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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

숙명여대의 황당한 학생사찰, 과연 누가 시켰을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28.


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숙명여대 학생사찰' 관련 원기사입니다.
제가 시사IN에 게재한 기사를 좀더 보충해서 올립니다.
이와 관련한 제보가 있으면
gosisain@gmail.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숙명여대의 황당한 학생사찰, 과연 누가 시켰을까?


숙명여대 4학년인 이숙경씨(가명·23)는 지난해 11월 중순 학생회관 건물 내 학생문화복지팀 앞을 지나가다 이상한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건물 리노베이션을 위해 옛날 서류철을 버리려고 내놓은 것이었는데 서류철에 ‘총학생회’라고 씌어 있었다. 이씨는 그 서류들을 챙겨가서 살펴보았다.

놀랄 만한 내용이었다. 학생처 산하 학생문화복지팀에서 학생들을 사찰한 자료였다. 박미석 교수 복직문제 등 학교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비운동권 총학생회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학생, 그리고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수집하고 개인별로 분류해놓은 자료였다. 각각의 자료에는 해당 학생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 쪽이 입수한 학생 사찰 자료. 사찰은 2008년 촛불집회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폐기 서류더미에서 숙명여대 학생이 발견하고 제보

이씨는 최근 이 사실을 <시사IN>에 제보했다. 그리고 새로 출범한 숙명여대 총학생회에 자료를 넘겼다. 자료를 분석한 총학생회는 이 자료가 명백한 학생 사찰이라고 규정을 내렸다. 단순히 학교 게시판에 제기된 불만을 파악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총학생회 활동이나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여 등에 대해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사찰해놓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교수직 복귀에 대한 것 정도였다. 대부분은 총학생회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학생회 활동에 관한 자료는 단순히 학생회 간부들의 주장이나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 우호적인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공격하는 학생이 사찰 대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학내 활동과 아무 관계가 없는 촛불집회 관련 글을 올린 학생을 사찰한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학생, 촛불집회 관련 모금운동을 진행하는 학생, 촛불집회 연행 경험담은 물론이고 심지어 촛불집회 참가 후기에 진중권씨를 만난 얘기를 올린 학생까지 광범위하게 사찰했다. 학내 게시판뿐 아니라 학생들이 비공개 커뮤니티(스노로즈)에서 모금운동을 한 내용까지 파악했다. 


비판글 올린 학생, 학생처 불려가 조사받기도


학생 사찰 자료에는 학사행정 자료 등 그 학생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가 첨부되었다. 일부 학생의 경우 별도로 성적표까지 첨부되기도 했다. 학교 측이 이런 자료를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작성해 놓았기 때문에 파일이 여러 개인 학생도 있었다. 상당히 집요하게 추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사찰 대상이었던 한 학생은 “고려대나 중앙대 등에서 학생들이 본관이나 총장실을 점거했을 때 특정 학생들만 징계를 당했다. 이전에 그들의 성향을 파악해놓았다는 얘기인데, 만약 숙명여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파일이 있는 학생이 본보기로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로부터 관련 소식을 통보받은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촛불집회 후기를 주로 올렸던 박솔희씨(20)는 “학교가 내 뒷조사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직접 불이익을 당한 것은 없지만 섬뜩하다. 당시 나는 평범한 신입생이었고 학생회 활동도 하지 않았다. 나 같은 학생까지 조사한 것이 놀랍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조처가 내려진 경우도 있다. 김경희씨(22 가명)는 학생처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2008년 6월10일 동맹휴업 찬반을 묻는 투표용지 다섯 장(찬성표)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총학 정말 실망’이라는 제목으로 숙명인 게시판에 증거사진을 찍어 올렸다. 김씨의 경우 파일에 해당 학기 성적 자료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숙명여대 학생들(위)은 모금활동을 하는 등 적극 참여했다.



