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권하는 사회,
그래도 나가수는 인정할 수 있는 이유
기억하자. ‘나는 꼼수다’ 열풍 전에 ‘나는 가수다’ 열풍이 있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것은 ‘나는 가수다’가 원전이고 ‘나는 꼼수다’는 패러디물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좀 되어서 혹은 나꼼수 열풍이 너무 거세서 나꼼수가 오리저널이고 나가수가 파생상품으로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가수의 첫 방송은 2011년 3월6일이었고 나꼼수의 첫 업로드는 그해 4월27일이었다.
나가수가 방송되자 논쟁이 일었다. 아무리 오디션 열풍이 거세기로소니 중견가수들까지 오디션 무대에 세우느냐는 것이었다. 몇몇 대중가수들은 이런 프로그램은 뮤지션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고춧가루를 뿌렸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료를 자존심이 없는 뮤지션으로 몰아세웠다. 음악이 어떻게 평가의 대상이 되느냐는 고담준론을 펼치기도 했다. 덕분에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중가수들은 졸지에 한없이 불쌍한 뮤지션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비난하는 가수들이 오히려 가증스러웠다. 가수가 연예오락프로그램에 나가서 웃음을 파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경연에 나가서 인생을 걸고 노래하는 것을 우습게 바라보는 모습이 우스웠다. 대중가수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대중 앞에 맨몸으로 서기를 거부하는 것은 대중가수의 도리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 앞에 민낯으로 나서기를 거부하는 그들이 거만한 것 아닌가?
아이돌 위주의 음악 시장 판도까지 바꿔버린 나가수를 나는 ‘가수들의 패자부활전’ 혹은 ‘중견가수 재활 프로젝트’로 해석했다. 나가수는 중견 가수들에게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로 돌아온 막시무스에게 원형경기장이 갖는 의미와 같았다. 로마의 북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막시무스가 노예로 전락한 뒤 창 하나 방패 하나 들고 원형경기장에서 밑바닥부터 올라왔듯 그들 역시 나가수 무대에서 국민에게 평가 받았다.
나가수가 없었으면 소셜테이너로 찍혀 방송에서 퇴출된 YB(윤도현 밴드)는 계속 집회장을 전전하는 거리의 가수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7번의 경연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치고 ‘명예졸업생’이 된 박정현 김범수 자우림(김윤아) 윤민수 김경호와 같은 가수들을 많은 시청자들이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임재범과 인순이의 카리스마도 빛을 보지 못하고 불운한 가수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무대였다.
나가수에는 가수가 노래 부를 때 눈물을 흘리는 관객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저래? 그 정도로 감동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혹을 넘긴 가수들이 500명의 심판 앞에 실존을 걸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직접 본다면 충분히 감동할 수 있지 않을까? 노래 속에 담긴 그들의 눈물까지 들린다면 말이다.
음악계 판도 바꾼 세 가지 음악 프로그램
1) 슈퍼스타 K - 데뷔 방식의 변화
2) 나는 가수다 - 음원 시장의 패권 변화
3) 탑밴드 - 선호 장르의 변화
중견가수들이 인생을 걸고 실존을 걸고 싸우는 ‘필살기 오디션’이었던 나가수에 비해 가수지망생들의 이런저런 오디션은 너무나 싱거웠다. 나가수가 진검으로 싸우는 결투라면 이런 오디션은 목검으로 싸우는 연습경기 같았다. 그런데 떨어졌다고 인생의 낙오자처럼 운다. 오디션은 그저 오디션일 뿐이다.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 숫자만큼 많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떨어졌다고 무엇이 그리 대순가?
기업 면접 한 번 떨어졌다고 해서 인생이 나락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극적 효과를 노린 편집 때문에 오디션의 의미가 평가절상 되면서 현대의 원형경기장이 되었다. 88만원세대 노예들은 오디션 원형경기장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기성세대 관객들은 TV로 구경하고 ARS로 응원 함성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연예인 황족들은 엄지손가락 올렸다 내렸다하며 합격 불합격을 결정짓는다.
