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자연의 음악가, 구루물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작은 섬 엘코아일랜드. 이 섬에는 6만 년 전부터 구마티 부족이 산다. 씨족공동체인 이들에게는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고, 네 아이 내 아이도 따로 없다. 이 구마티 부족민 중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은 구루물 유누핑구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한을 달랬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구마티 부족의 언어 욜릉구어로 노래한 구루물의 노래는 기적을 일으켰다. 스팅·엘턴 존·비요크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이 그의 음악에 감동해 합동 공연을 청했다. 월드뮤직 전문지 <송라인즈(Songlines)>는 그를 2009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하기도 했다. 해외 투어 공연 도중 ‘고향이 그립다’며 다시 엘코 섬에 돌아가버린 그의 음악은 이제 음반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Gurrumul>, 뮤직콤파스).
● 극장판 <최후의 툰드라>
이번 겨울에 방송 3사의 대작 자연 다큐멘터리가 격돌했다. SBS <최후의 툰드라>, MBC <아프리카의 눈물>, KBS <동아시아 생명 대탐사 아무르>(프롤로그만 방영)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영되어 시청자들의 ‘안구 정화’와 ‘영혼 정화’에 기여했다.
이 중 선봉장 구실을 했던 <최후의 툰드라> 극장판이 나온다. 사전 조사 13개월, 촬영 기간 300일, 7000km에 이르는 대장정을 브라운관에만 풀기는 아까운 일이니까. 5D 마크2 카메라로 제작한 선명한 영상은 역시 극장 스크린에서 봐야 제격이다. 네네츠 마을의 귀여운 꼬마 형제 그리샤와 꼴라의 소박한 형제애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2월17일 개봉).
● 영화 <혜화, 동>
여기, 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5년 뒤 불현듯 다시 나타난 남자. “우리 아이 살아 있어.” 오랜만에 해후한 옛 연인이 건넨 말치고 참 아프다. 남자는 입양된 아이를 찾자고 한다. 불쑥 찾아온 이 과거 앞에서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07분간 카메라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유독 인물 클로즈업이 많고, 대화보다 침묵이 많다. 이토록 조심스러운, 그리하여 섬세한 장면들은 관객을 몰입시킨다. 신인 감독 민용근과 신인 배우 유다인·유연석은 ‘신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혜화, 동>을 통해 입증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감독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월17일 개봉한다(blog.naver.com/re_enco unter).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
오래전에 한·중·일 초상화 비교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서 ‘조상의 빛난 얼’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전통 초상화가 대상의 장점에만 주목한 반면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는 장점만큼 단점에도 똑같이 주목했다. 그림을 보고 말년에 앓았던 병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치밀했다. 그리고 보이는 형상만큼 보이지 않는 내면의 형상에도 집중해서 초상화를 보면 사상적 궤적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전시회 때 주목했던 화가가 바로 석지 채용신이다. 드물게 무과 출신으로 임금의 초상인 어진을 그리는 주관화사가 되었던 그는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사’로서 망국의 그늘을 화폭에 담았다. 고종 초상화 등과 함께 그가 그린 전라도 사람들과 산수화 등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2월15일~3월27일, 국립전주박물관).
스마트폰 영화의 매력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키워드는 ‘스마트폰 영화’였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은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파란만장>과 신예 양효주 감독의 <부서진 밤>이 단편영화 부문 황금곰상과 은곰상을 수상했다.
이제 영화에서도 대세가 된 스마트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제가 있다. ‘제1회 olleh·롯데 스마트폰 영화제’에서는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한 영화 470편을 심사해 시상했다. 플래티넘 스마트상 <도둑고양이들>(민병우), 골드 스마트상 <피조물의 생각>(권진희), 실버 스마트상 <사랑의 3점슛>(강동헌), 브론즈 스마트상 <내 새끼>(사진·이대영) 등 4편의 영화는 홈페이지(www.ollehlottefilm.com)에서 상영된다.
세시봉 그 후 45년, <조영남 콘서트>
게스트가 이미자다. ‘엘리지의 여왕’과 함께 가수 이장희도 게스트로 나온다. 이들을 손님으로 세운 ‘어메이징한’ 남자는 바로 가수 조영남. 아나운서 여자친구의 나이가 24세가 아니라 26세라고 정정한다며 사과했던 그가 어마어마했던 친구들을 게스트로 세운다. 여기에 60명의 슈퍼 밴드가 뒤를 받친다.
공연의 또 다른 볼거리는 ‘화가 조영남’이다. 공연장 로비에 그의 그림 작품들이 전시된다. 화투를 모티브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던 그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경실·최유라·박미선·이성미 등 후배 연예인을 그린 그림도 선보인다(3월10~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달콤한 말’이 빛나는 개인전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게 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달콤한 말이 빛나고 있다. 이정 작가는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감을 얻어 이번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네온으로 ‘I LOVE YOU WITH ALL MY HEART’ 따위 텍스트를 제작해 풍경 속에 가져다 놓았다. 진부한 사랑의 문구들이 황량한 공간과 만나는 순간. 작가는 그 순간을 통해 어떤 논리와 철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랑의 ‘딜레마’를 전한다(3월1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원앤제이 갤러리).
‘엘 시스테마’ 집중 탐구
그들이 온다. 스크린이 아니라 온전히 무대에.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의 유소년 전과자가 모여 만든 기적의 오케스트라,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가 1975년 창립한 후 단원 30만명을 보유하게 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내한 공연을 갖는다.
