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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논객 열전

비빔밥이 초밥보다 우수한 이유 (산케이 구로다 기자에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2. 29.

뉴욕타임스에 실린 비빔밥 광고.



산케이 구로다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일전에 뵌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2002년 대선 때 제가 찾아가 한국 대선에 대한 기자님의 견해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구로다 기자님이 보여준 조갑제 기자에 대한 존경심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걱정이 되었던 것은 구로다 기자님이 한국을 보는 창이 조갑제라는 창에 너무나 국한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조갑제라는 창은 오히려 한국을 오해할 수 있는 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그 결과물을 칼럼으로 보여주셨네요.
구로다 기자님께서 12월26일자 산케이신문에 실으신 <외신칼럼> '비빔밥은 괴로워?' 잘 보았습니다.
비빔밥 혹은 비빔밥을 먹는 방법의 특성을 교묘히 활용해 은근히 한국인을 무시하시더군요. 


구로다 기자님의 글을 읽어보니 두 개의 칼을 더 숨겨 놓으셨더군요.
하나는 무조건 비벼먹으려 드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통해
식민과 전쟁을 겪으며 척박해졌던 한국의 식문화를 환기시키고
다른 하나는 ‘양의 머리를 내밀고 개고기를 판다’는 의미의 ‘양두구육’을 써서
한국인의 개고기 식문화를 슬쩍 드러내셨더군요.
대단하십니다.


구로다 기자님의 글을 읽고 좀 난감했습니다.
겉다르고 속다르기로 소문난 일본인에게 겉다르고 속다르다는 얘기를 듣다니, 
한국이 조선과 핸드폰 등에서 일본을 앞서더니
이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보다 더 얍삽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영원한 '이류 일본' 혹은 '일본 아류'로 머물렀으면 하는, 
구로다 기자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합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책도 쓰신 만큼 '한식 세계화' 파괴력을 잘 알고 계시겠죠. 
이번 칼럼은 그에 대한 견제구라고 해석하겠습니다. 


구로다 기자님이 '도발'을 하셨으니, 저도 살짝 '도발'을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비빔밥이 초밥보다 우수한 이유'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제가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요? 


이미 일본의 초밥은 세계화를 이뤘습니다. 
러시아 마피아들도 초밥을 먹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일본의 초밥은 인정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음식입니다. 
재료의 신선함, 소스의 정밀함, 가공 과정의 정교함에서 초밥은 충분한 성취를 이룬 음식입니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음식입니다.
초밥이 한국에서 유래했으니 우리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둔탁해보이는 비빔밥이 왜 초밥보다 우수한 것일까요? 
그것은 '조선 막사발'이 우수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자연스러움' 그것이 막사발과 비빔밥의 공통점입니다. 


초밥의 헤게모니는 조리사에게 있습니다. 
초밥 뿐만 아니라 일본 음식 대부분, 그리고 세계의 대부분 음식이 그러하지요. 
조리사가 좋다는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쁘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손님은 초밥에 대한 조리사의 규정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비빔밥은, 한국음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손님' 즉 먹는 사람에게 '맞춤형' 음식으로 제공됩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 포인트를 둔 실용식이라는 것이 한국 음식의 특성입니다. 


왕이 먹는 수라에도 감히 음식이 자신을 뽐내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이 먹기 좋게 쓸리고 담길 뿐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초라해 볼 정도입니다.


한국 음식이 '맞춤형' 음식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쌈밥입니다. 
쌈의 종류를 고를 때, 밥의 양을 결정할 때, 고기를 고를 때, 고명을 고를 때, 쌈장의 종류를 고를 때,  
여러 번의 판단을 거쳐 먹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음식이 탄생합니다. 


여러 가지 판단을 하는 과정을 통해 
손님은 자신만의 요리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요리를 말입니다. 
비빔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의 판단을 거쳐 주체적으로 만든 음식이 바로 비빔밥입니다. 


끝으로 <대장금> 이야기를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린 장금에게 한상궁은 아침에 물을 떠오라는 명을 내립니다. 
장금은 정안수를 비롯해 온갖 좋은 물을 떠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상궁에서 밤새 몸상태가 어땠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 맞는 물을 내오게 됩니다. 
이것이 한국음식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음식은 
주방장이 좋으면 좋다고 알고 먹어라, 라고 말하지만
한국 음식은,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당신에게 맞는 음식을 드세요. 라고 말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이 위대한 것입니다.


한국인은 어떤 음식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상태에 좋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요즘 눈뜬 '웰빙'이라는 개념을
한국인은 수백년 전부터 알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빔밥이 초밥보다 우수하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이의 있으신가요? 


주> 구로다 기자의 칼럼 원문은 이 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eaststar77/20096615230

그리고 양두구육 비유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 글을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http://blog.naver.com/yoonsk828?Redirect=Log&logNo=90077278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