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듯이 투쟁하고 놀듯이 일한다
386세대는 88만원 세대에게 ‘분노하라’라고 선동한 반면, 날라리세대는 ‘한 판 놀아라’라고 제안했다. 놀면서 투쟁하고 놀듯이 일하는 세대. 어느덧 이 세대가 대한민국의 중심을 향해 나가고 있다. 잘 놀고 잘 쉬는 ‘놀쉬돌’, 비록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더라도 잘 놀고 잘 쉴 수 있는 세대, 이 ‘간지 나는 세대’가 한류의 주역이 되었고, 아이돌 중심의 2차 한류가 파생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박진영은 대학에서 가장 잘 놀았고, 서태지는 대학 밖에서 가장 잘 놀았다. 그들이 목격한 시대는 잘 노는 사람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나 <1박2일>의 나영석 PD도 ‘잘 노는 법’, 즉 놀이의 전형을 만들어내면서 스타PD가 되었다.
쫄깃쎈타를 보자. 멀쩡히 직장을 잘 다니던 쫄깃패들이 자원봉사를 자원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으로 내려가 아무 대가 없이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쫄깃쎈타를 짓는 일을 놀이로 생각했다는 것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일과 놀이의 일치화가 가능하다.
이들에게는 투쟁도 충분히 놀이가 된다. ‘날라리 외부세력’은 치열한 이슈 현장에 갈 때 ‘놀러 간다’고 말하고 다녀와서는 ‘놀고 왔다’고 말한다. 그 심각한 이슈의 현장에 가면서 ‘놀러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세대, 그리고 물대포를 맞고 밤샘 농성을 하고 와서도 ‘잘 놀았다’라고 말하는 그들, 그것은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노는 세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샴페인을 맛본 세대
왜 날라리 세대는 노는 데 그렇게 집착할까?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같은 수식어가 횡행했던 산업화 세대가 부사와 형용사의 세계였다면, ‘민주화’ ‘인권’ 등의 단어가 숭상되던 민주화 세대는 추상명사의 세계였다. 그리고 날라리 세대는? 고유명사의 세계였다. 나이키 운동화와 게스 청바지가 모든 것을 말하던 사춘기를 지나 루이뷔똥과 샤넬로 언어를 바꾼, 그들의 세계는 고유명사의 세계였다.
다시 도식화 작업을 더 해보면 산업화 세대는 개인의 삶을 국가가 이끌었던 시대였고, 민주화 세대는 선배가 이끌었던 시대, 그리고 날라리 세대는 광고가 이끌었던 시대였다. 날라리 세대를 좀더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 다음 세대는 생존본능이 이끄는 시대가 되었다.
날라리 세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샴페인을 맛 본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얘기가 있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샴페인을 마시지 않았을까? 나는 우리 날라리 세대가 그 샴페인을 먼저 마신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그 샴페인 맛을 기억하는 그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 인생 연말정산이 아니라 중간정산을~
날라리 세대와 산업화 세대는 무엇이 다를까? 일단 과제가 달랐다. 산업화 세대는 우리를 절대빈곤에서 탈출 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반면 날라리-298-놀쉬돌 세대는 그 판에서 놀아주는 세대였다. 그것을 의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의무감 없이 즐겼다.
산업화 세대에게 인생은 끝없는 의무의 연속이었고 그들은 인생을 ‘연말정산’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 세계일주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그들은 시점을 은퇴시점으로 잡는다. 반면 ‘날라리-298-놀쉬돌’ 세대는 인생을 ‘중간정산’으로 생각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행복을 유보하기 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추구한다. 나중에 무리가 가더라도 힘 있고 의욕 있는 지금 세계일주를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중간정산을 한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한 과실을 유보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연으로 귀의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러 아프리카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좀 더 큰 쉼표를 찍는 정도일 수도 있다. 그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세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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