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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허광준의 '메스 미디어'

광고주 불매운동을 미국에서 했다면 처벌받았을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2. 13.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회원들에게
검찰이 징역형 등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1심 선고가
2월19일 서울중앙지법 열릴 예정입니다.

이들이 미국에서 불매운동을 벌였다면 어땠을까요?
미국에서 언론 소비자의 광고주 압박 운동은
흔히 벌어지는 소비자 운동의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일을 이유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처벌되는
어이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허광준님이 <시사IN>에 보내주신 글을 
본인 허락을 얻고 '독설닷컴'에도 게재합니다. 
 

지난해 7월 특정 신문사를 상대로 ‘광고 중단 운동’을 벌인 이정기씨(가운데)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광고주에게 항의 전화 거는 일은 일상다반사


허광준 (위스콘신 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2007년 10월, 미국의 우익 라디오 방송인 러시 림보는 자기의 토크쇼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조국을 증오한다”라고 비난했다. 자신이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미국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정치 평론가 앤디 오스트로이는 이런 왜곡 선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평론을 쓰는 인터넷 매체에 림보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러시 림보 쇼>에 광고를 내는 16곳의 목록과 자세한 연락처를 밝히면서, 전국의 자유주의자가 분연히 일어나, 이들 회사에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는 업무 시간까지 명시했다. 오스트로이가 제시한 항의 문구는 “귀사가 림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붙이는 광고를 철회하지 않는 한, 나는 귀사의 제품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였다.



‘시에라 클럽’은 미국 최대 환경운동 단체다. 2007년, 텔레비전 방송인 폭스 뉴스(Fox News)가 ‘지구 온난화 주장은 허구’라는 취지의 방송을 계속 내보내자, 시에라 클럽은 폭스 뉴스를 비판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공격 목표는 폭스 뉴스가 아니라, 이 방송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이었다. 주요 타깃으로 찍은 것은 대형 건축자재 양판점인 홈디포와 로즈였다. 시에라 클럽은 회원과 일반 시민에게, 이 두 기업에 항의 전화를 걸고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라고 촉구했다. Foxattacts.com 같은 언론운동 단체도 가세했다.



톰 에반스는 미국 시애틀에 사는 변호사다. 그가 홈디포 본사에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건 것도 지구 온난화를 왜곡하는 폭스 뉴스에 광고를 내는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에반스는 홈디포의 환경 담당 부사장과 5분 동안 통화를 하면서,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홈디포를 애용하는 소비자였소. 그러나 폭스에 계속 광고를 낸다면 이를 중지할 테요.”


    

광고는 기업의 권리, 압박은 소비자의 권리



이러한 캠페인 결과, 로즈는 일찌감치 손을 들었다. 로즈는 폭스 뉴스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지구 온난화 허구론의 선봉에 서 있던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에 광고를 내고 있었다. 불매 압력이 담긴 편지가 쇄도한 뒤, 로즈의 고객 서비스 담당자는 소비자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오라일리 팩터> 프로그램과 관련한 지적 감사드립니다. 로즈는 대중매체에 광고를 내는 것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을 갖고 있습니다. 검토 결과, <오라일리 팩터>는 이같은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로즈는 더는 이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지 않을 예정입니다.”



광고주 압박 전술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2003년 여름, CBS 방송은 레이건 대통령 가족을 소재로 2회짜리 다큐멘터리 드라마 <레이건 가족>을 방송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레이건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본 내용이 알려지면서 보수층이 거세게 반발했다. 전 의원 보좌관이며 정치 컨설턴트인 마이클 파란지노는 즉시 BoycottCBS.com을 개설하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를 조직했다. 캠페인 결과 CBS에 항의 이메일 8만 통이 쇄도했다. 그보다 더 큰 위협은, CBS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는 압력이었다.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몰린 사람들에게 파란지노는, 30일 동안 CBS에 광고를 내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기업은 어떤 방송이든 광고를 내고 지원할 권리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시청자는 불매 압력으로 이런 기업을 응징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CBS는 이 프로그램 방영 계획을 포기했다.



언론 광고주 압박은 정치적인 이유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방송되는 24년 전통의 락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 채널 ‘지락 라디오(GRock Radio)’는 바로 얼마 전인 1월19일부터 ‘힛 106(Hit 106)’으로 방송 이름을 바꾸었다. 틀어주는 음악도 얼터너티브 락에서 최신 유행 가요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 쪽이 더 많은 청취자를 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락 음악 팬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만히 앉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청자 앨리스 잰코스키는 락 방송을 돌려달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뜻을 같이 하는 회원 8천 명이 순식간에 모였다. 잰코스키와 애청자들이 선택한 전략은 새 방송인 힛 106에 광고를 내는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원들은 펩시, 버거킹, 현대자동차 딜러 등 20개 광고주가 명시된 리스트를 놓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불매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언론에 광고를 내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압박은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소비자 운동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활동이 보장되는 이유는, 언론이 언론할 자유가 있고 기업이 기업할 자유가 있다면, 소비자는 구매를 지렛대로 하여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힘 있는 국가 기관이 이런 상식을 저버리고 한쪽 편만 든다면, 이해 관계자의 사병(私兵)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언급한 광고주 압박 캠페인과 관련해 미국 사법 당국의 조사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