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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요즘 KBS 기자들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25.




요즘 KBS 기자들은 자사 뉴스를 볼 때 손가락 발가락을 쫙 펴고 본다고 한다. 안 그러면 부끄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KBS 기자협회보(협회보)에 따르면 그렇다. 협회보는 최근 KBS 뉴스 보도 프로그램을 평하며 ‘비판 균형 실종된 원전 수주 보도-손발이 오그라드는 MB 찬양’을 제목으로 달았다. 협회보에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뉴스’ 사례가 실렸다. 

KBS 뉴스는 한전의 원전 수주 관련 보도를 하면서 난데없이 “청와대는 오늘 업무보고가 열린 영빈관의 실내 온도를 18℃에 맞춰 진행했습니다(12월27일 <뉴스9>)”라는 멘트로 마무리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우리나라가 40년 만에 원전 수출국이 된 데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도 있었지만 천운이 따랐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12월28일 <뉴스9>)”라고 보도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다음은 1980년대 KBS 뉴스가 ‘땡전뉴스’라는 비난을 받을 당시의 김인규 기자(현 KBS 사장)의 리포트다. “제5공화국 출범 1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지난 30여 년간의 헌정사에서도 이룩하지 못한 일들을 국민의 여망과 화합 속에 이룩한 획기적인 한 해였습니다(1982년)” “지난 6년 전 극심한 사회혼란과 정치적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출발한 민주정의당은 무엇보다 구정치 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 시대 새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 역사 창조에 나섰습니다(1987년)”.

KBS 기자들이 제2, 제3의 김인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10년차 기자는 요즘 KBS 뉴스에 대해 “우리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MBC나 SBS가 아니다. KTV다. 비판 기능을 상실한 요즘 KBS 뉴스는 국정홍보TV 뉴스와 다를 것이 없다. 비판적인 기사는 대부분 출고되지 못한다”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뉴스 보도프로그램 이어 탐사 보도 프로그램도 정권 찬양

KBS의 대표적인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쌈>도 정체성이 급변했다. <시사기획 KBS 10>으로 바뀌었고 다루는 주제 또한 정권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한국형 원전 세계로(1월5일)’에서는 “현대건설 CEO 출신으로서 가격이 적정해야 한다는 등 수주 전 전략과 방법론을 막후에서 조언했다”라고 대통령 칭찬에 열을 올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KBS 뉴스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을 배려하는 정책을 강조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했다(12월16일)” “오늘 대선 승리 2주년이자 68번째 생일을 코펜하겐에서 귀국하는 특별기 내에서 맞았다(12월19일)” “단독 특별사면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였다(12월29일)” 따위 찬양 위주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KBS가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듣는 와중에 국민적 사랑을 받은 KBS 기자가 한 명 있었다. 폭설 속에서 몇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현장 상황을 보도해 ‘눈사람 기자’라는 별명이 붙은 박대기 기자다. 그런데 박 기자가 이 보도를 할 때 눈길을 헤치며 서울에서 춘천까지 5시간이 걸려 출근한 기자가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을 맡았던 김현석 기자다.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을 최일선에서 막았던 김 기자는 징계성 인사로 지난해 마지막 날 KBS 춘천방송총국에 발령을 받았다. 그가 인사발령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제출한 아이템은 이명박 정부에서 강제 해직된 사람들의 겨울나기였다. 그의 취재 대상에는 정권에 의해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과 신태섭 교수도 있었다.

자신에 대한 징계성 인사에 대해 김 기자는 춘천방송총국 후배에게 “내가 술에 취해 들어가면 중학생 아들들이 ‘아빠 회사 잘렸어?’라며 인터넷 포털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 그러고 나서 아닌 걸 알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이들에겐 내가 자원해서 간 거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는 분위기다”라고 심정을 전했다.


박대기 기자, 선배 징계 인사에 항의해 제작거부 주장

김 기자에 대한 징계성 인사가 시행되자 KBS 기자들은 분노했다. KBS 기자협회, KBS PD협회 등 각 직능단체가 성명서를 내고 따졌다. 30기 이하 젊은 기자 94명은 제작거부를 주장하며 연판장을 냈다. 연판장에는 눈사람 리포팅을 마치고 돌아온 박대기 기자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후배 기자들이 연판장을 돌리면서까지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자 선배 기자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1월14일 KBS 기자협회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진우)는 기자 총회를 열고 투표를 통해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투표 참가자 155명 중에 147명이 찬성(반대 7명, 무효 1명)했다. 제작거부를 시작할 시점과 방식은 비대위에 일임했다.   

1월15일 한국기자협회 우장균 회장은 KBS 사장실을 방문해 김 기자 징계에 대해 따졌다. 김 사장을 만나고 나온 우 회장은 “김인규 사장은 ‘서울에 있는 팀장들이 김현석 기자를 거부해서 보도본부장이 인사팀에 의뢰해 지방총국에서 받아줄 곳을 찾았고 춘천 보도국장이 받아주기로 해서 그곳으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해 징계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가 겪고 있는 일은 지난해 KBS 기자들이 경험한 크고 작은 고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지난해 1월 김현석 기자가 파면되고 성재호 기자가 해임되었다. 이병순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다는 이유였다. 2월에는 보도국 게시판 실명제가 강제로 시행되어 언로가 막혔다. 이후 KBS 뉴스는 정권친화적이 되어갔다.


KBS 신뢰도 상징 탐사보도팀 사실상 해체

그 역풍을 맞은 것은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방송 때였다. KBS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봉변을 당했다. 봉하마을 현지 중계차는 마을에서 쫓겨나 빈소 옆이 아니라 마을 공터의 황소 옆에서 방송해야 했다. 노제가 열렸던 서울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오늘이 KBS 제삿날’이라며 KBS 여기자에게 물병을 던지며 수모를 주었다. 견디다 못한 기자들은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해 불신임 의견을 냈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장 크게 된서리를 맞은 곳은 KBS의 자랑이었던 탐사보도팀이었다. 2005년 4월 신설되어 권력비리까지 파헤쳐서 KBS 신뢰도 향상에 일등 공신이 되었던 탐사보도팀은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2006년·2007년), 한국기자상(2007년) 등 국내 주요 보도상을 비롯해 해외 보도상을 휩쓸었다. 막강한 취재력을 자랑했던 KBS 탐사보도팀은 현재 사실상 해체되었다. 

2008년 가을 탐사보도팀의 산파 구실을 했던 김용진 탐사보도팀장이 울산총국으로 징계성 발령을 받았고, 팀이 보도제작국 ‘쌈’과 통합되고 인원이 축소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김만석 탐사보도팀장 역시 좌천성 인사를 당하고 2010년 1월6일 ‘쌈’마저 프로그램 이름과 성격이 바뀌면서 해체되었다.

탐사보도팀에 오래 근무했던 한 기자는 “위에서 아이템을 지시하는 ‘하청식’ 제작 방식과 언제까지 만들어내라는 ‘납품식’ 제작 방식으로는 결코 좋은 탐사보도를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 예로 든 것이 협회보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보도’로 꼽은 <한국 원전 세계로>(1월5일)였다. 간부들의 지시로 급하게 만든 이 프로그램은 정권 홍보적인 내용 일변도였다.

김인규 사장은 현재 보스턴컨설팅에 경영진단 용역을 맡겨 놓은 상태다. 이 용역 보고서가 나오면 KBS에 큰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들도 이에 대비하고 있다. 사측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기존 노조를 탈퇴해 언론노조 KBS본부를 세우고 KBS의 ‘리틀 MB’와 일합을 준비하고 있다. KBS는 올해도 시끄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