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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Inernational/해외에서 당한 억울한 일

"억울하게 온두라스 감옥에 갈 때 내 뒤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한지수)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1. 31.

살인죄로 기소된 뒤 온두라스에서 감옥 생활을 했던 한지수씨가 귀국했다. 
그녀는 왜 감옥으로 끌려갔고, 어떻게 자유의 몸이 되었을까. 
지난 15개월 동안 그녀가 겪은 악몽과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지수씨(28)의 억울한 사연은 이렇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스킨스쿠버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2008년 여름 온두라스 로아탄 섬에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중간에 숙소를 오스트레일리아 남자 강사의 아파트로 옮겼는데 사고가 났다. 그가 잠자리를 하기 위해 데려온 네덜란드 여성이 밤중에 의식불명이 된 것이다.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에 옮겼는데 끝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남자 강사는 피고인 자격으로, 한씨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무난히 강사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겨울 스킨스쿠버 강사 일을 위해 이집트로 출국했다. 거기서 8개월 정도 강사 일을 하고 출국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경찰에 붙들렸다. 한국 대사관에 제대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3주간 구금된 뒤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이 와서 그녀를 온두라스로 송치해갔다. 온두라스 검찰은 그녀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조작된 2차 부검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해 겨울 보석이 허용될 때까지 온두라스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2부다. 한지수씨가 경험한 기적은 이렇다. 이집트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한국 대사관 측도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누리꾼들이 들고일어섰다. 그녀의 소식은  네이트 판 등 인터넷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해졌으며, 언론이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매주 수요일을 ‘한지수요일’이라 명명하고, 수요일마다 그녀의 석방을 기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결국 외교통상부가 움직였다. 국제변호사, 베테랑 수사관, 법의학자 등 전문가로 편성된 긴급대응팀을 온두라스에 파견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긴급대응팀은 2차 부검 보고서의 조작을 밝혀냈고, 최고 수준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리고 한지수씨의 보석을 얻어냈다. 이후 재판이 계속 지체되었지만 온두라스 대통령과 만난 이명박 대통령이 한씨의 선처를 부탁했고, 지난가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월5일 귀국한 한씨를 만나 그간 겪은 악몽과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집트 공항에서 잡혔을 때, 온두라스로 송치될 때, 온두라스 감옥에서, 혹은 재판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
이집트에서도 그렇고 온두라스에서도 그렇고, 나한테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많이 생각했다. 사건 초반에는 특히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영사 얼굴만 잠깐씩 보였다. 영사로서 그분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냥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영사들이 ‘나도 인간이다’라며 무력감을 호소할 때마다 ‘저분이 저렇게 말하면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현실이 너무 슬펐다. 자포자기도 많이 했다.


반면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은 당신을 처벌받게 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들었다. 
이집트에서 내가 온두라스로 이송될 때 우리나라 영사가 동행을 했나? 아니다. 네덜란드 경찰이 동행했다. 온두라스에 가서도 네덜란드 영사를 처음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받는 구속적부심에서 동행한 네덜란드 경찰이 통역을 했다. 속으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게, 다시 로아탄 섬으로 이송되었는데 네덜란드 영사와 경찰, 온두라스 경찰과 검찰 등 한 10명이 붙어서 나를 끌고 갔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내 쪽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동물원에 끌려온 불쌍한 원숭이 같았다. 카메라는 나를 살인범처럼 찍어대고….


어떤 생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나?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납득이 안 됐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생각하기 싫고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내가 날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나는 억울하다, 아무라도 제발 도와달라, 절규하는 심정이었다. 

   
한지수씨가 살인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온두라스의 감옥. 인터넷에 알리고부터 정부 태도가 바뀐 건가?
가장 가시적이었던 것은 나에게 긴급지원팀이 파견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재판 때는 방청석이 전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외교부 직원, 변호사, 법의학 박사, 교포 등등…. 처음과는 전혀 반대였다. 그전에는 전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는데.


