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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과 삼성 홍라희의 차이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5. 24.




간송 전형필(1906~1962) 전기가 처음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떠오른 생각은 ‘그동안 간송 전기가 없었다는 말인가’였다. 국내 최초 사립 미술관을 연 최고 컬렉터에 대한 전기가 아직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었다.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간송 전기 <간송 전형필>(김영사 펴냄)의 저자는 재미 소설가 이충렬씨다. 르포라이터로도 활동했던 이씨 역시 이름난 컬렉터로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을 내기도 했다.


예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간송은 ‘큰 산’이다. 간송을 지나야 비로소 우리 예술에 대해 눈뜰 수 있다. 그런데 간송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없었다. 이씨는 우리 시대 대수장가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꼽은 것은 수집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고려청자 하나에 기와집 10채 값을 지불하는지 수집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씨는 “부자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가치 있는 것에 지불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진짜 부자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꼽은 것은 간송(澗松)미술관(서울 성북동 소재) 소장품의 가치를 이해할 만한 미술사적·문화사적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사까지 알아야 비로소 간송이 수집한 작품에 대한 입체적인 설명이 가능하단다. 이씨는 “간송이 왜 그토록 겸재 정선의 그림을 모았는지 이해하려면 숙종~영조 시대에 우리 것을 찾으려고 했던 흐름까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하나는 간송이 수집에 기울였던 열정만큼 간송에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96년 간송미술관을 처음 접한 이후 충격을 받은 이씨는 모든 도록과 연구 논문을 구해 10년 동안 연구하고 2006년 간송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주로 이역만리 미국 애리조나 소도시에서 진행되었다. 애리조나와 간송미술관을 수차례 오가며 간송의 삶을 복원했다. 




간송 유족이 도판과 사진 협조

이씨는 전기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를 곁들여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그의 열정을 인정한 간송가의 유족들은 도판 협조와 사진 제공을 해주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이야기로 풀어서 간송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저자는 간송의 삶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하나는 나라 잃은 시대에 언제 해방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만금을 주고 우리 문화재를 모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것이 독립에 대한 확신과 우리 문화를 지킨다는 사명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모은 것은 독립에 대한 희망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미술품 수집을 재테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송은 미술품 수집 과정에서 부를 버리고 문화를 얻었다. “간송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서 부른 값의 열 배를 주었다. 그리고 해방될 때까지 이것을 비밀로 해서 지켜냈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은 후대의 문화 연구에 기여한 부분이다. 가치 있는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미술사를 재구성하기 쉽게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것이다. 간송의 수집품 덕에 조선 회화사와 고려청자 변천사가 말끔히 정리되었다. 간송은 또한 자신의 소장품을 통해 연구자들이 활발히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심지어 <훈민정음> 영인본을 만들기 위해 원본을 해체하는 것까지 허락했다.



간송가와 삼성가의 미술작품 수집 차이

간송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현재 최고의 수집가인 삼성가와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간송은 부를 버리고 문화를 얻었지만, 삼성가는 비자금 수사에서 나타났듯이 미술품이 또 하나의 ‘축재 도구’로 쓰였다. 후손들의 태도도 다르다. 간송가의 후손들은 간송의 정신이 이어지는 데 주목했지만, 삼성가는 리움미술관이 호암미술관을 서서히 흡수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과거의 유지를 받드는 것보다 지금의 영화를 과시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가의 수집에 대해 이씨는 “삼성가는 근현대 회화 수집에서 독보적이다. 수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안목이나 철학에서 간송가를 더 높이 볼 부분은 있지만 삼성가가 기여한 부분도 인정할 부분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간송 전기는 암울한 시대 부자의 자세와 관련해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마침 간송미술관에서 ‘조선 망국 100주년 추념 회화전’(5월16~30일)을 연다. 간송의 삶과, 그가 살았던 암울했던 시대와, 그 시대가 빚어낸 우울한 예술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