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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밑줄 긋는 남자

강헌과 신해철이 되살려냈던 '노동의 새벽'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9. 26.

마왕 신해철을 기억하며...

10년 전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음반을 제작했을 때 
음악평론가 강헌씨와 함께 했던 대담. 
민중가요가 대중음악 수준의 대중성을 갖도록 고민하기도 했었다. 
신해철과 관련해 사람들이 잘 모를 부분인 것 같아 전한다.





오는 12월10일(2004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는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공연이 열린다. 공연에 맞추어 헌정 음반도 나올 예정인데, 황병기·장사익 씨와 같은 국악인부터 와이낫·언니네이발관과 같은 신세대 밴드, 그리고 윤도현밴드·싸이 같은 대중 가수에서 이주노동자 밴드 손병휘씨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제작에 참가했다. 수익금은 이주노동자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쓰인다.


<노동의 새벽> 기념 음반 발매와 기념 공연은 의미 있는 행사지만 조금 생뚱맞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왜 <노동의 새벽>이고, 왜 <노동의 새벽>을 시 낭송회도 아닌 음반과 콘서트로 기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공연과 기념 음반을 기획한 강 헌 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과 음반 제작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던 가수 신해철씨가 대담을 나누었다. 



강 헌:박노해라는 이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 문제적인 이름이다. 그를 둘러싼 평가가 이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문제적 인물이다. 


신해철:사실 나는 박노해 시인을 싫어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보니 ‘젊은 대학생 가수여 이제 노래하지 마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왠지 나를 보고 한 말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강:정확히 말하면 이번 공연과 음반은 박노해라는 시인에게 헌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에 헌정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던 시를 야간 상고 출신이 노동운동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은 혁명적이다. 이 시집 이후로 민중 예술이 폭발했다. 


신:이 시집의 가치를 모르고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읽어 보았다. 지금 읽어보니 편협한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사랑시만 팔리는 세상에서 이런 시집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새벽>은 과거형이 아니다. 설령 이 시집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시집이 아니라 한 시대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강:<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 가장 많은 노래가 만들어진 시집이다. 이 시집만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시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국 노래운동사에서 <노동의 새벽>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신:가수 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 바로 민중 가요를 재해석해 보는 작업이다. 운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이번에 딱 걸렸다.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음악을 왜 하고, 음악이 나에게 어떤 보람을 주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강: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내가 노찾사에 있을 때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뿐이었다.


신:민중 가요는 멜로디와 반주 등 최소한의 요건만 갖춘 곡이 많다. 민중 가요에는 금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보브 딜런이 전자 기타를 처음 들었을 때 욕먹었지만 그 덕분에 포크록이 발전할 수 있었다. 민중 가요도 음악적 역량을 키우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노래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도그마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무언의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 키보드는 되면서 일렉트로닉 기타는 안되었다. 왜 안되느냐고 물으면, 그냥 하지 말라는 대답뿐이었다. 노래운동이 몰락한 것은 전체 운동이 기운 탓도 있지만 음악적 설득력이 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사실 <아침이슬>에서부터 답은 나와 있었다. <아침이슬>은 가사가 선명한 것도, 작곡가가 거창한 의식을 가지고 만든 노래도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울림이 큰가. 음악은 공감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강:박노해라는 인물에 대해서 논란이 많듯이 이번 음반 작업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노동계의 비난이 거세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모두 자기들이 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나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이런 일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강:노동운동 진영의 비난은 정말 뼈아프다. 노동계 비난 중에 살아 있는 우리 노동자를 놔두고 죽은 이주노동자를 챙기느냐는 것이 있었다. 정말 ‘짐승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신:아니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문제는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프리카 난민 생각하는 사람이 제 나라 노숙자 생각 안 하겠냐 말이다. 


강:비정규직 문제처럼 우리 노동계에도 현안이 많다는 것을 우리도 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특히 처절하게 노동하다가 죽어서 고향에도 못 가는 이주노동자의 유해가 수십 구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중 몇 구라도 돌려보낼 수 있으면 정말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비난이 나올 곳에서 나와야지. 


강:어찌되었건 개인적으로 가졌던 오랜 꿈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져 기쁘다. <민들레처럼>을 부른 윤선애씨 같은 경우는 정말 음반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다. <저 평등의 땅에> <벗이여 해방이 온다> 등을 부른 그녀는 시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변변한 음반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었다. 


신:10년 전에도 이런 작업을 생각했었다. 민중 가요는 전부 소총부대였다. 기관총과 박격포로 그 노래들을 중무장시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된다. 나름으로 편곡해 보았는데, 망쳐놓았다는 비난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대로 녹음하고 싶다


강:전혀 걱정할 것 없을 것 같다. 음반 제작에서 프로듀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하는 음반이다. 시대의 감수성을 재현하는 부분에서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에서나 모두 완벽했다. 


신:좋은 곡들이 많았다. 김보성씨의 <대결> 같은 곡도 집회를 위해 급조한 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춘 곡일 뿐, 화성학적으로 완벽한 곡이다. 


강:그것이 1980년대의 힘이 아니었을까? <대결>을 작곡한 김보성씨 경우도 그 힘은 노동 현장에서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얻은 에너지였던 것 같다. 


신:민중 가요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
데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제대로 녹음하는 것이다. 이번 음반의 개정 증보판을 내는 것도 좋겠다. 


강:2004년의 음반 시장은 참혹하다. 폐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구체제가 자기 모순으로 인해 몰락하고 있다. 구악들이 시장의 몰락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 이번 음반이 한국 대중음악계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 때 한번 같이 해보자. 눈여겨봐둔 가수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