오디션프로그램은 88만원세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약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 ‘강자만 할 말 다 하는 세상’의 알레고리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의 시선으로 기성세대가 지금 88만원 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왜 세상이 그지 같애?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 네가 찌질해서 그 모양 그 꼴인거지. 벗어나고 싶어? 그럼 발버둥쳐? 우리도 다 그렇게 컸어’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컷 노래를 잘 하고도 죄인처럼 서있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영 불편했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표현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충고를 들어야만 했다. 심사위원석의 가수들은 그들과 음악적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하며 훈수 두었다. 심사위원석과 무대 사이에는 완전한 것과 불안전한 것을 가르는 깊고 넓은 강이 흘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판을 보며 음악의 신처럼 군림하며 훈수를 두는 가수들의 모습이 낯 설었다. ‘내가 기자 지망생들을 앞에 두고 저렇게 자신 있게 지적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10년 20년 했다고 해서 음악의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KPOP STAR’의 박진영이 자신의 지적대로 노래를 불렀다면 그는 아마 한류스타를 넘어선 은하계최고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법원에서 표절 판결을 받은 부적격 심사위원인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 마뜩찮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창궐로 대한민국은 ‘오디션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가수를 넘어서 아나운서와 기자까지 오디션 방식으로 뽑더니 급기야 국회의원 선발에까지 도입되었다. 오디션에 대한 이런 이상 열기는 ‘공정 사회’를 내걸고는 시종일관 공정하지 않은 모습을 이명박정권에 대한 실망감에서 공정에 대한 열망이 낳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왕 오디션을 할양이면 방송사 사장들을 오디션으로 뽑았으면 좋겠다. 낙하산 사장님들은 좀 물러나 주시고 말이다. 그러면 최소한 나가수 시즌2보다는 시청률이 높을 것 같은데...
주) 씨네21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나는 가수다’의 결정적 장면은 바로 김영희PD가 ‘김건모 재도전’을 결정하는 장면이었다. 이 결정으로 김건모는 국민 찌질이가 되었고 이를 부추긴 김제동은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은 연예인이 되었고 성질을 부린 이소라는 절대음감에서 절대비호감으로 추락했다. 결정적으로 나가수의 창업공신인 김 PD는 공정사회를 해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 역적의 누명을 쓰고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김건모 재도전’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무슨 오락프로그램에 그렇게 엄격한 룰을 적용하느냐, 정치인보다 연예인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등등... 그러나 그것 역시 나가수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다. 공정함을 느낄 수 없는 공정사회에서 나가수에서만큼은 정의가 구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의 기대가 그런 역풍을 불게 했던 것 같다. 당시 상상황의 막전막후를 정리해본 글이다.
김건모 재도전의 막전막후는 이랬다
MBC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관련 논란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재도전 제안을) 제작진이 거절했다면 김건모는 쿨하고, 김제동은 착하고, 이소라는 섬세하고 제작진은 단호하게 보일 수 있었다. 또 프로그램은 김건모조차 떨어뜨리는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는 세계최고의 방송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김건모는 찌질이, 김제동은 오지랖, 이소라는 땡깡부리는 것처럼 비춰졌다. 1등의 의미는 없어지고, 평가단은 바보가 되고, 프로그램은 난리가 나고, 시청자는 화가 났다”
시청자들의 비난 쓰나미에 방송 3회 만에 좌초한 <나는 가수다>는 어떤 프로그램인가? 이 프로그램의 룰은 간단하다. 일곱 명의 가수가 추첨을 통해서 선택된 노래를 부르고 500명의 청중 평가단의 평가를 받은 뒤 7위 판정을 받은 가수가 탈락한다. 사회자인 이소라를 비롯해 윤도현 김건모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정엽 등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 출연했다.
<슈퍼스타 K2><위대한 오디션>과는 차원이 다른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위치에 설 수 있을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이미 이룬 가수들이 관객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물론 가수들에게 순위를 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탈락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호평 받았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으로 보였던 KBS 2TV ‘해피선데이 - 1박2일’에 맞서 순간 시청률이 18%까지 오르는 등 두 자리 숫자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하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었다. 오디션 형식을 차용해 실력파 가수들이 혼신을 다하는 무대를 연출하고 익숙한 곡을 편곡을 통해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음악적 새로움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그램을 총괄 연출한 김영희 PD는 ‘칭찬합시다’ ‘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대회’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등 ‘예능의 탈을 쓴 교양프로그램’을 연출해 ‘쌀집아저씨’라 불리는 ‘국민PD’였다. 그가 주말 황금시간대에 ‘예능의 탈을 쓴 음악프로그램’으로 돌아와 당대의 가수들을 무대에 세움으로써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에 맞선 것에 대중음악계도 주목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음악의 스토리텔링화’에 성공한 쾌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기 위해 선택한 ‘가수 탈락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의 승부수는 독배가 되어 돌아왔다. 문제가 된 3월20일 방영분의 내용은 이랬다. 국민가수 김건모가 부르게 된 노래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였다.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김건모는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 우스꽝스런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모두가 놀란, 김건모 꼴찌
청중 심사위원의 평가는 김건모가 꼴찌였다. 모두가 놀랐다. 특히 사회자 이소라는 “이대로는 녹화를 진행할 수 없다”라며 몽니를 부렸다. 그리고 분장실로 사라졌다. 그러자 김제동이 재도전을 제안했다. 김PD는 제작진 회의를 거쳐 출연 가수들이 양해한다면 재도전의 기회를 주겠다고 답했다. 가수들이 양해해 주자 김건모는 기획사 사장과 상의를 거쳐 재도전을 결정했다.