국가는 당신에게 무심했지만 누리꾼들은 당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잊지 않았다.
자신들도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처음엔 깨닫지 못했는데, 누리꾼은 나한테 큰 자산이었다. 해외에서 정말로 억울한 일이 있다면 인터넷에 먼저 알리는 게 순서다. 인터넷에 알린다는 것이 얼핏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은 국민 신문고다. 실제적인 도움과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왜 온두라스에 갔느냐. 왜 남자가 사는 아파트에 살았느냐. 이런 비난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정말 당당하다면 모든 걸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전임 대사가 적극 도와주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 다행히 보석 신청도 받아들여지고 잘 해결되었지만 섭섭함이 남았을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 외교부에 폐가 되고 도움을 받기 힘들 것 같아 지금껏 꾹 참고 있었다. 전임 대사는 스페인어를 못했다. 그분 목소리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때까지는 모든 대사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새로 부임한 대사는 달랐다. 온두라스에 오자마자 내게 전화를 해주었다. 현지 대법원장을 수없이 찾아갔고 재판 당일까지 전화를 했다. 그런 일을 겪으며 공적인 자리라는 게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최대한의 것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일이 진전되고 문제도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우리나라 재외국민 보호 제도가 많이 미흡한 것 같다.
처음 대사관 쪽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다가 계속 요청을 하니까 대사관 직원이 아는 사람을 소개해줬는데 변호사 실력이 별로였다. 나중에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은 유능한 변호인단 명단을 가지고 있고 언제라도 이들을 쓸 수 있게 했다. 그런 것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해외에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나랑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론 나는 100% 무죄였다. 그들 중에는 억울한 사람도 있고, 정말 죄를 지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유죄니까 거기서 죽든 말든…. 이건 아니다. 심지어 극악무도한 살인범일지라도 최소한의 인권보장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살인을 했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관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도착하고 어떻게 지내나?
서울 거리를 막 다니는데…, 정말 막 뛰어다닌다. 괜히 혼자 좋아서. 지하철에서 서 있는 순간, 버스에 앉아 있는 순간, 그런 순간에도 내가 여기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 타고 내리는 사람,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 보면 괜히 고맙다. 이들 중 누군가는 나한테 도움을 줬겠구나 하는 생각에….


잃어버린 15개월이다. 20대의 황금기를 허비했는데 아깝지 않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상이 아니었고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많이 배웠다.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보다도 상처를 치유하면서 생긴 용기와 그 과정에서 얻은 감동이 더 크다. 이런 경험을 값지게 만든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잃어버린 15개월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이 나를 응원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시간을 번 것이다. 그들이 나한테 1분, 2분 나눠준 시간을 가졌으니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다.


상당히 낙관적인 것 같다. 온두라스나 이집트는 당신한테 악몽의 나라일 텐데, 그곳에서 스킨스쿠버 강사 제의가 오면 다시 가겠는가?
당연하다. 세계 어디든 나는 갈 것이다. 만약에 나에게 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시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다가 이런 황당한 일을 겪고 감옥에도 다녀왔지만, 재판에서도 말했듯 나는 다시 도울 것이다. 비겁해지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이 나에게 ‘정의’를 보여주지 않았나. ‘이제 나 한국에서 조용히 살래’라는 건 그 사람들이 보여준 것들에 대한 낭비다. 용감하게 살 것이다. 물론 더 신중해지겠지만.


주) 선진국형 외교와 후진국형 외교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진국은 재외국민 보호를 최우선에 두는 반면, 후진국은 재외국민 보호에 무심하다는 것입니다. 납북된 여기자를 데려오기 위해 전직대통령 클린턴이 직접 가는 미국, 마약사범이지만 중국 정부가 사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영국, 그것이 바로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후진국은 재외국민 보호에 무심합니다. 재외국민 보호보다는 상대국 정부와 생길 마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딱 그렇습니다. 재외공관에 재외국민 보호는 3순위입니다. 1순위가 한국의 권력자를 접대하는 것이고 2순위는 현지 진출한 기업을 돕는 것입니다. 한지수 씨 사건과 관련해 초반에는 후진국형 재외국민 무시의 전형이었지만 후반에 우리 정부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정부가 나서서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선진국형 재외국민 보호모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온두라스 검찰총장을 만나고 있는 한국 전문가 긴급대응팀

온두라스 한지수씨를 구하기 위해 구성된 드림팀, '전문가 긴급대응팀'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해 외교통상부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선례가 없다’라는 말이다. 온두라스 한지수씨 보석을 위해서 신원보증을 요구했을 때도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개인에 대해 보증할 수 없다. 선례가 없는 일이다’라며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외교부는 새롭게 좋은 선례를 만들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온두라스 한지수 사건을 조사하기 위에 파견된 전문가 긴급대응팀은 의미가 크다. 우리 정부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취한 가장 적극적인 조처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말~12월 초, 남미법 전문가인 하상욱 외국어대 로스쿨 겸임교수, 법의학 전문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중 박사, 강력계 사건 전문가인 수서경찰서 김정섭 경감, 국제법 전문가인 대한 변협 유영일 변호사 등이 온두라스 현지에 직접 조사를 다녀왔다. 

전무후무한 전문가 파견팀을 이끈 외교통상부 김유철 재외국민보호과장은 “한지수씨 사건은 사안의 특수성이 컸다. 기존 사례는 우리 국민의 잘못이 과장되게 부풀려진 경우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였지만 이 사건은 무죄의 심증이 강했다. 일반 사례와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가 긴급대응팀을 구성하는 일이 흔한 것은 아니다. 예멘 관광객 테러 사건 당시 현지에 시신 수습과 부상자 후송을 위해 보낸 경우와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창궐할 때 교민 지원을 위해 질병관리 전문가인 공중보건의를 파견해 타미플루를 보급한 것이 최근 사례다. 한지수씨 사건의 경우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국회 외통위에서 쟁점이 되면서 팀이 구성될 수 있었다.   


