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과 관련해서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설악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에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광주 학생들하고 마주쳤다. 서로 지나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구 지역 고등학생 1000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올라갔고, 광주 지역 고등학생 1000명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내려왔다. 자기들끼리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 부딪치면 뭔 일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경상도 사나이 같지 않은 경상도 남자의 '리얼 경상도' 이야기
(대학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경상도 사나이 같지 않은 경상도 사나이'를 참 많이 만났다. 경상도의 마초적 남성주의 문화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남자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마초문화에 부대끼는 것보다 여기가 편하다고 말하는 남자들... <메이드 인 경상도>를 보면서 그들을 떠올렸다. 한 지역을 너무 뭉뜽그려서 이해하면 이런 사람들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 경상도 사나이’의 이미지가 있다.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고, ‘우리가 남이가’라며 의리를 중시하고, 감수성은 떨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이미지다. 만화가 김수박씨는 그래서 고향 대구에 가는 것이 불편했다. 남들은 고향에 가면 편안해진다고들 하는데 그는 고향에 가서 가치관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영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런 성향이 경상도 사람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성향 아닌가? 중앙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지방 사람들의 공통된 성향 아닌가? 이후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고향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풀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가니 그때부터 발걸음이 편해졌다. 정말 경상도 사람들만 특별한지 관찰하고 싶어졌다. 관찰한다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그렇게 자신이 겪은 ‘경상도 사나이’에 대한 기억을 묶은 것이 바로 <메이드 인 경상도>다. 어릴 적 자신이 겪은 숱한 경상도 남자들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했다. 그의 결론은 특수성보다 보편성이 강하다는 것. “어느 한 지역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군부독재 시절을 살았던 대한민국 전체의 특성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지역이든 텃세가 있고 일정하게 배타적이다. 지역이기 때문에 갖는 중앙에 대한 반감과 보수성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경상도를 배척해서는 그들을 바꿀 수도 없고 그들의 표를 얻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상도, 그게 우리다’라고 인정해야 안으로부터 바꿔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 광주를 방문했을 때 그는 지역감정이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끼고 또 어떻게 해소되는지도 경험했다. “<어머니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광주의 진실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중고차를 사러 광주에 가는 길에 우연히 따라갔다. 5공 청문회도 있고 해서 민감하던 시절이었다. 자동차 번호판에 지역이 표시되던 때였는데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들었던 얘기 때문인지, ‘우리를 굉장히 싫어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경상도 사람한테는 식당에서 밥도 팔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잘 먹고 일을 잘 마치고 왔다”라고 기억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에 경험했다. 그는 “지역감정과 관련해서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설악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에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광주 학생들하고 마주쳤다. 서로 지나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구 지역 고등학생 1000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올라갔고, 광주 지역 고등학생 1000명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내려왔다. 자기들끼리도 말하지 않았다. 서로 부딪치면 뭔 일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그는 두 가지를 시도한다.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상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식민과 군부독재가 남긴 대한민국 전체의 유산이라는 걸 일깨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상도 사람들의 말문을 틔워보자는 것이다. 밖으로 꺼내서 이야기해봐야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해 침묵할 때가 많다.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경상도 사람은 침묵한다. ‘저것도 이제 그만해야지’ 혹은 ‘보상받으려고 저런다’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말 안 한다. 말을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고 그러면 옹색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가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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