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비판이 더 촌스럽다
언젠가 후배들과 등산을 갔는데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 후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와 바람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같다.” 그 순간 머리가 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이전 세대에게 바람의 이데아는 자연풍이었다. 그래서 선풍기를 만들던 에어컨을 만들던 모두 ‘자연풍’과 근접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세대에게 바람의 이데아는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고 정확한 바람을 제공하는 ‘에어컨’이었다. 이것이 차이다.
낸시랭의 ‘터부 요기니’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낸시랭을 비롯해서 일련의 신세대 팡아트 작가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전 세대 팝아트 작가에게 현대 자본주의 상업주의는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로그값 즉 기본값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척 하는 위선이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물신주의를 로그값으로 깔았다. 낸시랭의 ‘터부 요기니’는 명품 갑옷을 입고 있다. 그들에게 명품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든든한 갑옷이기 때문이다.
명품 갑옷을 입은 세대, 어쩌면 이들을 ‘인스탄트 세대’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물 불 흙 공기와 함께 제 5원소로 ‘광고’가 있었던 시대다. 시대의 로그값이 바뀐 것이다. 이를 안타까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실의 무게는 언제나 무겁다.
* 강남좌파가 날라리좌파로
날라리 세대의 자유분방한 정체성은 ‘강남좌파’ 담론과 연계해서 설명할 수 있다. 동아일보가 만들고 강준만 교수가 본격적으로 제기한 ‘강남좌파’ 담론은 좌파가 부자가 된 것에 대한 이야기다. ‘강단좌파’ 등 여러 파생된 이야기가 있는데 골자는 좌파가 부자가 되더니 하는 짓이 우파와 똑같더라, 강단 위에서만 투사고 실천이 없더라, 그런 이야기였다.
이 ‘강남좌파’의 변형 모형이 바로 ‘날라리 좌파’다. 촛불집회 이후 좌파가 된 부자들, 혹은 좌파가 된 전문직들이 바로 이들이다. 취향으로서의 좌파인 이들은 어찌 보면 엉터리 좌파일 수 있다. 이데올로그도 정립되어 있지 않고. 그런데 이들은 역순이다. 일단 현장에서 먼저 행동을 하고 이에 맞춰 이데올로그를 정립해 나간다.
이 놀기 좋아하는 세대가 왜 갑자기 세상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했을까? 어쩌면 사회적 정의를 위해 개인적 행복을 담보 잡혔던 선배 386세대에 대한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 386신화가 남아있던 캠퍼스에서 서태지와 이와이 슈운지에 열광하면서 뭔가 미안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것을 뒤늦게 중년의 문턱에서 게워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늦게 배운 도적질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 외부세력의 미친 존재감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에 이어 등장하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날라리 세대, 88만원 세대에게 공감과 교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는 이들을 298세대라고 부른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중간에 있는 ‘낀 세대’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298세대는 존재감 없는 세대였다. 386세대만큼 세상을 흔들어보지도 못했고 88만원세대만큼 세상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가장 주목받는 세대였다는 것이다. ‘오렌지족’ ‘신세대’ ‘X세대’라는 수식어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배우 김여진씨와 함께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도왔던 이들을 스스로를 ‘날라리 외부세력’이라 불렀다. 우리는 이 시대의 외부세력인 동시에 내부세력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인 산업화 세대, 그리고 이들에 대한 안티태제로 민주화를 내세웠던 선배 민주화 세대, 이 두 세대의 구심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밖에서 당기는 원심력이 강해진 것이 지금의 형세다. 그 원심력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어느덧 우리는 이 시대의 구심이 되었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우리 사회를 성장시킨 세대다. 경제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그럼 이 날나리세대는 어떤 세대인가? 이들은 우리 사회를 성장시키는 세대는 아닐 수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는 세대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 사회가 옆과 뒤도 볼 수 있도록 호흡을 가다듬어 주는 세대다.
* 에필로그
날라리 외부세력, 298세대, 그리고 놀쉬돌.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이것은 FAD를 넘어 이 시대의 FASSION으로 자리 잡았다. 이 키워드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코디네이팅 하고 있다. 리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를 대표하는 몇몇 대표주자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세대가 이들을 대표주자로 꼽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은 아마 ‘누가 나를 대표한다는거야. 나를 대표하는 건 나밖에 없다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전범들을 통해 그때 그 ‘오렌지족’ ‘신세대’ ‘X세대’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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