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취향의 발견

'백종원 죽이기'에 대한 한 야매요리사의 항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5. 7. 2.

백종원의 존재 의의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라면에 김치 넣어서 김치라면 먹을 사람을...

그 김치로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게 하는 사람'이라고.


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백종원의 존재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고...

라면이나 김치찌개나 하는 사람이라면, 이를테면 강레오같은 사람에게는 백종원의 존재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몇 명의 사람을 위해 최고급 요리를 내놓는 요리사가 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람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이끄는 요리사가 더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구분하는 요리사의 등급은 세 가지다.


하나, 나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둘, 나를 똑똑한 음식평론가로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셋, 나를 좋은 요리사로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1)번은 한 끼를 즐겁게 해주고

2)번은 영혼을 즐겁게 해주고 

3)번은 영원히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일단' 세 번째에 속한다. 




백종원은 우리가 음식점에서 사먹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집에서 해먹을 사람들에게 팁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요리사로서 그를 평가하는 것보다, 요리트레이너로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요리트레이너로서 그는 가성비 높은 요리를 지향한다. 

물론 여기에는 비판의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조미료에 의존하고 소스의 강한 맛으로 '우주의 얕은 맛'을 지향하는 그에게 비판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황교익 선생님의 백종원 비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김치찌개나 만드는 주제에, 라고 디스하는 것은 곤란하다.)


백종원식 요리 접근법은 정통 셰프의 접근법은 아니다. 

아마 요리사라면 김치찌개에 대해서 '네 김치를 믿어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을 추천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맛없는 김치가 천지삐까리인지라 백종원식 접근법도 나쁘진 않다. 

그리고 가정에서 주부들의 요리법은 대부분 백종원식 조리법을 취한다. 

특히 바쁜 현대생활에 찌든 도시의 맞벌이 주부는...


나는 궁극의 요리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집에서 형편없는 요리를 먹으면서... 맛집을 순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길은 자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길에 백종원은 한번 쯤 거칠만한 사람이다. 

요리라는 번지점프에 대해 겁을 덜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맛없고 성의없는 음식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이런 팁이 필요하다. 

집에서 조금만 신경 써서 만들어보면 식당에서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종원에서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응급처치법이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 없다. 

백종원을 극복하면 사람들은 더 나은 스승을 스스로 찾아나설 것이다.


사람들은 빅마마 대신 백종원을 선택했다. 

그럼 백종원 다음은 누구를 찾게 될까? 

나는 임지호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미식가의 절대미각과 미식 담론


나는 나와 미식가의 차이를, 이른바 '절대미각'에 대한 차이를 이렇게 생각했다. 

맛이나 향이나 빛깔이나 식감을 통해... 조리과정을 역추적해 실수를 복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고의 음식평론가도 조리사의 설명을 듣고 그것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아닌지를 두고 판단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 

조리사는 자기가 만드는 장르의 음식은 먹어보면 조리과정의 실수를 복기할 수 있다. 그것이 만들어 본 사람과 안 만들어 본 사람의 차이다.


맛이 있다 없다, 라는 건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간혹 맛맹도 있지만). 왜냐면 우리는 삼시세끼를 먹으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음식에 노출되니까. 이게 다른 대상과 음식평론의 결정적 차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먹어본 맛은 정확히 판단하지만... 안 먹어본 맛에 대해서는 대부분 '맛이 없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의 미각이 생각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식가와 일반인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본 미식가가 우리를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스테이크를 처음 먹는 사람이 레어를 좋아하거나... 스파게티를 처음 먹는 사람이 알덴테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 취향의 문제일 수 있지만 내가 먹는 이 맛만이 절대진리라고 여기면 도그마에 빠질 수 있다. 당신이 선호하는 맛과 다른 맛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 맛이 가진 가치를 설명해서 음식에 대한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


음식은 절대성의 세계라기 보다는 상대성의 세계다. 닭 가슴살과 다리살과 날개살 중에서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 취향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음식에 대한 평가가 조심스러운 이유다. 미식가는 자신이 취향에 따라 평가를 하는지 '조리과정의 적합성, 정밀성, 효과성'을 기준으로 하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맛을 평가하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와인이나 차를 평가할 때는 먼저 기준을 형성하고 여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로 평가를 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떤가? 김치찌개는 이래야 한다, 된장찌개는 이래야 한다, 이런 것이 정리되어 있는가? 이런 상태에서는 자칫 취향에 따른 평가가 되기 쉽다.


요즘 미식가보다 요리사가 더 조명받는 것은 맛의 비밀에 대한 더 친절한 안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식가는 최종 산물의 맛에 대해서만 가타부타 얘기하는데 요리사는 그 과정을 복기해서 어떻게 해서 이런 맛이 나는지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동안 그런 소통에 굶주려 왔던 많은 시청자들이 환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식가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탕수육과 짜장면으로 중국음식을 배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탕수육과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계철선이 되어 다양한 중국음식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을 주선하는 사람으로서 미식가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맛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바로 조리과정의 시간, 열, 재료를 줄여주는 무수한 편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 편법이 더 좋은 맛을 구현하기도 한다(그래서 무조건 그르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히 경제적이기도 하니). 백종원은 이 편법을 일반에 공개한다. 다른 업주들은 싫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손맛이니 비법이니 하며 신화화 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백종원의 음식점에 가보면 이 편법을 통해 제작 단가를 낮추면 가격도 낮춰서 그 혜택을 소비자와 함께 나누려고 하는 부분이 보인다.


조리과정의 편법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이를 '꿀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못마땅해 하난 미식가도 있다. 이건 사람에 따라, 편법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개인의 선택 문제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많은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나가면 맛의 코디네이터도 앞으로 조명받을 것이다. 어느 계절에, 어떤 상황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 어떤 음식을 어떤 순서로 먹을지, 어떤 애피타이저와 디저트 그리고 어떤 술과 함께 먹을지를 적절히 조언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다. 단순히 맛집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는 미식학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었는데 아직 우리는 이런 부분이 정리되어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 시대에 우리의 음싣문화가 한 단계 발전하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양한 담론이 나와서 정립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