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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독설닷컴 칼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8. 25.



주)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 투표 문안을 보자.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하여’라는 질문에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라는 답변 중에서 고르도록 되어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질문은 ‘지원 범위’에 관하여 물으면서 ‘지원 시기’까지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조건이 두 가지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경우의 수는 네 가지가 된다. 소득 하위 50%에게만 할 것이냐, 전면적으로 할 것이냐와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할 것이냐,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할 것이냐, 이 두 가지 조건이 결합한 네 가지 보기가 나와야 한다.

결합하면 이렇다. 1)‘소득 하위 50%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2)‘소득 하위 50%의 학생 대상으로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초등 2011년)’ 3)‘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4)‘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 대상으로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초등 2011년)’ 이 네 가지 안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 문안은 양 극단인 1)과 4)만 묻고 있다. 그 중간 값인 2)와 3)은 생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세훈 안’인 1)안을 좀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극단적인 4)안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4)안은 ‘곽노현 안’이 아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주장하는 안은 3)안이다.

서울시의 투표 질문은 비유하자면 이렇다. 오세훈과 곽노현이 냉면집에 갔다. 비빔냉면을 먹을까 국물이 있는 물냉면을 먹을까 논쟁했다. 오세훈이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런데 질문지는 ‘비빔냉면 vs 잔치국수’로 되어 있었다. 곽노현이 따지자, 오세훈은 국물이 있는 것을 원했지 않느냐면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오세훈이 곽노현과 함께 냉면 집에 간 것을 부정하는 질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서울시 무상급식(초등 4학년까지 전면 무상급식, 초등5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부분 무상급식)은 곽노현 안과 서울시 안의 절충안이다. 전면 무상급식이라는 곽노현의 이상과 예산부족이라는 서울시의 현실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과 현실이 결합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초중등 학생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이라는 것은 투표 문항에 없다.

현행 서울시의 부분 무상급식(초등 5학년~중학생까지)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편부모 가정’ 등 하위 20% 정도의 서민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50%안을 내민 것은 ‘무상급식을 확대한다’는 ‘곽노현 안’의 방향성에 동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곽노현 교육감이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하자고 하는 것은 서울시의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민의 대표기관인 서울시의회가 이를 추인했다.

‘오세훈 안’은 여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를 ‘오세훈 안’과 ‘곽노현 안’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투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울시의회 의결을 거쳐 이미 실시되고 있는 절충된 ‘곽노현 안’에 대해 오세훈 시장이 트집을 잡는 것을 받아주느냐 마느냐에 대한 투표이다.

서울시 초중등 무상급식에 대한 ‘오세훈 안’은 틀린 방안은 아니다. ‘곽노현 안’과 다른 방안일 뿐이다. 그 차이는 2014년까지의 목표를 100%로 하느냐 50%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목표를 1등으로 하느냐 중간 정도로 하느냐의 차이 정도다. 어떻게 이 차이가 주민 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오세훈 안’은 ‘틀린’ 방안은 아니지만 무상급식 주민 투표는 ‘틀린’ 방식이다. 세몰이식 주민 투표 서명 받기와 182억을 들인 주민 투표 실시는 행정력의 낭비고 예산의 낭비다. 이상도 일치하고 현실도 감 안했는데, 목표를 100%로 하느냐 50%로 하느냐의 차이를 절충하지 못해 이런 ‘헛힘’을 쓰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무상급식 주민 투표를 놓고 진보와 보수가 마치 해방 직후 ‘찬탁 vs 반탁’으로 나뉘어 싸우던 때처럼, 혹은 조선시대 ‘예송 논쟁’이 당파 싸움으로 비화되던 때처럼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다. 사소한 차이를 놓고 이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도록 방기한 데는 언론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언론이 제대로 된 공론장 역할을 하지 못해 이 ‘몰상식의 경연장’을 방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