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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

'나는 왜 타워크레인에 올라가는가' (중앙대 학생)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4. 8.

오늘 한 중앙대 학생으로부터 이런 이메일이 왔네요.
근처 계시는 기자분들 꼭 취재했음 좋겠네요. 


저는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생입니다.
오늘 중앙대학교 구조조정 이사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이사회는 10시 30분에 진행됩니다.
 
지난 교무회의에서 구조조정 안이 통과가 된 이후, 대학평의원회를 거쳐 학내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구조조정 안 승인 절차입니다.
19일간의 천막농성이 학교본부의 강제철거로 마무리 된 이후, 저는 이번에 마지막으로 구조조정 안이 통과되는 순간에 끝가지 항의하기 위해
타워크레인 고공시위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앙대학교 정문에는 R&D 센터 공사중이고 그 곳에 타워크레인이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구조조정에 부당함을 알려내기 위하여 타워크레인 고공시위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 것입니다.
 
국내 언론을 주도하고 계신 기자여러분! 중앙대학교 구조조정의 진실을 끝까지 밝혀주십시오.
외부 언론의 목소리와 관심만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막아 줄 수 있을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오늘 꼭 취재와 뉴스보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학생들 모습을 보면서 
10여년 전 성균관대 학생들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삼성 재단이 들어왔을 때 지금 중대 학생들처럼 막았다가 
많은 학생들이 상처를 입었고 
'무노조 삼성' 신화가 '무운동권 성균관' 신화로 이어졌죠. 
두산 재단이 들어온 뒤 중앙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부디 학생들이 무사했으면 좋겠네요.) 



타워크레인 고공시위에 임하여...


독어독문학과 3학년 노영수입니다. 먼저 저의 위험한 행동으로 인하여 심히 우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학우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지난밤 문과대실천단 내에서 토론하고 합의한 결과를 깨고 개인행동에 나선 것에 대해 독문/불문/일문과학생회장님과 구성원여러분들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련의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 스스로 부담할 것입니다.

지난 구조조정 최종안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인문학 영역에 대하여 취업률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민 것과 평과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또한 대학본부의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중권교수가 강단을 떠나게 된 것을 봐도 단지 형식적인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적 기능 수행을 본질로 하는 인문학 본연의 기능에 대한 몰이해와 반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난HK 부당 탈락 사건을 통해 학생들은 교육부 앞 항의집회, 헌법소원 청구 등 백방으로 구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박범훈 총장은 로스쿨사태 때와는 대비되는 모습으로 뒷짐만 질 뿐이었습니다. 정부비판의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에서 1등을 하고도, 4등까지 참여하는 국책 사업에서 배제되었지만 그러고도 외부연구수주액 1위를 한 것은 우리 선생님들의 인문학적, 양심적 학자로서의 근성과 실력을 방증하는 근거입니다.

부당한 징계시도에 맞서 싸우겠습니다. 오늘 오후 4시까지 대학본부의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타워크레인에 남게 되거나 이후 연행되는 사정과는 별개로 소환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되어 응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앞서 카우인 게시판을 통해 설명했다시피 저는 카메라를 부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당국의 채증이 일회적이고 우연적인 결과가아니라 이미 관행으로 자리 잡아 수차례 반복된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부분 축적된 당국의 불법에 맞서 저와 학우들의 초상권과 징계위협을 받지 않을 권리를 방위하기 위한 발언이었다는 경위에 대하여 다시 설명 드립니다. 덧붙여 카메라에 이미 선명하게 찍힌 저의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격분하여 '메롱'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학당국과 두산재단에 알립니다. 이번 일로 빚어진 민형사상의 책임과 그에 대한 추궁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두산건설 측에서 민사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이 개인에게 혹독한 것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이름으로 감당해내겠습니다.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공사현장에 무단 침입하여 타워크레인을 점거하는 등의 피의사실을 모두 인정할 것입니다. 또한 위의 부당한 징계시도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이 정당한 징계사유가 됨을 인정하고 새로이 소집될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나 평화적 농성에도 불구하고 천막을 강제철거 당했다는 참담한 현실과, 뒤돌아서면 애써 붙인 게시물들이 철거당하는 철저히 억압된 표현의 자유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씀드리며, 그리하여 억압과 철거로부터 저 높은 곳으로 도피하게 되는 암울한 현실이 개선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우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학내 민주주의가 총체적 난국에 처해있습니다. 우리의 입과 귀가 되는 학내 언론은 철저한 대학 당국의 감시 속에 탄압받고 있고, 우리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목소리가 보장되어야 할 대학에선, 학생 자치 탄압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몇 십년을 우리들의 손으로 만들어왔던 새터가 대학당국의 말도 안되는 통보로 인해 일방적으로 폐지된 것이 그러하였고, 새터폐지에 맞서 자체적으로 새터를 진행한 학생들이 징계받는 것이 그러합니다. 학생들의 활동을 지원해주어야 할 학교는 ‘학칙’을 족쇄로 하여 우리들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에 항의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인 천막농성도 학교로부터 허가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19일간의 천막농성은 학교본부의 강제철거로 인해 중단되었고, 저희들은 마지막까지 지켜낸 천막 한 곳을 눈물로 오열하며 스스로 걷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우여러분! 무엇이 우리들을 이러한 악조건의 상황으로 내몰았는지 꼭 알아주십시오. 우리들이 왜 이러한 상황에서 싸워가는지 꼭 알아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 악전고투 끝에 타워크레인에 올라가게 되는 저의 사정을 꼭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