김씨의 파일에는 6월12일자 메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총학생회 측에서 이 학생에게 연락을 취해서 면담한 내용을 파악했다. 특별한 사회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보이는 것을 찍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게시된 글을 삭제하겠다고 했다. 아직 게시된 글을 삭제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총학생회 한 간부는 특별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더라도 학교 측의 호출 자체가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간부는 “학생들 중에 학생문화복지팀에 갔다가 ‘네가 그 학생이구나’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교가 자신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학생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비운동권총학생회 간부 출신 직원이 파일 작성


특히 주관 부서가 학생문화복지팀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부서는 학생들의 장학금을 주관한다. 사찰을 당한 학생 중 한 명은 인터뷰를 요청하자 “나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해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생 정보를 빼내 파일을 작성한 직원은 총학생회 간부 출신 숙명여대 졸업생으로 학생회 활동에 정통했다. 이 직원은 현재 퇴직한 상태다. 


비운동권 총학생회 간부 출신이 학생처 직원이 되어 운동권 학생들을 견제하는 것은 요즘 대학에서 관행이 되어 있는 학생회 관리 방식이다. ‘학생처 장학생’이라 할 수 있는 학생을 키워서 비운동권 후보로 총학 선거에 내보내 음으로 양으로 도와 당선시키고 학교 측에 우호적인 활동을 하게 한 후 취업 자리를 보장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기법인 것이다.


촛불집회 당시 숙명여대는 비운동권 총학생회 체제였다. 숙명여대 측에서 모은 사찰 자료를 보면 총학생회 측의 동향을 파악하는 자료가 아니라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자료를 모은 것이었다. 총학생회에 ‘삭발투쟁’을 제안하는 학생, 총학생회가 뉴라이트 계열이냐고 따지는 학생, 총학생회 공약 진행상황을 알려달라는 학생, 투표 시행세칙을 어긴 것에 대해 총학생회에 해명을 요구한 학생 등이 사찰 대상이었다.

    
이경숙 전 총장시절 벌어진 일, 지시자는 아직 파악 안돼


그렇다면 누가 이런 자료 작성을 지시했을까? 현재 숙명여대에서는 자료 작성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경숙 전 총장(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번 일에 대해 보고 받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르던 일이다. 학생문화복지팀에서 학생 동향 파악 및 학생 보호 등을 목적으로 자체 제작한 자료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학생 사찰 파일에 대해 학교 측도 놀란 눈치다(자료 작성 당시는 전임 이경숙 총장 체제였다). 김상률 대외협력처장은 “사실 나도 놀랐다. 386 세대인 우리 때나 있었던 일이 지금도 벌어진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해당 자료가 작성된 것은 2008년 전반기인데 촛불집회 때문에 어수선하고 학교 안에서는 이경숙 전 총장이 인수위원장이 되고 박미석 교수가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되었다 복귀하면서 이런저런 소란이 많아서 그런 조처가 취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자료를 보면 2008년 이전 자료와 2008년 자료는 질과 양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촛불집회가 본격화되면서 학생 사찰이 부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총장이 교체된 2008년 10월 이후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고 폐기를 위해 내놓은 것으로 봐서 총장 교체 후에는 학생 사찰이 계속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학교 측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김현숙 학생처장은 “해당 자료는 폐기하려고 내놓은 자료였고 현 총장 체제에서는 그런 파일을 작성한 적이 없다. 전임 총장 때 발생한 일이지만 학생들에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철저히 파악해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겠다”라고 밝혔다. 


1월19일,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한영실 총장을 방문해 학생 사찰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한 총장은 총학생회 간부들에게 “이런 일은 교육적 차원을 벗어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조사해서 당당히 밝히겠다”라고 확실하게 견해를 밝혔다.

 
타 대학에서도 학생 사찰 했을 가능성 있어

이번에 숙명여대에서 발견된 사찰 자료에는 타 대학 학생처와 공문을 주고받으며 총학생회 성향과 지지율 등을 서로 파악하고 관리 방법을 모색한 것도 나와 있다. 자료에 언급된 방식은 신입생 새로배움터(오리엔테이션)를 학교 측이 주관해서 총학생회와 신입생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숙명여대를 비롯해 중앙대·서강대 등이 학교 측에서 주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대학생연합’에서는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으리라 보고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 한대련 관계자는 “지역별로 관련 사례를 취합하고 있다. 몇몇 학교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학생회 활동을 사찰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련 내용이 취합되면 2월 초에 전국 총학생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