제작진은 김건모의 재도전을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평가는 달랐다. 도전 가수 중 사회자와 가깝고 가장 힘 있는 가수인 김건모에게 특혜를 준 것으로 받아들였다. 비난이 쏟아졌다. ‘첫 번째 탈락자는 500명의 청중 심사위원이었다.’‘제목을 바꿔라. 나는 선배다라고.’‘‘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라 리바이벌 프로그램이다’‘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精)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라는 등 비난 일색이었다.
시청자들은 김건모에게 특혜를 준 것에 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거리가 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구태를 떠올렸다. 김PD는 프로그램의 취지가 가수를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라며 재도전 기회를 준 것에 대해 해명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레젠드급 가수들의 극한 서바이벌!, 한 사람은 탈락해야 한다!’라고 광고하는 등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가수 탈락’이라는 악법이 원죄였다. 김PD는 그 악법을 만든 당사자였다. 시청자들은 원칙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비난했다. 그런 논리라면, 좋은 축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강팀은 월드캅 16강에 떨어져도 재도전 기회를 줘야 한다며, 메시나 루니같은 스타 선수는 심판이 퇴장 시켜도 재출전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물론 제작진도 사정은 있었다. 외부에 비친 것과 달리 룰은 정립된 것이 아니었다. 윤도현의 소속사인 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는 “제작진이 약속한 것은 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었다. 서바이벌 형식은 유동적이었다.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면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줄만한 가수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명 내외다. 그렇게 매번 가수를 탈락시키면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영희와 김제동이 재도전을 제안하고 결정한 까닭
김PD 스타일은 프로그램의 큰 틀만 정해놓고 세부적인 부분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바꿔나가는 것이었다. 2009년 말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복귀해 '멧돼지사냥-헌터스'를 연출할 때도 애초에 멧돼지사냥 게임으로 기획했다가 동물보호단체의 항의를 받아들여 멧돼지 보호활동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프로그램 초기에는 포맷을 자주 변경한다.
김제동이 갑작스럽게 김건모의 재도전을 제안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탈락자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재도전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감대는 제작진과 출연자들 사이에서만 공유된 것이고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이었다. MBC가 스팟 광고 등을 통해 꼴찌를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건모는 운이 없었다. 일단 선곡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음색과 맞지 않는 곡을 골랐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측근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목에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어설픈 퍼포먼스로 그는 꼴찌가 되었다. 무엇보다 김건모 본인은 퇴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는데 기획사 대표의 설득으로 재도전을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었다.
일요일 방송이 논란을 일으킨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에 녹화가 있었다. 김건모는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현장에 있던 한 대중음악 관계자는 “김건모가 노래를 부를 때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라고 말했다. 탈락자는 다른 후배가수였다. 그 가수에게도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했지만, 재도전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자 결국 김영희 PD가 수습에 나섰다. 전언에 의하면 그는 회사 측에 “어떤 징계든 받을 각오가 되어있다. 프로그램을 계속 맡아서 수습할 수 있게 해달라”라며 하소연 했다고 한다. 자신을 믿고 프로그램에 동참해 준 가수들의 명예를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고 한 것인데, 출연 가수와 소속사 대표들도 MBC 예능국장을 통해 읍소했다. 회사 측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시청자들 분노에 김영희 PD 하차
그러나 다음날(수요일) 상황이 급반전 되었다. 회사는 김PD의 전격적인 하차를 발표했다. 회사 측의 논리는 ‘공정사회 구현’에 저해된다는 것이었다. 예능국 일선 PD들이 반발했다. 지금 열심히 상황을 수습하고 있고 프로그램이 아직 안착하기 전인데 이렇게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경우가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일선 PD들은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며 대책을 숙의했다.
