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 담론이 한창이다. <무한도전>과 같은 TV 프로그램부터 농림수산식품부 정책 과제까지,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일식 중식 태국식 인도식... 심지어 베트남식까지 세계화 되었는데 한식이 이렇게 뒤쳐져서 되겠느냐는 문제의식은 국민적 공감대를 샀다. 한식 세계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중국에서 신라면이 성공했던 사례처럼 굳이 현지화 하지 않고 원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 이를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명제를 따르는 것인데, 원칙적인 방법이다. 다음은 중국의 ‘자장면’이나 ‘고기국수’가 한국의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변형되어 성공했듯이 현지화 시키는 전략이다. 때론 이런 응용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식 세계화를 위해 농식품부가 들고 나온 대표 주자는 ‘떡볶이’였다. 글쎄, 떡볶이의 숨은 가치라도 발견해 낸 것일까? ‘재료의 신선함, 소스의 정밀함, 조리법의 다양함’ 등 음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그 어느 요소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떡볶이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단 트위터를 통해 해외 교포나 주재원들에게 문의해 보았다. 전 세계 20여개 국 이상을 대상으로 떡볶이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한 결과 떡볶이를 세계화 시킨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떡의 식감이 문제였다. 떡볶이를 백인에게 먹게 했을 때 돌아오는 주된 반응은 “이 껌은 언제 삼키느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떡 문화가 있는 일본과 중국뿐이었다.
이렇듯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왜 떡볶이를 밀어붙였던 것일까? 떡볶이 세계화 담론이 불을 지피던 시기와 외식업체들이 떡볶이 체인점을 내던 시기가 비슷한 걸 보면, 이 구호는 국외용이 아니라 국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세계인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우리도 사랑하자’ 정도의...
한식을 세계화 시키려면 최소한 ‘적을 알고 나를 알고’난 다음에 전략과 전술을 펴야 한다. 그런데 떡볶이를 선봉장으로 내세우는 것은 적에 대해서도 모르고 나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반화된 정도는 아니지만 한식은 나름대로 세계화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유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교포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문의해 보니 대략 잡채, 불고기/갈비, 비빔밥, 김밥, 양념통닭/닭볶음탕 정도가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국 음식으로 꼽혔다. 잡채는 동양인과 서양인 모두가 좋아하는 최고의 한국음식이었고 불고기/갈비는 고기를 직접 구워먹는 ‘셀프 쉐프’ 방식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비빔밥은 가장 간단한 음식중 하나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고 야채를 많이 써서 웰빙식으로 인기를 있다고 했다. 김밥은 종이와 같은 식감 때문에 '김'을 싫어하는 서양인이 많아 서구에서는 별로지만 동양인에게는 인기가 좋다고 했다. 양념통닭/닭볶음탕 등 닭요리에 있어서는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조리방시을 보유하고 있어서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시장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나를 아는 일, 즉 우리 음식과 음식문화를 아는 일이 먼저다. 음식문화에 대한 세계적 트랜드는 맛있는 음식에서 보기 좋은 음식을 거쳐 몸에 좋은 음식으로 와 있다. 이른바 웰빙 음식이 각광받는다.
우리 음식문화를 보자. 우리는 밥이 곧 보약인 ‘약식동원’ 문화에서 살아왔다. 즉 우리에게 웰빙은 음식문화의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먹는 사람의 체질과 몸 상태에 따라 그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다. 여기에 제철음식을 먹어 자연의 상태까지 반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양 의학 중에서 우리가 독보적으로 발전시킨 부분은 사상체질 부분이다. 보편적으로 좋은 음식이 아니라 내 오장육부의 장단을 따져 나에게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따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음식에서 음양오행의 철학까지 구현하려 했지만, 굳이 거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이런 ‘약식동원’ 음식문화만 제대로 복원해도 전달한다면 충분히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요리는 조리사에게 헤게모니가 가 있다. 모든 권위가 조리사에게 가 있다. 먹는 사람은 조리사의 권위에 예를 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식은 먹는 사람을 위에 두고 그에 맞춰 상을 차린다. 그래서 임금이 먹는 수랏상도 얼핏 보기에 초라해 보인다. 임금이 먹기 좋게,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단촐하게 차려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맞춤형 음식’에 체질화 되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고기를 굽고 원하는 쌈을 골라서 원하는 고명을 넣고 원하는 쌈장을 원하는 만큼 넣어서 먹는다. ‘내가 먹는 음식은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내가 조절해서 먹는다’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이 인본주의적 식문화가 한식 세계화, 혹은 한국 음식문화 세계화의 핵심이 아닐까? 조상들이 물려준 훌륭한 음식문화를 두고도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주) YWCA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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