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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독설닷컴 칼럼

'독설닷컴'은 왜 쿨하게 사과하지 않는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4. 6.


<쿨하게 사과하라>의 저자, 정재승 교수를 얼마 전 만난 적이 있다. 좋은 사과법을 배웠다고, 책을 읽어보고서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사과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나의 사과법은 잘못된 사과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쿨하게, 사과하지 않는 법’도 있다고 항변했다. 사과한다는 것은 남들의 기대를 채워주는 것인데, 기대를 채워주지 않고 그냥 부족하게 사는 것도 또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 ‘쿨하게, 사과하지 않겠다’는 것이 예언처럼 실현되었다. 트위터에 올린 잘못된 글 때문에 사람들이 크게 항의했다. 분명한 사과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나는 역으로 그것이 이해든 오해든 나는 나일뿐이라며 이런 내가 싫으면 싫어하라, 라고 선을 그어 버렸다. 쿨하게 사과하고 끝냈어야 할 일을 사과하지 않고 키웠다. 


단지 고집 때문은 아니었다. 나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은 김훈이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그는 마초적인 인터뷰가 문제가 되자, 사표를 던지며 ‘사적 자아의 진실을 찾아서 떠난다’라고 말했다. 이제서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김훈이 남긴 것은 ‘김훈은 김훈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기대를 받는 위치에 가면 기대를 채워주는 것도 예의라는 것을. 블로그와 트위터로 유명해졌고, 나름 그 유명세를 즐겼다. 그렇다면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도 분명 예의일 것이다. ‘소인배가 티끌만한 성취를 이루고 우쭐거린다’라는 말처럼 내가 인기는 당연한 것으로, 나를 비난하는 것은 찌질한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랬을까?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나는 스스로 ‘유명한 안유명인’이라는 유리천장을 설정했다. 그 유리천장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유명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질 때 생길 온갖 구속과 의무감 같은 것이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 나를 ‘골목스타’로 가두기로 했다. 비록 ‘독설닷컴’이라는 이름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고재열’이라는 이름은 작게 두자는 생각이었다.  


유명한 사람은 유명한 오해를 받는다고 했던가? 기대 이상으로 유명해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오해를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안티의 파도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오해도 이해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평범한 나를 오해해서 유명해진 것처럼 그들이 유명해진 나를 오해해서 싫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는 모습을 이틀 동안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볏짚을 지고 불섶에 뛰어드는 일처럼 무모한 일이었는데 나서서 나를 변호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뒤에서 위로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세상이 나를 우러러볼 때는 같이 우러러보고 세상이 나를 욕할 때는 같이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변과 차변, 내 조그만 유명세의 대차대조표를 명확히 그려볼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분명한 잘못을 했다. 그 글만 보아서는 여성들이 기분이 나쁠 수 있는 글을 올렸다. 여성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지우고 오해를 사도록 한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매우 잘못한 일이다. 학창시절 여선생님과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괜한 유머 욕심에 조금 과하게 짓궂게 표현을 했다. 짧은 글로는 사람들이 당시 분위기와 맥락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최소한 나는 ‘왜 그런 것 가지고 여성들이 화를 내는가’라고 생각할 만큼 몰염치하지는 않다. 그 기준이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반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페미니즘에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런 주제도 못된다. 그냥 남녀문제에 불철저한 내 자신이 미안할 뿐이다. ‘꼴페미’에 대한 반감 때문도 아니다. 나는 그런 부류가 있지만 페미니즘의 도도한 흐름에 방해가 될 정도로 크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때 바짝 엎드렸더라면 일이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서도 아니고, 뻔뻔해서도 아니고, 당시 상황 조건 때문에 사과가 아니라 그냥 내 입장을 밝히는 방법을 택했다. 그 이유는 '독설닷컴 언팔운동을 하자' '시사IN 절독운동을 하자'며 덤벼드는 사람들에게 굴복하기 싫어서였다. 내가 잘못했을 지언정 그런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그 이유였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김조광수 감독은 내게 ‘여성을 약자나 소수자로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여성은 세상을 떠받치는 반쪽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여성을 약자나 소수자로 보는 것이 바로 마초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초는 그랬다. 여성을 배려해야할 약자로만 인식한다고. 나는 여성을 약자나 소수자로 인식하면 여성정책은 배려와 혜택이 된다. 당연한 반쪽의 몫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봐야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인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마이너리티 증후군’이 있다. 주류가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비주류로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이상한 증후군이다. 블로그와 트위터로 유명세를 타면서 ‘내가 너무 나대는 것 아닌가’ 하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블로그와 트위터의 글에서 내가 인기를 얻기 위해 이런 저런 잔머리를 굴린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는 A형이다. 겉은 A형이고 속은 아마 트리플 A형 정도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덜 기대 받고 덜 관심 받고 덜 주목 받기 위해서 쉴드를 쳤다. ‘진보 / 지식인 / 친노 / 리더 / 유명인’이 아니니, ‘왜 너는 00인데, 00하지 않아’라는 화법으로 날 비난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단순한 방어전략이 아니라 그것이 내 진심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나는 그런 위치에 가고 싶지가 않으니 그런 기대일랑 접어달라, 라는 말이다. 


내가 틀린 말을 할 수도 있고 틀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게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기 위해 나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에 장벽을 쳤다. 내가 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가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설명이 궤변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인생 자체가 궤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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