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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세대가 88만원세대에 미친 영향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9. 19.


‘날라리 선배부대’가 등록금집회에 통닭을 들고 온 까닭 


발단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5월29일,‘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시위를 벌이던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학생 73명이 연행되었다. 연행된 학생 중 경찰이 목을 세게 감고 끌고 가는 한 학생의 사진이 이목을 붙들었다. 그날 밤새 트위터에 이 학생의 사진이 돌았다. ‘거짓 공약한 정치인들이 죄지 공약 이행하라는 대학생이 죄인가’라는 말과 함께. 

비록 언론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트위터 이용자들은 분노했다. 연행된 73명 학생들의 석방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그 무렵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또래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제안했다. 어떤 식으로든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를 돕자는 것이었다. 

프로레슬러 김남훈씨, 춘천MBC 박대용 기자, 가수 박혜경씨 등이 모였다.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배우 김여진씨, MC 김제동씨,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등은 이들이 결정한 내용을 따르기로 했다. 이날 모인 이들은 이른바 298세대였다. 298세대(386-88=298)는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중간 세대로 한국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고 있는 30대였다.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유일하게 샴페인을 맛본 세대였다. 

이 298세대는 사실 고액 등록금과 가장 무관한 세대였다. 고액등록금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었고 당사자의 부모도 아니었다. 그들이 대학을 다녔을 시기는 풍요와 번영의 시기였다. 비록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짓더라도 자식들은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다녀왔다. 그런 그들이 후배들을 위해 ‘날라리 선배부대’를 조직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액등록금 때문에 대학생들이 받는 고통을 전해 듣고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선배의 도리였다. 비록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지만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모임에서 이들은 네 가지를 정하고 트위터의 동년배들에게 전파했다. '이야기 들어주기' '모른 척하지 말기' '변호사비는 책임져주기'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하기'...


 

물론 대학등록금 문제보다 더 다급한 문제가 있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반값등록금을 위해 세금으로 보전해줄 경우 대학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맞는 주장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보다 시급한 문제도 많고 등록금 정책이 차별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장애인 정책이 비장애인에게 차별정책이 되고 보육정책이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자들에게 차별정책이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무원들이 이런 것들을 헤아려 공정한 사회를 만들라고 내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까지 국민이 다 해결해주면 공무원은 왜 있고 세금은 왜 내는 것인가? 더군다나 그들은 ‘반값등록금 공약’의 당사자가 아닌가? ‘날라리 선배부대’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6월2일) 김제동과 김여진이 바로 반값등록급 촛불집회 현장을 찾았다. 분위기는 금새 달아올랐다. 그 다음날(6월3일)은 통닭파티였다. 여기저기서 통닭 400여 마리가 배달되었다. MC 김제동은 “모두 똑같은 동생들이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전경들에게도 통닭을 사 먹여야 한다”라며 250만원씩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현충일 연휴 동안에는 ‘책 읽는 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렇게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는 이슈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6․10항쟁 24주년인 6월10일 금요일 집회에는 3만여명의 대학생과 시민이 운집했다.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 이후 최대 인파였다. 100여명 남짓한 운동권 학생들의 시위가 3만여명의 대중집회로 확산된 것이었다. 학부모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가 이슈가 되면서 ‘등록금 인하’를 승산 있는 싸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가 대중화 되는데 ‘날라리 선배부대’가 기여한 부분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거들었을 뿐이다. 밥상에 반찬 몇 가지 더 얹어주었을 뿐 주체는 대학생들이었다. 철저하게 대학생들이 차린 밥상이었다(몇몇 정치인은 그 밥상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기웃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대규모 집회의 가장 큰 의미는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통일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의 영향은 엄청났다. 정치인들도 속속 입장을 바꾸었고 반값등록금 문제는 최고 정치 쟁점이 되었다. 목을 조르며 대학생들을 연행하던 경찰은 대학생들의 기세에 눌려 청계광장까지 내주었다. 이런 힘의 흐름을 대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날라리 선배부대’가 겨냥했던 것은 도서관에서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대다수의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해한다. 너희들의 문제지만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져서 오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바쁜 우리도 여기에 왔다. 너희 친구들이 지금 너희들의 문제를 가지고 거리에 나와 있다. 알아나 둬라’ 


 

침묵하는 다수를 움직이기 위해 취한 전략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여기 나와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길거리 데모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집회가 안전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유명 연예인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이를 연출할 수 있었다.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통닭 수백마리가 배달되고 인기 연예인이 함께 하고 광화문광장에서 ‘책 읽는 시위’를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재미있는 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치 집단레포츠처럼 보이게 해서 시위의 장이 아니라 잔치의 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은 부채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비록 사정이 다급해 도서관에서 기말고사 준비는 하고 있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마음의 빚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빚을 갚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너희들이 문제이니 너희들이 잘 알아서 해라’하는 의미로 조심스럽게 도왔다. 