그러나 이 무대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일단 영화 관람이다. 파울 슈마니치와 마리아 슈토트마이어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엘 시스테마>(사진) 관람을 권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엘 시스테마’를 테마로 한 세미나도 있다.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이뤘는지 살펴본다. 그 다음이 공연이다.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역대 최연소(17)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에딕슨 루이즈를 배출한 ‘엘 시스테마’의 영광을 지켜볼 수 있다(3월27일 예술의전당, 3월28일 이화여자대학교).
‘와레와레’ 한·일 영화축제
국내에서는 아직 개봉하지 않아 더 궁금한 작품들이 있다.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2009년 작품 <카무이 외전>(사진)이 그렇다. 이 영화는 1965~1967년 연재된 시라토 산페이 작가의 동명의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번 ‘와레와레 한·일 영화축제’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된다. 이번 영화축제는 일본 국제교류 기금이 마련한 ‘한·일 신시대: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테마로 주최하는 문화 교류 이벤트 행사의 일환이다. 한·일 공동제작 작품, 재일동포가 등장하는 영화 등이 집중 소개된다. 전 작품 무료 관람. 그야말로 ‘와레와레(우리들)’라는 영화제 이름에 걸맞은 행사인 셈이다(3월10~16일, 서울 서대문구 아트하우스 모모).
원조 홍대 밴드들의 ‘존재 과시’
널리 홍대를 이롭게 했던 ‘원조’들이 돌아온다. 서울전자음악단·3호선버터플라이·황신혜밴드의 ‘홍익사운드’를 그리워했던 이들이라면 꼭 체크해야 할 공연! 이들이 2011년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겠다는 다짐을 담은 출정식 콘서트가 열린다. 뮤지션들은 음반과 무대를 통해 그 존재감을 증명한다. 서울전자음악단은 올해 3집 앨범을 발매하는데, 3호선버터플라이도 4집 앨범이 나온다. 2002년 이후 활동이 뜸했던 황신혜밴드는 멤버를 새롭게 구성해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공연 게스트로는 미미시스터즈와 룩앤리슨, 파고가 무대에 선다(3월13일,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라이브홀).
연희문학창작촌 봄학기
문학은 가르칠 수 있는 종류의 학문일까? 먼저 그 길에 서 있는 이들은 말한다. 그저 도울 뿐이라고. 당신의 심장 속에 숨어 있는, 혹은 당신 발끝에 매달린 문장과 빛나는 어휘를 발명하도록.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이 3월8일부터 13주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시·소설 창작교실을 연다. 자신의 호흡으로 스스로에 대해 써내려가는 동안 문학이 삶과 어떻게 조응하는지 알 수 있도록 안내하는 대중 강연이다. 시 창작교실의 강사로는 <나무의 수사학>의 손택수 시인이, 소설 창작교실에는 <처음의 아이들>의 김종광 소설가가 나선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의 한창훈 소설가는 주부들을 위해 오전 11시에 열리는 ‘브런치 문예교실’의 강사를 맡았다. 강의료는 모두 10만원(문의 02-324-4690).
상상마당 2010 <스코프>전
“박물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박물관이 사라져가는 것들을 간수하는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물관은 선택과 늘어놓기, 보여주기, 관람하기에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장소이다. 나는 농업 재현 행사들이 박물관처럼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채승우 작가노트 중)
상상마당은 2008년부터 매년 사진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중시하면서도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사진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SKOPF)을 통해 좋은 사진을 발굴하고 전시해왔다. 이번 전시는 ‘농업 박물관’을 주제로 촬영한 채승우 작가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사회 속에 숨은 욕망을 보여준 ‘TWINS(트윈스·사진)’를 주제로 촬영한 이선민 작가가 선정됐다. 2월25일~4월25일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 갤러리(문의 sangsangmadang.co.kr).
들국화 리메이크 앨범
들국화는 들에 피고지고 해야 들국화인데 요즘은 피었다는 소식이 좀체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꽃송이(전인권)가 아파서인 것 같다. 보컬 전인권이 요양 중인 가운데 창단 멤버인 기타리스트 조덕환이 최근 솔로 음반 <롱웨이 홈>을 내고 드러머 주찬권이 ‘슈퍼세션’팀을 새로 조직해 음반을 내기도 했지만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록의 전설’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후배들이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어 달랜다. 루비살롱레코드가 허클베리핀, 국카스텐, W&웨일, 못(MOT), 몽니 밴드와 함께 ‘들국화 리메이크 앨범’을 제작한다. 먼저 허클베리핀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못이 ‘매일 그대와’를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이후 차례로 노래가 공개되고 4월쯤에는 음반으로 출시된다.
독립한 ‘미미 시스터즈’
장기하 옆에서 춤을 추던 여성 2인조를 기억하는지. 한때 이들의 정체를 둘러싸고 온갖 설이 난무했다. 인조인간, 외계인, 심지어 남자(!)라는 설까지. 그녀들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이미 지난해 독립을 선언하고(당시 붕가붕가 레코드가 ‘여성 아이돌 열풍에 변태적으로 편승했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앨범을 준비해왔단다. 그 첫 번째 음반, 이름하여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가 3월에 나온다. 앨범에는 김창완을 비롯해 하세가와 요헤이, 서울전자음악단 등이 참여했다. 미미 시스터즈의 첫 앨범과 붕가붕가 레코드의 창립 6주년을 기념해 2월27일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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