파견단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초기 수사자료를 확보하고 적절한 현지 변호사와 법의학 전문가를 선임하는 것과 함께 온두라스 검찰총장과 온두라스 정부 법의학국 국장을 면담하고 왔다. 파견단 멤버였던 하상욱 교수는 “면담 장소에 피해자 측인 네덜란드 총영사가 찾아와 우리가 정부 차원의 전문가팀을 파견한 것은 온두라스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보일 수 있다고 견제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파견단 활동의 성과로 12월14일 한지수씨가 보석으로 출감할 수 있었다. 비록 가택연금 상태였지만 극도로 열악하고 위험한 교도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한씨에게 조그만 축복이었다. 한씨 사건의 경우 초기 부검 결과를 뒤집는 2차 부검 결과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파견단은 2차 부검 보고서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다행히 2010년부터는 이런 ‘긴급대응팀’이 자주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재외국민보호 관련 예산이 2009년 6억5000만원에서 2010년 27억5000만원으로 증액되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수사 초기 과정에 도움을 줄 경찰 영사가 증원되고 현지 언어와 제도에 익숙한 영사협력원이 충원된다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시스템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주) 다음은 한지수씨 사건 당시에 구명을 위해 제가 써서 인터넷에 전파한 내용입니다.  트위터 친구분들이 이 내용을 영어 일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해서 전파해 주었습니다. 


네델란드의 친구들에게 전합니다


1653년 동인도 회사 소속 상선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은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 제주도에 도착했다. 조선 조정은 그를 구출해 심문한 후 훈련도감에 편입시켰다. 그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시켜 업무를 보게했다. 하멜은 1668년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남겼다.
350년 뒤인 2002년 또 한 명의 네델란드인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표류한 것이 아니었다. 당당히 한국의 초청을 받고 온 그의 이름은 거스 히딩크,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감독이 되었다. 자신을 알아준 한국을 위해 히딩크는 최선을 다했고 월드컵 4강으로 보답했다. 한국인들은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가슴 속에 아로새겼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그가 묵었던 호텔방에, 그가 앉았던 레스토랑 자리에 그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랬던 네델란드가, 그렇게 친근했던 네델란드인들이 낯선 이름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9월 네델란드정부는 온두라스 정부를 압박해 한국인 여성 한지수씨를 인터폴에 적색 수배하게 만들었다. 온두라스에서 자국 여성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던 한지수씨는 귀국 길이 공항에서 붙들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온두라스로 소환되었다. 소환 과정에는 네델란드 외교관이 내내 동행했다. 

한지수씨가 온두라스에 송환된 이후 네델란드는 온두라스 재판부를 압박해 그녀가 구속 수사를 받게 만들었고 유죄 판결이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교관들은온두라스 사법부와 마찬가지로 한지수씨가 무죄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듭할 수 있을 만큼 한지수씨의 무죄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델란드 외교관들이 그녀를 구속시키려는 이유는 단지 속죄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1년 전, 온두라스에서 자국 여성이 의문사했고 이 사건은 본국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범인으로 지목되던 호주 남성(영국 이중국적자)은 부실한 수사를 받고 자신의 나라로 도주했다. 본국의 언론은 들끓었고 네델란드 외교관들은 속죄양이 필요했다. 그들의 덫에 걸린 사람이 바로 한지수씨였다

이 내용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것이기에 긴말 하지 않겠다. 한지수씨의 죄라면 죽어가는 네델란드 여성을 모른척할 수 없어 다이빙 강사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응급처치를 한 것 뿐이었다. 그 순간 알지도 못하는 외국 여성의 불행을 못본 척 했다면 그녀에게 불운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로운 길을 택했고 자신이 구하려던 여성의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뒤늦게 네델란드 외교관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주 남성 대신 한지수씨에게 칼 끝을 겨누었다. 범죄인 인도가 되지 않는 호주에 움츠려있던 호주 남성과 달리 아무런 죄가 없던 한지수씨는 자유롭게 해외를 드나들었다. 그런 그녀가 이국 땅 이집트에서 인터폴에 붙잡혀 낯선 이국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사연은 한국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고 한국 국민들은 네델란드의 ‘외교적 횡포’에 분노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지수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잊지 말자며 매주 수요일을 ‘한지수요일’로 정해 한지수 구명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한지수씨와 트위터( @freejisoo )를 통해 소통의 끈을 이어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네델란드 정부가 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잊지 말라. 한지수는 살해범이 아니라 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