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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9. 14.


아이콘 아지트 (아방가르드) 

386세대와 88만원세대 사이의 낀세대, 298세대(386-88=298)이야기를 시작했다. 386세대처럼 세상을 휘두르지도 못하고 88만원세대처럼 세상에 휘둘리지도 않았던 세대, 그래서 주목받지 못했던 조연, 존재감 없던 세대가 ‘날라리 좌파’로 요즘 조명을 받고 있는 1970년대생-90년대 학번-30대의 이야기다. 이 세대의 특성을 ‘아이콘’과 ‘아지트’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298세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방가르다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세대다. 통상적으로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20대를 뛰어넘는다. 아래 2010년 지방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당파'가 가장 많은 세대가 바로 30대라고 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낙관적이며 정치적 관심이 많은 이 30대에 대한 담론을 시작하려고 한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 방송3사 출구조사

서울(오세훈 20대/30대 vs 한명숙 20대/30대) : 34.0/27.8 vs 56.7/64.2
경기(김문수 20대/30대 vs 유시민 20대/30대) : 34.3/32.2 vs 65.7/67.8 
인천(안상수 20대/30대 vs 송영길 20대/30대) : 30.1/26.1 vs 65.5/70.5 
강원(이계진 20대/30대 vs 이광재 20대/30대) : 32.0/28.2 vs 68.0/71.8
충북(정우택 20대/30대 vs 이시종 20대/30대) : 32.8/33.4 vs 63.9/63.8
충남(박해춘 20대/30대 vs 안희정 20대/30대) : 12.1/10.6 vs 56.1/64.1
경남(이달곤 20대/30대 vs 김두관 20대/30대) : 33.5/29.9 vs 66.5/70.1 




 



# 아이콘 

298세대의 아이콘이 되는 몇몇 인물을 통해서 이 세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물론 이들이 이 세대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차라리 이 세대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넓어진 오지랖으로 접했던 298세대 중에서 특히 주목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정치적인 성공이나 경제적인 성공이 아닌 문화적인 성공을 한 인물들이다. 

활발한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 다양한 일본 영화까지 접했던 세대, 그래서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을 들으며 신인류 대접을 받았던 세대, 그 세대는 결국 문화적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한류의 주역이며 기획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세대의 전형성은 문화적 아이콘에서 찾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런 인물들을 주변에서 꼽아보았다.  

곰사장(고건혁), 김강/김윤환, 김남훈, 김여진, 김제동, 김진혁, 김태호, 김홍모, 메가쑈킹(고필헌), 부세현, 이리카페, 정재승, 탁재형, 탁현민, 허은실, 허클베리핀...

이 세대의 감수성에 영향을 준 인물들도 꼽아 본다.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회보다는 개인, 그 중에서도 개인의 취향에 주목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감성을 극대화한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는 이후 다양한 파생현상을 낳았고 일본 소설가와 영화가 소개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영향을 끼친 그룹으로 볼 수 있다. 이 세대는 하루하루 담론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문자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걸어갔다. 이념적 노선이 아니라 감성적 취향으로 나뉘기 시작한 세대인 것이다. 



# 아지트 

앞서 꼽은, 298세대의 ‘아이콘’이 되는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자신만의 ‘아지트’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지트는 유형일 수도 있고 무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주축이 되는 하나의 그룹이 있다는 것이며, 그 그룹이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98세대의 아지트 문화는 활발했던 1990년대의 동아리문화 전통에 기인한다. 386세대가 학생회와 학회(주로 언더서클)를 중심으로 의견 그룹을 형성했다면 298세대는 동아리를 통해 취향 그룹을 형성했다. 이런 동아리 문화는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급격히 쇠퇴해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들이 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298세대와 함께 동아리문화의 전성기는 졌다. 타인을 동반자가 아닌 부담스러운 짐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학생회나 학회 혹은 동아리 문화는 선배가 후배에게 영향을 주는 체계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 이 체계가 흔들렸다. 2000년대 초반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압도적으로 선배보다 부모를 꼽았다. ‘우리집이, 나의 삶이 언제 몰락할 지 모른다’라는 위기감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주의를 잉태했다. 대신 대학에서는 고독한 ‘스펙홀릭’으로 살아야 했다. 

