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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못미' 프로젝트/'소셜 엔터테이너'를 보호하라

책 읽는 김제동은 '신영복빠'였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2. 26.



제가 문화팀으로 부서를 옮겼습니다.
앞으로 <독설닷컴>을 통해 좋은 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두 책좀 읽을라구 하구요)
일전에 시사IN에서 책 부록을 만들 때 받았던 김제동씨 원고를 먼저 소개합니다.



신영복 선생님 '콘서트강의' 사회를 보고 있는 김제동씨



글 - 김제동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와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새겨진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느끼는 것처럼 차이에 주목하기보다 본질에 좀 더 주목하고, 우리가 지닌 본질로서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의 본질은 웃음이어야 합니다. 그 웃음의 뿌리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시민단체에서 신영복 선생님 강연을 열면서 제게 사회를 맡겼습니다. 과분하게도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라고 제목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날 사회자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청중으로서 책에서 보았던 좋은 구절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제동씨는 무대 뒤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경청했다. 사진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책에 나온 대로 ‘미래로 가는 길은 오래된 과거에서 찾는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책에서 찾은 미래의 길이 될 ‘오래된 과거의 기록’을 몇 줄 전합니다.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굴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논어> ‘학이’ 편)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논어>) 

고전에 대한 신영복 선생님의 해석도 일품입니다. 이를테면 <논어>의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신 선생님은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재해석하셨습니다.

고전이 신영복 선생님의 해석을 통해서 새롭게 재탄생하는 모습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마치 옛 현인들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제 앞에 서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부탁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저, 도서출판 밈 펴냄


신자유주의 10년의 뒤안길에서, 복지에서 진보의 길을 찾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적 투쟁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책위원과 홍보위원들이 지난 1년간 복지라는 주제로 발표한 칼럼과 논평을 묶었다(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매주 목요일에 성명이나 논평을 내왔다). 학교 무상급식이 2010년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며 복지가 부상하는 이즈음 주목할 만한 책이다.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설 복지 패러다임을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 그래서 ‘진보 대통합’의 프레임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글이라 짜임새가 있다. 개량주의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어떻게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구현해낼 것인지를 정치·경제·노동·사회복지·교육·보건의료·조세 재정의 일곱 가지 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짚었다. 대한민국을 역동적 복지국가로 만들자는 이들의 외침이 메아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대한민국이 북유럽 국가들처럼 경영자가 필요할 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잘려도 별 걱정 없이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외 지음, 사계절 펴냄


리영희 선생의 팔순(2009년 12월)을 기념해 소장 인문학자와 기자·신세대 논객이 리영희라는 창을 통해 우리 시대를 분석했다. 우상과 맞섰던 리영희를 우상화하지 않고 그를 매개로 해서 생각한다는 것, 지식인의 책무, 진짜 기자의 길을 살폈다.

고병권은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라며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오길영은 영어 실력이 사회적 성공의 보증수표로 여겨지는 시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일찍이 외국어 공부에 매진한 리영희의 사례를 통해 올바른 영어 공부와 방법에 대해 논한다.

안수찬은 “대부분의 기자들은 고관대작과 술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을 것이라 믿는다. 기자 리영희는 술 대신 책을 파고들었다”라며 지사적 기자 리영희를 추모하며 진짜 기자의 멸종을 탄식한다.

여기에 키보드 워리어 한윤형이 냉소시대의 우상에 대해 비판하며 냉전시대 우상과 싸운 리영희를 기리자고 하고, 김현진은 리영희처럼 가혹하고 정직하게 칼날처럼 순결하게 쓰자며 말랑말랑해진 시대를 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