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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학개론

여행은 오해와 착각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역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7. 10. 28.



하나, 여행은 '아름다운 역설' 


세계 4대 여행서를 아는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바투타의 <이븐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기행>이다. 그렇다면 이 4대 여행서의 공통점을 아는가? 바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시인에게 ‘시적 허용’이 있다면 여행가에겐 ‘여행적 허용’이 있다. 더 멀리 갈수록 뻥이 더 심해진다. 사실 4대 여행서는 실제 작가가 쓴 내용인지 신빙성에도 의문이 간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와 함께 수감된 작가가 받아 적은 것이고, <동방기행>은 오도릭이 임종 직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행서들은 수백 년 동안 여행서의 고전으로 군림했다. 왜일까?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눈’은 ‘아름다운 오해’인 경우가 많다. 여행은 의미 있는 오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거짓말에 환호하고, 타인에 대한 오해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섬에 가면 다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섬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보다 두 배 빠르다. 해의 시계와 달의 시계(물때)가 함께 흐르기 때문이다. 해의 시계에 맞춰 농사도 하고 달의 시계에 맞춰 물질도 해야 한다. 그 바쁜 시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여유를 되찾는다. 


여행은 여행객을 맞는 사람에게도 오해다. 제주도지사가 제주도를 자랑하며 1등부터 10등까지 꼽는 것이 무엇일까? 그 대답 중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는 이유 열 가지 중 몇 가지나 겹칠까? 아마 겹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늘 새롭게 갱신되는 오해다. 


여행의 프로를 여행가라 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표로 삼는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일하러 가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여행은 일하다 쉬러 가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본질이고 그들의 여행은 여행의 탈을 쓴 일이다. 그들의 감동은 상상이고 우리의 감동은 실질이다. 


여행은,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우리는 캠핑을, 도시를 떠나서, 자연으로 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캠핑의 본질은, 도시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연을 보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돌아올 도시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행의 본질도 돌아올 일상일 수 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일탈로 일상에서의 이탈을 억제한다. 여행이 설렐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일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위안 받고 일상에서 안도한다. 





둘, 여행은 '본풀이'


세계 4대 여행서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 이븐바투타의 <이븐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기행>이 꼽힌다.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과 함께 또 다른 공통점은 성직자가 쓴 여행기라는 점이다. 혜초는 불교 승려, 오도릭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였고 이븐바투타는 술탄의 명을 받고 여행기를 썼다(마르코 폴로는 상인).


또한 최초의 여행 패키지 상품은 성지순례 여행이었다. 가장 성스러운 여행과 가장 상업적인 여행이 동시에 출발한 것이다. 성지를 순례한다는 최고의 여행 핑계였다. 이 패키지 상품에는 심지어 ‘원 플러스 원 서비스’도 있었다. 


여행은 여행지의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창구는 바로 신화와 종교다. 이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기원하는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근원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본풀이)를 알 수 있다. 


북방계 신화(천손강림신화)를 가지고 있는가, 남방계 신화(바다를 건너오거나, 알에서 태어나 나라 건국)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민족의 이주 계보를 알 수 있다. 신화와 전설 속에서 근친상간에 대해 어떻게 재해석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창조와 유지와 파괴(재탄생, 배설)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를 보면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포켓몬 고> 모바일게임은 중국 신화 <산해경>에서 캐릭터를 가져왔다. 이 게임을 비롯해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 판타지나 SF 영화에서도 신화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신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꼭 산업적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만 신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화의 기본은 ‘본풀이’다.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근본을 설명해준다. 신화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공포가 담겨 있어서 신화를 통해 그 민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우리는 주로 북방계 신화에 익숙한데, <아시아 신화 여행>은 주로 남방계 신화에 대한 강의 묶음집이다. 우리가 휴가 때 주로 여행 가는 동남아나 남태평양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를 비롯해 오키나와와 일본 본섬 그리고 인도네시아 신화에 대한 해설이 두루 담겨 있는데, 북방계 신화와 달리 하늘보다 바다가 강조된다.


신화보다 더 원형적인 것이 바로 샤먼이다. 외국 여행을 가면 되도록 그 나라의 무속과 관련된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샤먼에는 그들이 가졌던 공포의 원형과 욕망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샤먼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이해하기 쉽고 우리와의 공통점을 찾기도 쉽다. 


동북아시아에서 샤먼은 주로 여성이 맡는다. 여성 중에서도 할머니인 경우가 많다. 일본 동북지역에서는 할머니 중에서 눈이 먼 장애인 할머니를 샤먼으로 대접한다. 남성보다 약자인 여성을, 그중에서도 약자인 할머니를 그리고 장애인을 샤먼으로 소환해 사회의 통합을 꾀한다. 샤먼을 보면 권력을 견제하는 방식과 권력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식이 보인다.




셋, 여행가는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말하는 사람 


신뢰하는 여행가는 세 종류다. 하나 제너럴리스트. 둘 스페셜리스트. 셋 아카데미스트.

 

하나, 여행은 많이 다녀본 사람이 장땡이다. 정보는 비교에서 나온다. 많이 다니면 모든 정보가 상대평가를 통해 정밀해진다. 이를테면, 히말라야와 코카서스와 알프스와(혹은 일본 알프스와) 태백산맥을 두루 다녀봐야, 비로소 그 산을 설명할 수 있다.

 

둘, 여행은 오래 머문 사람이 또한 장땡이다. 기실 여행가의 깨달음이란 것은 오해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 멈춤을 통해 그 오해는 비로소 이해로 바뀐다. 친한 현지인을 소개시켜 줄 정도가 되어야 여행가다.

 

셋, 가보지 않은 여행가도 때로 도움이 된다. 바로 학자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아니 충분하고도 남는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여행지에서 지식을 확인하고 갱신하고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지다. 


CBS 정혜윤 PD는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인생을 ‘관광’에 비유하지 않고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사람과 사물과 공간을 대하듯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기쁨을 느끼듯 인생을 대하라.

 

피에르 바야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를 읽으면 여행지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썼던 저자가 이번에는 ‘불륜을 저질렀을 때 알리바이를 대려고 여행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듯’ 여행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풀어냈다. 전작이 책을 읽지 않는 읽기, 즉 읽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책읽기에 대한 비판이었듯, 이 책 역시 여행했으나 여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