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가 상영되는 서울 종로3가 씨너스단성사 3관, 평일 낮시간인데도 제법 붐볐다. 칸 영화제 각본상 특수를 누리는 것 같았다. 관객의 대부분은 할머니였다. 꽃단장을 하고 친구 손을 잡고 와서 영화를 본 한 할머니가 영화가 끝나자 친구에게 말했다. “얘~ 영화 정말 좋다. 그지?” “맞다 얘~ 윤정희 연기 정말 잘한다.” 그 순간 그 할머니가 교복을 입은 소녀처럼 보였다.
할머니들 속의 소녀를 일깨운 왕년의 여배우 윤정희씨(66)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녀는 기자에게 서울 한남동 일신빌딩 콘서트홀 대기실로 오라고 했다. 휴대전화를 받기 위해 로비에 나온 윤정희씨와 마주쳤다. 그녀는 영화 <시>의 미자처럼 다가왔고 미자처럼 다소곳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미자라고 했다(본명이 손미자다).
연습실에서는 그녀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주하는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그녀는 인터뷰 장소를 연습실 옆으로 정했고, 남편은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로 아내의 인터뷰를 ‘외조’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와 음악을 좋아하는 여배우는 그렇게 금실을 뽐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만무방> 이후 16년 만이다.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카메라 앞에 서지만 않았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왜 저 배우는 저렇게 표현했을까,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카메라는 왜 저렇게 찍고 조명은 왜 저렇게 비췄을까를 늘 생각하면서 봤다. 나는 복귀한 것이 아니라 다만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가야 했는데, 부담은 없었나?
부담이라기보다 책임감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한 컷 한 컷 고심해서 찍었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절제하려 애썼다.
주인공 ‘미자’의 삶은 배우 윤정희의 인생과 대비되는 것 같다.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주목되지 못한 들꽃 같은 삶을 살았다.
내게도 미자가 있다. 내 본명이 손미자다. 영화 속 미자의 모습은 내가 ‘윤정희’가 아닌 ‘손미자’일 때와 가깝다. 나는 스크린 안에서는 화려해도 스크린 밖에서는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예명도 ‘고요할 정(靜), 계집 희(姬)’를 써서 윤정희로 했다. 미자의 모습은 스크린 밖의 내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윤정희의 남편 백건우’인데, 외국에 나가면 ‘백건우의 아내 윤정희’가 되는 것과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
외국에서는 남편이 더 유명해서 내가 편하고 한국에서는 내 얼굴이 더 알려졌으니까 남편이 편하다. <시>가 프랑스에서 개봉할 예정인데 내 얼굴이 알려져서 내 자유가 줄어들까 걱정된다.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지하철도 타고 다니면서 편하게 지냈는데….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위원 중에 이 영화 시나리오에 0점을 준 사람이 있었다. 이 영화에 점수를 준다면?
수우미양가 중에 수를 주고 싶다. 과장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어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 참고로 나도 검증된 심사위원이다. 몬트리올 영화제·도빌 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했고, 청룡영화상은 10년 동안이나 심사위원을 맡았다.
미자는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고 있다. 그런데 기억이 사라져가는 것에 반비례해 호기심은 더 커진다. 그 대비가 이채로웠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대화가 없다. 친구도 없다. 그래서 외롭다. 미자가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꼽는 것은 언니와 교감했던 시간이다. 존재가 없어질수록 세상에 대해 더 자주 더 많이 말을 거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이 ‘참 아린 영화다’라고 말을 한다.
마지막 장면이 모호하게 되어 있다. 자살인지 아닌지….
그 해석은 관객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자라는 인물이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고 마음이 여리면서도 도덕적이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진 것이라고 본다.
영화를 본 할머니들이 소녀처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 안에도 소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수 있다가 아니라 확실히 있다. 내 안에도 소녀가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변하는 것이지,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절대로 안 변한다. 오히려 더 소녀가 된다. 달만 보고도 감동해서 감탄사를 쏟아낸다.
영화 속 미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못해서 좌절한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미자는 피해자 엄마를 만나러 가서 딴 얘기만 하고 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츠하이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미자가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잊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촬영 끝나고 시집을 많이 읽었다. 써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시집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시집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여배우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젊은 모습만 기억하도록 은퇴하고 나서 칩거한 그레타 가르보도 좋아하지만 나이 든 모습 그대로 영화에 출연한 잉그리드 버그만을 더 좋아한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인생을 재현하고 표현해내는 사람이다. 그것이 꼭 젊음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름살에도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다.
영화 속 시 강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묻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죽을 때 답해야 할 질문이 아닐까? 내 인생이 아직 진행 중인데. 더 아름다운 순간이 있을 수 있으니 답을 유보하겠다.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있는가?
좋은 감독, 좋은 시나리오가 온다면 언제든 응할 것이다. 90세가 되어도 좋은 역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확실하다. 나는 역할에 맞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내게 맡는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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