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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오세훈을 잡은 '포스트 386세대' 분석 - 2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9. 11.



* 압구정동에서 홍대 앞으로 

1990년대 대중문화 중심지였던 압구정동은 왜 홍대 앞에 1번지 자리를 내놓게 되었을까? 요즘 압구정동에 가보면 ‘시망(시원하게 망했다)’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예 고급스럽게 단장한 청담동에 밀리고 분주한 강남역에 비해 초라하고 한산하다. 아마 소설가 유하도 이제 더 이상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 압구정동의 연예인 실내포차에서 홍대앞 막걸리바로 유행이 옮겨졌을까? 조금 과잉해서 해석하자면 이것은 연예인을 선망하던 시기에서 연예인을 극복하는 시기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더 과잉해서 해석하자면 이것은 자본주의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신자유주의 극복 모형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무작정 갖다 붙이자면 근대와 현대를 넘어선 탈현대의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홍대앞’은 다시 자본에 재점령 당하고 문화를 일군 주역들은 다시 ‘홍대옆’으로 비켜서고 있다. 요즘 홍대 앞에 가보면 ‘여기가 무슨 문화 1번지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본에 점령되어 있다. 높은 임대료를 버텨내지 못하고 홍대 앞 문화 생태계를 구축했던 주역들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심지어 멀리 문래동까지 달아난 예술가들도 있다. 


* 근대와 전근대를 못 참다

흥미로운 사실은 날라리외부세력과 홍대 청소노동자의 연대에서 볼 수 있듯, 홍대 앞은 ‘현대’에서 ‘탈현대’로 진화하고 있는데 그 안의 홍익대학교는 ‘근대’ 혹은 ‘전근대’로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된 후 학내 집회를 열 때 홍대 총학생회는 ‘학습권’을 방해한다며 그들의 ‘생존권’을 막았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마저 ‘외부세력’이라고 부르며 차단했다. 

시민의 힘으로 집단 해고가 철회된 후 홍대 재단은 ‘소송 폭탄’으로 치졸하게 복수했다. ‘외부세력’이라는 ‘탈현대’에서 총학생회라는 ‘근대’를 거쳐 재단이라는 ‘전근대’까지 역행하는 과정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했다. 그들은 이 혼란을 두려워했다. 티끌만한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홍익대 재단을 보자. 재단 이사진은 전직 장차관 출신과 총장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꼰대라인’이다. 이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소송 폭탄’으로 응수했다. 마치 이명박 정권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벌금 폭탄’으로 보복한 것과 닮았다. 언제나 그렇듯 제도는 기득권의 편이다. 

그런 꼰대는 그렇다 치고, 홍대 총학생회는 왜 역행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인성의 문제일까? 혹은 ‘무개념’의 문제일까? 굳이 그들을 변명하자면 시대의 문제였을 것이다. 어릴 적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는 부모님의 모습, 혹은 친구 부모님의 모습, 혹은 부모님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누구든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라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렇게 아등바등 설쳐도 세상이 허락하는 것은 88만원 비정규직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기대할 수 있을까? 


* ‘의미’ 보다 ‘재미’ 

김예슬 선언이 있었다. 고려대를 자퇴하며 현재의 대학사회를 성토하는 글을 발표했다. 선배 세대는 이를 용기 있는 결단이라 칭송했다. 특히 386세대가 그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예슬 선언에 가장 토를 많이 단 세대는 다름 아닌 동년배인 88만원 세대였다. 그렇게 김예슬 선언은 파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리 없는 메아리로 그쳤다.  

김예슬 선언은 왜 물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계몽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는 반값등록금 집회와 비교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처음 이 집회는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의 개별 집회였다. 그러던 것이 트위터를 통해 확산되어 대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참여하는 대중집회로 확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확대의 과정이다. 73명의 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트위터에 ‘날라리 선배부대’라는 지원 모임이 조직되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지만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지원 연설(김제동 김여진)’ ‘통닭집회’ ‘책 읽는 집회’ 등을 기획해서 지원했다. 

김예슬 선언과 반값등록급 집회의 차이는 계몽이냐 공감이냐의 차이였다. 계몽이 일으키는 부담을 줄이고 재미를 통한 공감을 추구한 결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후 ‘재미’라는 코드는 대학생들의 이슈 현장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서울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본부스탁’이라는 밴드페스티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