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서 식물로. 국민소득이 3만 불에서 4만 불 구간으로 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려동물 카페가 유행이었다가 이제 대세는 식물 카페가 되었다. 식물에서 꽃에서 풀로, 인위적인 것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신속하게 옮겨가고 있다. 여행감독으로서 식물에 대한 관심을 관광자원의 측면에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수목 또한 인간이 그려낸 무늬다. 광양 읍성터의 고목들, 삼천포 대방진굴항의 고목들, 남해 물건리의 방풍림 그리고 황홀했던 경주 대릉원의 고목숲, 여기에는 인간이 진하게 써 내려간 삶의 무늬가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여행은 다분히 인문적이다. 인문여행의 한 형식으로 수목여행을 살핀다.
1> 불완전한 정원에서 되살려본 역사적 상상력
담양의 정자는 잘 알려진 관광자원이다. 그런데 정자의 정원 또한 관광자원이 혹은 그 이상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소쇄원의 수목이 지니는 유교적 의미, 관방제림을 조성한 지방관의 고심, 메타세콰이어길을 조성한 군수의 혜안 그리고 죽녹원을 설계한 정원 전문가의 구상. 모두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다.
광주의 호랑가시 언덕에 서양 선교사들이 남긴 흑호두나무와 피칸나무 그리고 은단풍나무는 서양 문화의 전파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언덕에 늠름하게 서있는 500년 된 배롱나무는 이 언덕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증거 한다. 나주의 대표적인 부잣집이었던 목서원의 금목서와 은목서 그리고 담 넘어 나주향교의 벼락 맞은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를 통해서는 근대 엘리트와 조선 선비의 취향 선호를 비교해볼 수 있다.
2> 노거수 따라 마을여행
신라 대릉원의 노거수, 광양 읍성터의 노거수, 삼천포 대방진굴항의 수목은 숲을 둘러싼 역사를 설명해 준다. 이런 관림의 노거수 말고 마을의 노거수는 마을의 역사를 들려준다. 그런 이런 노거수는 소개를 보면 수목만 소개하고 마을로 이야기를 이끌지 않는다. 그 나무가 수백 년 동안 지켜보았던 마을의 이야기가 없다.
식물학자는 식물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읽는다. 한 때 화전민촌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는 곳에서 인간이 남긴 식물로 식물학자들은 ‘시간의 나이’를 읽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이 뿌린 씨앗으로 공간을 읽는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멋진 식물 탐험이 될 것이다.
3> 블록버스터 식물 유감
수목에도 블록버스터가 있다. 벚나무, 수국, 핑크뮬리는 대한민국 3대 블록버스터 식물이다. 전국의 벚꽃동산이 수국동산 되었다가 이제 핑크동산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삼천리 금수강산을 벚꽃과 수국과 핑크뮬리로 꾸며야 한다는 관광 전문가들이 있다. 개인이 벚꽃이나 수국 혹은 핑크뮬리를 좋아해서 정원을 꾸미는 것이야 권장할 일이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지산지소처럼 지산지목이라는 말을 쓴다. 그 지역에 맞는 수목을 써야 제대로 숲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흔한 가로수가 아니라 지역의 특산 식목을 가로수로 조성한 곳을 알아본다.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서 수목을 조성했던 이들을 조명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민간 수목원의 아성인 천리포수목원을 비롯해 관록의 포항 기청산식물원, 패기의 포레스트수목원 등 민간 조성 수목원이 관광산업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들인 노력을 알아봐 줄 필요가 있다.
4> 통일의 정원 가꾸기
: 남북 산림 협력의 측면에서도 수목 관광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우리 조상들은 나 한 간 달 한 간에 강산은 둘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겠다며 ‘차경’을 정원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북한의 산하를 차경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북한의 산림을 복원하는 것이다. 북한 산림 복원을 위해 양묘장을 조성하는 것은 북한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일이기도 하다.
북한은 우리와 기후대가 달라서 수목도 다르게 형성된다. 이런 북한지역 수목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남북 교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 백두산과 금강산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만 북한이 식물보호구나 자연보호구로 설정하고 보존하는 곳은 자강도 오가산과 낭림산 그리고 함경북도 관모봉같은 곳이다. 이곳의 원시림에 대한 관심은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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