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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밑줄 긋는 남자

10년 전 기사, '눈물의 병영체험' 한 어머니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7. 31.

주> 10년 전 썼던 기사입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들은 아마 비슷할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저도 목이 메이더군요. 
여교사 군대 비하 발언 이후에...
여자들도 군대 가보라, 라는 말을 많이 하시길래, 
문득 생각 나서 옮겨 보았습니다. 

전우애가 싹튼 어머니들이 모임까지 만들었는데, 
그 모임을 후속 취재하기도 했었죠.
이제 그때 그 아들들이 장가 가서 떡두꺼비같은 아들 하나씩을 두었을 듯한데...
그때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평균 연령이 50대인 부대, 전체 1백92명 중 정상은 1백37명뿐이다. 나머지는 환자다. 고혈압 20명, 요통 18명, 관절염 4명, 기타 질병 13명. 게다가 이들은 모두 굼뜨기 그지없고 수다스럽기까지 한 아줌마이다. 이런 ‘오합지졸’이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답은 ‘받을 수 있다’이다. 그들이 대한민국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육군훈련소(충남 논산)가 어버이날을 맞아 마련한 ‘훈련병 모친 초청 병영체험 훈련’(5월8∼10일)에 참가한 어머니 1백92명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2박3일 간의 훈련을 끝마쳤다. 훈련병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이 아줌마 부대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바로 사랑. 사랑의 힘으로 그들은 힘든 훈련을 모두 견뎌냈다.


빡빡한 일정에 따라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어머니들은 총검술·제식훈련·사격·유격·각개전투·화생방 훈련(가스실 체험) 등 신병들이 받는 훈련 거의 모두를 체험했다. 어머니들은 아들이 힘들게 받는 훈련인데 하나라도 더 해보고 싶다며 사격장이든, 유격장이든, 가스실이든 마다 않고 뛰어들었다. 거리에서 군복 입은 사람만 보아도 울먹거리고, 아들이 쓰던 방을 들여다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약한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들은 무거운 철모도, 딱딱한 군화도 함부로 벗으려 하지 않았다. 간호장교가 운동화를 권해도 ‘아들은 매일 신고 있는데’라며 굳이 불편함을 감내했다. “힘들긴 하지만 아들하고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훈련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들은 훈련병들의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들은 내무반을 보고는 “새 건물이어서 그런지 깔끔하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라며 만족해 했다. 그러나 식사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한 어머니는 “밥을 먹는데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아들이 먹는 음식이라 먹긴 했지만, 좀더 맛있게 조리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어머니는 아니었다. 훈련을 마치고 어머니들이 작성한 소감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 바로 ‘여기 오지 못한 다른 어머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모든 훈련병들이 전부 내 아들 같다’며 세상 모든 아들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김옥순씨는 화생방 훈련을 위해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숨이 찬 듯 연신 방독면을 벗으면서도 “아들이 받는 훈련이라면 나도 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간호장교의 만류에도 기어이 가스실에 들어가 매운 가스를 들이마셨다. 낯빛이 창백한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아들한테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났다. 내가 밖에서 일(노래 교실 강사)을 하기 때문에, 아들이 거의 자취를 하듯이 학교를 다녔다. 늘 빚을 진 것 같았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기쁘다.”


이번 참가자 중 최고령인 황옥분씨(62)는 훈련소에서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들을 훈련소에 보내는 날도 울지 않았는데, 어제는 울고 말았어. 반가워서 눈물이 나왔는지, 아니면 아들이 안쓰러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어.” 황씨의 막내 아들은 발이 부르터서 잘 걷지를 못한다. 그녀는 하룻밤만 더 자고 갔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훈련소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자칭 신세대 엄마인 유정옥씨는 훈련병들에게 선택받은 젊음이라는 사실을 유념하라고 말했다. 아들이 강해지라고 입소식 날도 일부러 따라오지 않았다는 유씨는 “서울에서는 군대 가면 버림받은 자식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군대가 자립심과 협동심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며 훈련병들을 격려했다.


그녀는 하루라도 더 있고 싶다는 다른 어머니들을 제지했다. “우리가 있으면 방해만 된다. 우리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며 어머니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이 좋은 시설에서 건강하게 훈련받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절대로 울 일이 없다던 그녀도 아들을 환송하는 자리에서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훈련에 참가한 어머니들 중에는 ‘거짓말쟁이들’이 많았다. 행여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키도 키우고, 몸무게도 늘리고, 병도 숨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또 ‘담요를 반듯하게 개어놓지 않으면 아들에게 벌점을 주겠다’는 인솔 장교의 농담에, 담요를 안 덮고 그냥 오들오들 떨며 자는 그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을 수 있을까? 가스실에 들어갔다 나와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내가 했으니까 우리 아들은 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억지라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 날 아침, 어머니들은 아들과 2∼3 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헤어졌다. 어머니들은 비교적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아들들의 ‘받들어 총’을 받았다.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 사격 훈련을 받으러 나가는 아들을 환송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사랑의 또 다른 방식, 즉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들은 멀어져 가는 아들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