨.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른 수입 위생 조건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는 100% 안전하지 않다"였습니다. <PD수첩>은 이런 관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당신과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불편해하겠지요.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당신은 줄곧 '취재 분량의 상당 부분'을 봤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영어 번역본 900여 분 중 275분을 나 혼자 번역'한 것으로 당신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감수를 위한 몇 시간을 포함해 총 3일간 MBC에 왔지만, 그조차도 당신은 하루 종일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275분과 '짧은 시간'. 이것이 정지민 씨가 이 프로그램에 함께 한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정지민 씨. 당신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미국 취재 원본들이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퍼즐 조각 몇 개로 전체 그림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광우병' 편 전체 테이프는 국내외, 영상자료까지 합해 모두 150여 권, 당신이 번역했던 6장의 문서 외에 한글 영어 문서 자료들은 수천 장이 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분량'이 아니라, 그 퍼즐조각들이 모여 그리는 '전체 그림'입니다. 한 프로그램에 대한 관점이란 '퍼즐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미국 촬영본 중 무엇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방송에 쓸 건지를 알려주는 기준은 사전 취재를 비롯한 모든 취재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정지민 씨는 자신이 번역한 테이프에서 본, 미 언론에 출연한 농무부 관리가 '위험이 미미하다'라고 한 말이 '누락'됐다며 왜곡의 근거로 삼았지요. 농무부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이제 와 안심시키려고만 한다는 앵커나 기자의 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두 명의 시민 인터뷰 중 '쇠고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 누락됐다며 문제 삼았습니다. 그 시민의 발언이 질문에 따라 각각 다른 취지의 대답을 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지요. 어찌하여 당신은 '위험성이 미미하다' '안전하다'는 말만 기억하며, 그것을 문제 삼았을까요.
작가인 나는 미 농무부 관리와 미 축산업계 간엔 일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2005년 입법 예고된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가 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축산업계가 벌이는 로비의 결과라는 의혹도 들었습니다. 협상 타결 후 미 축산업계가 미 정부에 대놓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홈피 게시문을 봤습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오직 '한국 소비자의 관점에서 앞으로 수입하게 될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따져보고자 했던 <PD수첩>의 시각으로 본다면, 미 농무부 관리의 말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지민 씨. 당신 덕분에 미국 취재 원본을 90% 가량 '복구'했다는 검찰이 과연 어떤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할지 개인적으로 나는 매우 궁금합니다. 설사 검찰 아닌 정부가, 여당이, 전체 원본을 100% 다 복구한다면 또 어떨까요. 그들이 그 원본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든다면 <PD수첩>과 다른 어떤 모양이 될지, 상상이 되십니까.
2008년 7월
최근 유독 쇠고기 관련한 소식들이 자주 들리더군요. 특히 일본 총리의 발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너희도 20개월 풀어라"라는 의미의 부시 대통령의 말에 일본 총리가 거부 의사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식품의 안전, 안심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과학적인 식견에 근거해 판단해가겠다" 라면서 말이지요.
4월 방송 당시 봤던 '취재 원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인터뷰를 했던 우리 협상 대표는 "우리가 먼저 했을 뿐 일본과 중국도 곧 그렇게 협상 할 겁니다."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관리는 한국의 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에 대한 어떤 자료를 근거로 그렇게 협상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대로 협상할 것이다." 이 내용은 당시 방송에서 '누락'됐습니다.
<PD수첩>은 미국에서 축산업계와도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협상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한국은 세계의 과학적인 표준을 따르는 리더십을 가진 나라로 칭찬받아 마땅하며, 완전히 시장을 열어준 것에 감사한다."고 하더군요. 이 내용 역시 방송에는 '누락'됐습니다.
그런데, 이들과 같은 미국 목축업자들이 '광우병 위험'을 우려해 30개월 이상 된 캐나다 쇠고기 수입을 중단토록 법원에 요청한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법원은 이 요청을 일부 받아들여 '미 농무부는 수입결정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지요.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OIE에 의해 미국과 같은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지정된 나라입니다. 지난 4월 당시 피디수첩은 이 건도 취재를 했었지요. 누군가가 "이율배반"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러나 이 내용 역시 본 방송에는 '누락'됐습니다.
혹시, 새로 들어오는 쇠고기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수출작업장 중엔 최근 병원성 대장균 O-157이 검출돼 2400톤(t)을 리콜한 업체도 포함돼 있답니다. '1급 리콜'이었다지요. 미국 정부로부터 '분쇄육 공정 자체가 O-157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받았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앞으로 분쇄육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돼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O-157이 검출되더라도 당장 해당 작업장의 수출 선적을 중단시킬 수도 없답니다. 미국 정부에 통보한 뒤 협의하거나 개선 조치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제작 당시 협상 결과를 앞에 놓고, 작가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어 했던 '검역주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본 방송에선 길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광우병' 편 제작에 참여했던 작가로서 개인적인 소회를 밝혀도 좋다면, 정지민 씨, 나는 그때 방송을 끝내놓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장차 몇 가지 번역 오류와 실수로 프로그램 전체가 왜곡으로 몰리는 사태가 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한 채로, 이미 충분히 절망스러웠습니다. 담아야 할 내용은 너무 많은데 프로그램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처음 편집을 했던 두 시간 분량에서 이것도 저것도 빼야 했던 심정은 마치 살점이 뜯기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다른 작가가 했다면 더 잘했을까, 방송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지민 씨. 국민들이 촛불을 든 건,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의심환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한 달 전 부검결과가 발표된 미국 여성의 MRI 결과가 무엇이었든 국민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건, 앞으로 자식들과 함께 먹을 미국 쇠고기가 안전했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PD수첩>이란 일개 프로그램이 완전무결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고 해서, 곧 들어오게 될 미국산 쇠고기가 100%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PD수첩>이 또 얼마나 갈기갈기 찢길 지 알 수 없습니다. 작가인 저조차 몰랐던 또 다른 흠집이 어디선가 발견될까 마음을 졸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무엇이 괴담이 되고 과장이 되고 왜곡의 근거로 떠오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지민 씨. 그것은 그 프로그램의 의미와 파장을 꺾어야만 하는 누군가의 일이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이제 그만, 거짓의 상상을 멈추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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