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허광준 (위스콘신 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님이 시사IN에 기고한 글로,
저자의 허락을 얻어 '독설닷컴'에도 올립니다.
‘빵꾸똥꾸’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오버
대중매체의 내용을 심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민감한 일이다. 국가 기관이 심의를 담당하고, 심의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제재 조치를 부과한다면 더욱 그렇다. 정치적으로 악용할 여지를 빼놓고 보더라도, 국가 심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나 불필요한 간섭이 되기 십상이다.
내용 심의가 어려운 것은 매체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국가 기관 사이에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을 가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가치 기준이란, 심지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건전한 사회 윤리’라든가 ‘공동체적 가치’라는 것은, 말은 간단해도 그 말에 값하는 실제 내용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국가 기관이 개입해 내용을 심의하고 규제하는 일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의 규제에는, 강압적 규제가 야기하는 부정성과 규제 대상이 된 매체 내용의 부정성을 조심스럽게 비교하는 일이 필수다. 대체로 말하자면, 대중매체의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 낳는 위험보다 국가 기관의 개입이 야기하는 구조적이고 강압적인 위험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해서 좀 안됐지만, 나는 MBC의 한 시트콤에서 나오는 ‘빵꾸똥꾸’라는 말이 참 싫다. 말 자체도 귀에 거슬리고,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아역 캐릭터도 정이 안 간다. 이런 말은 하나도 우습지 않을뿐더러, 억지로 웃음을 짜내려는 느낌마저 들어서 거부감이 더 생긴다. 안 들었으면 싶은 말이다.
국가 규제가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까닭
그러나 이 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말이 범죄 행위이거나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종류의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말에 대한 평가나 선호는 취향의 문제다.
따라서 나는 비록 이 말이 싫더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말에 대해 “어른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자주 사용하고 필요 이상으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묘사됐다”라고 판단하고 권고 조치를 내린 결정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나는 이 말을 듣기 싫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심의기관이 그런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 대중문화를 규제하던 갖가지 명분과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불신감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김추자의 노래 ‘거짓말이야’라든가, 신중현이나 전인권의 노래에 붙은 ‘창법 미숙’이라는 딱지들 말이다. 모두 국가가 나서지 말아야 할 데 나선 사례이다.
현재의 방송 상황으로 볼 때, 내용에 대한 심의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 말이다.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고, 많은 지탄을 받는 막장 드라마, 막장 쇼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이라는 절대 기준에 목 매단 방송에 자정(自淨)을 기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월례 ‘지상파 방송 심의의결 내역’을 보면, 심의 결정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위원회의 심의 중 많은 부분이 시청자의 민원 제기에 따른 것임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국가 규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태를 염려해 방송을 심의하고 싶어하는 분들께 한 가지 위안을 드릴 수 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언론학에서는 상식처럼 되어 있는 ‘제3자 효과’가 그것이다. 대중매체의 부정적인 메시지는 언제나 나보다는 남에게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그걸 걱정하다 보면 규제하고 검열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악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아이들이 윗세대를 보면서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 게 ‘빵꾸똥꾸’ 같은 말 때문이겠나. 어른들이 어른값을 못 하니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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