298세대 아지트의 DNA가 있는 세대다. 대학에서도 만들고, 회사에서도 만들고, PC통신으로도 만들고, 인터넷으로도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만들었다. 그 아지트는 김유식의 디시인사이드나 김태호의 ‘무한도전’ 팬클럽처럼 클 수도 있고, 탁재형의 ‘국제똘짓당’처럼 작을 수도 있고, 문래예술공장의 LAB39처럼 공장을 개조한 작업실일 수도 있고, 곰사장의 ‘붕가붕가레코드’처럼 음악 레이블일 수도 있다. 나는 다음 몇몇의 아지트에 주목했다.  

트위터를 통해 만들어진 김여진의 ‘날라리 외부세력’, 박혜경의 ‘레몬트리 공작단’, 김제동의 ‘몸뚱아리들’은 금세 세를 불려 홍익대 청소노동자와 한진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을,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구룡마을 수해주민들을 도왔다. 유쾌하고 재미있게. 

만화가 메가쑈킹은 제주도에 ‘쫄깃쎈타’를 ‘쫄깃패밀리’들을 모집해 만들었다. 보수도 없는데 직장까지 그만두고 ‘쫄깃쎈타’라는 아지트를 구축한 그들은 대부분 298세대였다. 이들에게 이런 아지트가 로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일이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소장과학자들의 재능기부로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중소도시에서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콘서트를 연다. 작년 32곳에서 올해 46곳으로 늘었는데 이것 역시 트위터를 통해 만들어졌다. 

트위터에서는 이런 모임들이 게릴라 작전처럼 만들어진다. 느슨하고 유연한 조직이다. 정재승은 이런 모임의 특징을 ‘기억으로 가입하고 망각으로 탈퇴한다’라고 말했다. 풍부한 동아리 활동의 경험과 동호회 활동의 경험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김여진 박혜경 김제동 메가쑈킹 정재승은 이 모임에서 ‘리더’가 아닌 ‘시샵’의 역할을 하며 모임을 코디네이팅한다.  
 
만화가 김홍모는 만화가와 만화 애호가들을 위해 직접 파주에 만화방을 만들었다. 탁현민은 자신이 세운 ‘P당’이라는 회사에서 동아리를 구현하려고 한다. <세계테마기행>의 탁재형은 외국에 나가서 ‘뻘짓’하는 이들을 모아 ‘국제똘짓당’을 조직했다. 나는 이 다양한 아지트들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유형 혹은 무형의 아지트를 구축했느냐 못했느냐는 이 세대에게 있어 성공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아지트를 구축하는 골조가 호기심과 관심이라면 벽과 지붕은 재미다. 함께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하고 이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면 부가가치가 생긴다는 것을 이 세대는 경험으로 확신한다. 

이들을 따라서 나도 아지트를 구축해 보았다. ‘산책콘서트’와 ‘기적의 책꽂이’가 내가 구축한 아지트다. 봄과 가을에 수도권의 산책로에서 함께 산책을 나누고 인디뮤지션의 음악을 감상하는 ‘산책콘서트’에는 매회 수십 명의 참석자들이 몰릴 정도로 안착했다. 강릉 바우길을 시작으로 ‘산책콘서트’는 점점 먼 곳으로 산책을 나가고 있다. 

‘기적의 책꽂이’가 만든 기적은 더욱 놀랍다. ‘잘 안 읽는 책을 모아서 책이 꼭 필요한 곳에 전해주자’는 취지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책을 모을 장소, 책을 정리하는 품, 책을 전달하는 차량 등 모든 것을 자원봉사로 해결했고 책꽂이 값은 모금으로 모았다. 그렇게 두 달 만에 3만5천 권을 모았다. 

298세대의 ‘아이콘’들이 다양한 ‘아지트’를 만들어내는 양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들은 인생을 ‘연말정산’이 아니라 ‘중간정산’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다. 자신의 인생에 한 매듭이 되는 아지트를 구축하는 이들의 모습이, 삶에 지친 다른 동년배들에게 조그만 힌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장밋빛 인생’처럼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민들레처럼 소박하게 피어있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주> 298세대 이야기는 앞으로 주 2~3회씩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