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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글라디에이터

'네티즌 수사대' vs '네카시즘(네티즌+매카시즘)'의 차이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1. 14.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만들고, 의견을 바탕으로 신념을 만들고, 신념을 바탕으로 정의를 만들고, 정의를 바탕으로 지향점을 만들라.” 기자 초년병 시절 편집국장으로 모셨던 소설가 김훈 선생이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파업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준 충고였다. 그때는 이 말을 멋진 수사학으로만 대했다.

 
김훈 선생의 말을 다시 기억에서 끄집어 낸 것은 ‘타블로 집단괴롭힘 사건’ 때문이었다. ‘타까’로 불리는 일군의 네티즌들은 정확히 이 명제의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타블로 퇴출’이라는 지향점을 만들었고, 교포출신이라 병역을 이행하지도 않고도 성공한 그를 심판하는 것을 정의라 규정했고, 타블로는 거짓말쟁이라는 신념을 형성했고, 그에 대한 학력위조 논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네카시즘(네티즌 + 메카시즘)’의 전형이었다. 분노와 혐오는 힘이 셌다. 순식간에 20만명의 네티즌들이 그에게 진실을 요구하며 세를 형성했다. 그들은 진실을 요구한다며, 연예인이면 답해야 한다며, 왜 빨리 답하지 않느냐며 그와 그 가족들을 매도했다. 그들의 조바심이 말하는 것을 나는 "넌 왜 나처럼 평범하지 않아?"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너도 할 수 없는 것이어야 돼" "난 네가 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로 들었다.

 
이런 집단괴롭힘에 타블로는 “저는 당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의 삶은 망가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없길 기도합니다”라는 외마디 절규를 트위터에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MBC 스페셜> 팀과 함께 네티즌들의 의혹에 답할 진실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오기를 부렸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진실을 밝히라고 했다. 그 방식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요구는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바지를 내려야 한다는 것만큼 폭력적이었다.


네티즌들이 사회적 논란에 대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수사기관과 언론도 못한 역할을 해낸다며 ‘네티즌 수사대’라 부르기도 하지만 확인 안 된 사실을 바탕으로 사람을 매도한다며 ‘사이버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마치 불을 잘 쓰면 에너지 원동력이 되지만 잘못 쓰면 재앙의 원흉이 되는 것처럼, 그 쓰임새에 따라 달라진다.

 
네티즌에게 ‘수사대’라고 명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은 이들이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 조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사대'라 불리기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것, 합당한 방식에 의한 정보추구, 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호기심 충족이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취득했다면 ‘누리꾼흥신소’라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황우석 줄기세포 파문을 비롯해 각종 의혹 사건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이들은 타블로 괴롭히기나 루저녀 패륜녀 명품녀 등 일반인 ‘신상털기’를 즐기는 등 악플러로 퇴화하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가 아닌 ‘네티즌 행동대’가 되어 ‘마녀사냥’을 일삼는 것은 '네카시즘(네티즌+매카시즘)'의 전형일 뿐이다. 

 
지향점을 바탕으로 정의를 만들고, 정의를 바탕으로 신념을 만들고, 신념을 바탕으로 사실을 만들었던 ‘왓비컴즈’는 <MBC 스페셜>이 두 번 방영된 뒤 백기 투항했다. 그러나 타블로를 괴롭히던 잔존 세력은 사실관계와 별개로 자신들의 신념과 정의관 그리고 지향점을 바꾸지 않고 있다. 진실이 사라진 시대의 우화겠지만, 심히 우려된다. 누구도 마녀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