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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연극이 끝나고

김기덕과 싸이가 소주 한 잔을 한다면...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2. 10. 27.


김기덕과 싸이가 소주 한 잔을 한다면...



올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김기덕 감독과 가수 싸이의 비결을 각각 한 글자로 줄이면 '한'과 '흥'이 아닐까 싶다. 못 배우고 못 가진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간 본성을 탐구한 김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불사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었다.



질적 성취와 양적 성취를 이룬 두 콘텐츠를 들여다보면 둘 다 우리의 비루함을 팔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적 성취를 이룬 ‘피에타’는 물질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양적 성취를 이룬 ‘강남스타일’은 졸부근성을 비꼬았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우리의 썩은 속살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두 콘텐츠는 궤를 같이한다.



우리 사회의 그늘을 김 감독은 영화적으로 그렸고 싸이는 음악적으로 재해석했다. 그것이 세계무대에 통했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든 존재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소재라는 것을 방증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듯 김기덕은 시상식장에서 아리랑을 직접 열창하며 화룡점정을 찍었고 싸이는 외국 방송에 출연해 'Dress Classy, Dance Cheesy'(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저렴하게)라고 방점을 찍었다.



이런 김기덕 감독과 싸이가 만나 소주 한 잔을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낼 독심술은 없지만 지난해까지 이들의 사정을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격정토로’가 있지 않을까? 주류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겉돌았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이 있다. 자신만의 영화, 자신만의 음악을 했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다.



김 감독의 베니스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동료인 이현승 감독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기덕의 수상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부끄럽다. 사실 한국 영화계가 그에게 해준 것이 없다. 그의 제작비 대부분은 자신의 돈과 해외 판매 수익으로 충당한 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키워낸 감독이 아니라 한국 밖의 관객과 영화인이 키운 감독이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빈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그리고 2011년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영화계의 이방인이었다. 평단은 그의 성취를 낮게 보았고 기자들은 무심했고 투자자는 외면했고 배급자는 가로막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심지어 김 감독의 황금사자상 수상에 대해 “김기덕은 영화제용 영화만 만든다.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한다.”라고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학자가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릴 연구만 한다, 혹은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 수 있는 연습만 한다는 식의 억지 비판이었지만 버젓이 통용되었다.



싸이도 맞장구칠 것이다. 싸이의 힙합은 힙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댄스로 분류되었다. 우리말에 맞는, 가장 한국적인 힙합을 했지만 미국 힙합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된장힙합’일 뿐이었다. 영어를 한국말로 바꾸는 힙합이 아니라 판소리의 사설처럼 우리 안의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랩이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또 하나 조명 받아야 할 부분은 가사의 메시지다. 싸이는 간지러운 사랑이야기가 아닌 울퉁불퉁한 B급 정서를 노래했다. 그리고 이를 키치적으로 표현했다. 저급한 세상에 대해서 노래한다고 저급한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급하게 노래해야 저급한 가수다. 그런데 싸이는 저급함에 대해 노래한 죄로 이 저급함의 함정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대중음악 주류무대에서 평가받으면서 겨우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뉴미디어는 늘 새로운 승자를 만들어낸다. 유튜브는 현재 전 세계 10대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음악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최근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Music 360’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10대가 음악을 듣는 경로는 유튜브(64%), 라디오(56%), 아이튠즈(53%), CD(50%) 순서였다. 대중음악 유행이 가장 빨리 확산되는 곳이 바로 유튜브인 것이다.



싸이는 유튜브라는 대중음악의 새로운 원형경기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뮤즈얼라이브 이성규 대표는 이를 이렇게 분석했다. “TED 컨퍼런스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이 ‘대중이 가속화시키는 확산’(Crowd Accelerated Spread)이라는 표현을 쓴 일이 있는데, ‘강남스타일’은 이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곧 대중적인 열망(Desire)과 대중이 참여하기 쉽게끔 대중 참여를 추동하고 자극하는 ‘디지털 문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연극계도 어디선가 제2의 김기덕이 악전고투하고 있을지, 제2의 싸이가 무시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성형수술이 발달한 나라와 발달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의학 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미인을 보는 눈이 획일적인가 아닌가의 차이다. 표준화된 미가 있는 곳에서는 성형미인이 각광받지만 미인을 보는 눈이 다양한 곳에서는 성형수술은 의미를 잃는다. 문화예술의 평가 기준이 획일화되는 것, 그것은 가장 비문화적인 것이다. 눈을 열자. 천재는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



연극IN 기고글 - [고재열의 리플레이] 비주류의 분투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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