그것이 3만 명의 물결을 이뤄낸 것은 기적이었다. 아니 이것은 대단한 반전이었다. 반 년 전 또 한 장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랬다. 그 사진은 홍익대 총학생회장이 청소노동자들의 교내 파업집회를 막는 장면이었다. 이 사진 역시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유포되었고 홍대 총학생회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집단 해고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걸고 시위하는데 총학생회는 학우들의 ‘학습권’에 방해된다는 이유를 들며 이를 막았다. 그들은 홍익대 미화노조지부의 상급단체로 협상 당사자인 민주노총 산하 공공서비스노조도 ‘외부세력’이라며 학교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것이 2011년 벽두를 연 대학사회의 모습이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홍대 총학생회를 비난했다. 그런데 비난에서 그치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을 돕자며 ‘날라리 외부세력’을 조직했다. 여기에 선봉에 섰던 사람이 바로 탤런트 김여진씨다. 이들은 김장담그기 바자회 그리고 지면 광고 등을 통해서 청소노동자들을 측면 지원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지루한 싸움은 결국 노조의 승리로 끝났고 청소 아주머니들은 전원 복직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대학생들이 자신 주위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신학기 등록금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함께 뭉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경희대 총학생회가 학생총회를 성사시키고 등록금 인하를 이뤄냈다. 더욱 기특한 것은 인하된 금액을 학내 청소노동자 복지에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승전보가 들려왔다. 그 기세는 법인화에 반대해 서울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록페스티벌인 ‘본부스탁’을 여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대학생들이 왜 이만큼 뭉치지 못했을까? 이 시대 대학생들이 사회의식이 없어서? 이전 세대 대학생들보다 이기적이라서? 질문을 바꿔보자. 한국 사회 변혁의 주체였던 386세대가 지금 대학을 다닌다면 그들은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초중반 X세대 신세대 소리를 들었던 대학생들이 지금 대학을 다닌다면 속 편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을까? 

장담하는데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학교 수업시간표에 맞춰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서 학교 수업시같표를 짜는 시대다. 의식이 족해야 낭만을 아는 법이다. 등록금집회에 나간 친구를 위해 한 대학생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그 친구 풀어주세요. 아르바이트 가야 합니다. 아르바이트 못 가서 등록금 마련 못하면 경찰이 책임져 줄껀가요?” 

대학을 졸업해도 답이 없다. 살인적인 등록금과 그 대출금을 안고 사회에 나갔을 때 사회가 내놓는 밥상은 88만원 비정규직일 뿐이다. 오늘도 어둡고 내일도 불투명한데 사회의식이 어딨고 낭만이 어디 있겠는가? 재산이 58억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두 딸을 대학에 보내느라 허리가 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이런 시대에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고 대학의 낭만을 즐기라고? 어림없는 일이다. 1980년대 거리의 투사도 지금 대학에 다닌다면 도서관 ‘죽돌이’가 되었을 것이고 1990년대 배낭여행-어학연수 1세대도 지금 대학에 다닌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이것이 우울한 진실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슬을 끊고 대학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생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당장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정치인들은 대학생들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크게 낸 대학생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목소리를 얻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삼을 기후와 토양 조건이 완벽한 곳에 심으면 무만큼 크게 자란다고. 하지만 효능도 무가 된다고. 비바람 맞고 더위 추위 견뎌내면서 성장을 못해도 성숙을 하면서 효능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금 젊은 세대가 그렇게 성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88만원세대의 건투를 빈다. 298세대도 함께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투쟁이 몸에 밴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는 세대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상식의 시대'로 바뀌는 모습을 본 세대다. 이 세대가 뒤에서 반주해줄테니 88만원 세대는 목청껏 노래해라. 너희들의 시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