다음날(목요일) 김건모의 퇴진 발표로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전날 기자들과 만난 그는 “나는 가수다에서 자진 사퇴하겠다. 재도전을 받아들여 물의를 빚었기에 시청자와 청중 평가단에게 죄송하다. 나로 인해 김영희 PD까지 교체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 결정(자진사퇴)은 의리보다 모두에 대한 도리인 것 같다"라고 말하며 퇴진을 공식화 했다.
모양이 이상해졌다. 공식 탈락 가수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결정 번복으로 500명의 청중 심사위원이 탈락했고, 연출자인 김영희 PD가 탈락했고, 출연자인 김건모가 탈락했다. 특히 김건모의 시점을 놓친 퇴진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처음 7위 발표를 했을 때나 다른 탈락자가 나오기 전에 사퇴하지 못하고 뒤늦게 결정을 내림으로써 프로그램의 존폐 위기까지 초래했다.
논란 끝에 MBC는 프로그램 폐지가 아닌 정비로 방향을 잡았다. 후임 연출자로 화제가 된 ‘세시봉 콘서트’의 기획자로 '유재석 김원희는 놀러와'를 연출하고 있는 신정수 PD로 선임하고 전열을 정비하기로 했다. 일단 지난 촬영 분을 한 번에 방송한 뒤에 한 달 동안의 정비기간을 갖고 5월 경에 다시 선 보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논란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이번 ‘나는 가수다 논쟁’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세 가지 논점이 있었다. 하나는 뮤지션들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부분이다. 가수들 스스로도 음악만 잘하면 된다는 ‘순수주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현실주의’가 부딪쳤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KBS 2TV <1박2일>에 출연했던 김C는 무명시절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예능프로그램을 가장 잘 활용한 가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나는 가수다'를 공격했던 가수들...
흥미로운 것은 <나는 가수다>를 공격한 측은 오히려 가수들이었다는 점이다. 조영남 신중현 남진 등 원로 가수들이 ‘음악에 점수를 매기고 프로 가수들에게 순위를 매긴다’ 등의 이유로 맹비난했다. 반면 윤종신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논란이 된 후에도 "이게 얼마 만에 잡은 사람들의 이목 그리고 감성인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지 않나요? 다시 한 번 우릴 감동시켜주길"이라며 응원했다.
다음 논점은 연예인과 연예프로그램에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다. 보통 외국은 뮤지션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그들에 대해서는 예외적 허용을 해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반대다. 더 엄격한 적용을 하고 심지어 고위공직자나 성직자보다도 더 놓은 수준의 도덕 수준을 요구한다. 학력위조 논란 때 가장 비난을 많이 받고 실제 프로그램 하차나 자숙기간을 갖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대부분 연예인이었다.
연예인에게 적용되는 높은 잣대는 예능프로그램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애초 예고한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은 것에 시청자가 격렬하게 반응한 것에 대해 <나는 가수다>의 한 관계자는 “두시의 데이트는 꼭 데이트만 하고 정오의 희망곡은 꼭 정오에만 희망곡을 트나, 자정뉴스가 자정에 하지 못하고 100분토론이 100분 넘으면 불법인가, 프로그램 진화의 한 과정으로 보지 않은 것이 섭섭하다”라고 말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 것일까? 정부가 보여주지 못한 공정한 모습을 시청자들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기대했다. 이번에 재도전을 제안했던 김제동은 “어쩌겠나, 사람들이 우리에게서라도 공정한 모습을 보고싶어 했는데, 그런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웅하지 못했으니... 그 비판을 달게 받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재철이 김영희를 내쳤던 까닭
마지막 논점은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에 대한 부분으로 일반 시청자들은 간과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MBC 내부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권에 친화적인 김재철 사장이 임명되면서 낙하산 사장이 임명된 KBS와 마찬가지로 MBC도 프로그램 폐지(W, 뉴스 후) 제작진 교체(PD수첩팀)가 이뤄지고 출연진 퇴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예능 PD들은 대부격인 김영희 PD를 치는 것으로 ‘예능PD 길들이기’를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김 PD의 이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언론노조총파업 당시(2008년 말~ 2009년 초) 그는 한국PD협회장을 맡아 파업에 적극 동참했다. 당시 <무한도전>의 김태호PD를 비롯해 그의 직속 후배인 MBC 예능국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에 ‘괴씸죄’가 적용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김 PD를 퇴출시키며 MBC 사측은 이례적으로 "한 번의 예외는 두 번, 세 번의 예외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됐다"라고 마치 성명서 문구처럼 보도자료를 내며 입장을 밝혔다. 말하자면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시청자 감동 외에 공정사회 구현의 임무까지 부여받은 <나는 가수다>가 어떻게 재탄생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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