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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숙히 들여다보기

현역 PD들에게 최고의 PD가 누군지 물었더니...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2. 1. 3.


PD들이 꼽는 최고의 PD는 누구일까? 그리고 PD들이 최고로 꼽는 드라마 작가는 누구일까? 늘 시비가 끊이지 않는 연말 시상식에서 ‘프로가 인정하는 프로’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사IN>이 직접 설문조사를 벌여보았다. 12월1~15일 온라인 여론조사 도구인 ‘서베이몽키’를 활용해 설문을 한 결과 설문에 응한 PD는 모두 224명이었다. 한국PD연합회에 등록된 전체 PD의 10%가량에 해당한다.

먼저 교양·다큐 부문에서는 <PD 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의 MBC 최승호 PD가 최고의 PD로 꼽혔다(29.6%). 황우석 교수의 논문 사기를 고발했던 MBC 한학수 PD가 그 뒤를 이었다(18.4%). <지식채널e>를 기획해 TV 스폿 프로그램의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고 EBS의 존재감을 키운 김진혁 PD가 그 다음이었다(14.8%). 

흥미로운 것은 최승호·한학수·김진혁, 이 세 PD가 모두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고 자신이 제작하던 프로그램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최승호·한학수 PD를 비롯해 <PD 수첩> 출신은 주부 대상의 아침 프로그램에 배치되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시사 교양 다큐 PD들 이명박 정부 들어 개고생 

최승호 PD는 “주부가 주 시청자인 아침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대통령 내곡동 사저 얘기나 FTA 비준 문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등 시사 현안을 많이 다뤘다.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사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MBC 스페셜>팀으로 보직을 옮긴 그는 원자력발전 문제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최승호·한학수 PD는 <PD 수첩>을 통해서 ‘PD 저널리즘’의 영역을 개척한 PD로 평가받는다. 이에 대해 최 PD는 “출입처 기자들은 정부 쪽 견해에 경도된 측면이 있다. 반면 PD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기획하는 만큼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기자들의 기사 마감보다 호흡이 길기 때문에 좀 더 깊이 다룰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지식을 감각적인 화면과 감성적인 음악으로 버무려 <지식채널e>를 제작했던 김진혁 PD는 “지식이 더 이상 식자들의 현학이 아닌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수단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식채널e>는 ‘대중이 누군가의 생각을 암기하는 존재가 아닌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갖고 표현하는 주체임을 천명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들 외에 최고의 교양·다큐 PD 4~10위는 이성규·김진만 PD(<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박봉남·이승준·조능희 PD(<PD 수첩>), 박정훈 PD(<환경의 역습> <잘 먹고 잘사는 법>), 구수환 PD(<추적 60분>) 등이 차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방송사에 속하지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 PD들의 약진이다.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PD(14.3%), <철까마귀의 날들>의 박봉남 PD(11.2%), <달팽이의 별>의 이승준 PD(8.7%)가 각각 순위권에 올랐다. 모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른 작품을 만든 PD로, 이들의 역량을 주류 PD들이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성규 PD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그동안 독립 PD들은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도 자신의 작품에 제대로 이름을 내걸 수도 없었다. 이제 후배 PD들에게 비전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독립 PD들이 내년에 발표할 다큐멘터리가 10여 편 있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 다큐 한류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한도전>의 성공 비결은 김태호 PD의 꼼꼼함

예능 PD 중에서는 <무한도전>의 MBC 김태호 PD가 최고의 PD로 꼽혔다(54.3%). 일선 PD들이 그를 추천한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새로움이었다. 고정된 출연진, 고정된 캐릭터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줘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PD 스스로가 ‘무한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설문 결과에 대해 김태호 PD는 “허망한 거품이고 모두가 속고 있는 것이다. 출연자와 후배들 그리고 작가들의 고혈을 짜서 나온 결과다. 얼굴이 빨개진다. 사실 <무한도전>은 오랜 시간 숙성된 캐릭터들이 어떤 주제를 던져주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연출이 할 일이 크게 없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이 말하는 <무한도전>의 성공 비결은 김태호 PD의 꼼꼼함이다. 기획해서 촬영 준비를 하고 마지막에 자막을 다는 것까지, 다시 말해 작가와 조연출 몫까지 연출인 김태호 PD가 다 챙긴다는 것이다. 그의 완벽주의는 스캔들 관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프로레슬러 편’에서 프로레슬러를 홀대했다는 논란이 일자 긴급히 블로그를 만들어 사건의 전후 본말에 대한 설명글을 올리고 오해를 풀도록 유도했다.


     
 

<뿌리 깊은 나무> 사극의 새 형식 열어

<무한도전>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김태호 PD는 “무엇에 도전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계를 얘기하는 것이니, 내년에는 럭비공 튀듯이 장르와 방향 없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겠다. 우리도 우리가 어디로 튈지 궁금하다”라고 신년 계획을 밝혔다. 

예능 부문 2위로 꼽힌 PD는 <나는 가수다>를 기획했던 MBC 김영희 PD였다.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칭찬합시다> 등 공익적 예능 프로그램으로 예능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김 PD는 “<나는 가수다>를 계속 연출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시청자들에게 행복을 주었던 것 같아서 지금까지의 어떤 작품보다도 보람을 느낀다. PD로서 행복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코이카의 꿈>이라는 해외 봉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 외 예능 PD의 영향력 순위는 나영석(<1박2일>), 송창의(<남자셋 여자셋>), 김병욱(<거침없이 하이킥>), 주철환(<퀴즈 아카데미>), 서수민(<개그콘서트>), 이명한(<해피선데이>), 여운혁(<무릎팍도사>), 신정수(<나는 가수다>) PD 순서였다. 


     
 
최고 드라마 PD는 장태유, 최고 드라마 작가는 노희경 

드라마 PD 중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를 연출한 SBS 장태유 PD가 최고의 PD로 꼽혔다(30.0%). <뿌리 깊은 나무>는 <추노>와 함께 사극의 새로운 형식을 연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추노>가 빠르고 힘 있게 찍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는 천천히 정교하게 찍었다는 평이다. 한글 창제 과정을 통해 세종의 캐릭터를 재해석해 시청자에게 드라마적 새로움을 선사했다. 사건 당사자가 다양하게 얽히고설켜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진행되는가 하면 느리게 전개되는 부분과 빠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긴장감을 주면서도 깊이 있게 끌고 나가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장태유 PD를 잇는 최고의 드라마 PD는 이병훈(<대장금>), 곽정환(<추노>), 표민수(<풀 하우스>), 김종학(<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신우철(<시크릿 가든>), 윤석호(<겨울연가>), 이재규(<다모>), 황인뢰(<궁>), 김재형(<용의 눈물>) 박홍균(<최고의 사랑>) PD 순서였다.

현역 PD들이 꼽은 최고의 드라마 작가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작가였다(49.3%). 노희경 작가는 뚜렷한 히트작은 없었지만 작품마다 섬세한 심리묘사로 드라마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김수현 작가가 2위로 꼽혔다(35.1%). 그 뒤를 홍정은·홍미란(홍 자매·<최고의 사랑>), 김영현(<대장금> <뿌리 깊은 나무>), 송지나(<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최완규(<올인> <아이리스>), 김은숙(<시크릿 가든>), 인정옥(<네 멋대로 해라>), 김운경(<서울의 달>), 임성한(<인어아가씨>) 작가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