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예정되었던 도초도 여행이 취소되어 긴급하게 남원&논산 여행을 만들었다.
2박3일 일정을 빼두었던 여행자플랫폼 멤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변경된 여행이니만큼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행 인맥을 활용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급히 마련했는데, 다음 여행 연출을 위해 기록해 둔다.
여행에서 어디를 가느냐만큼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누구냐 가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여행을 가서 누구를 만나고 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남원과 충청의 지인들에게 급 사발통문을 돌려 여행 스케줄을 조정했다.
덕분에 그들의 손님으로 갈 수 있어서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에 들른 곳은 세종식물원이었다.
이유는 블루베리 서리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블루베리 서리를 하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주인은 기다렸다가 시원한 오미자 냉차를 내려주었다.
세종식물원 신중우 쌤과는 인연이 깊다. 그 인연을 통해 최고의 여행친구임을 증명했다.
여행 인연 중 가장 깊었던 것은 히말라야 랑탕트레킹이다. 우리는 눈 속에 나흘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신중우 쌤은 고산증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일 헬기장에 나가 눈을 치웠다.
식물원을 들른 이유는 '미래의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중우 쌤은 식물카페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중부권 여행을 하면 여기서 마지막 힐링을 하고 돌아다려고 한다. 이번에 일부러 들러서 사람들에게 세종식물원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조언도 청하면서.
공주 계룡산도예촌에서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양미숙 도예가님이셨다.
역시 우리 여행자 플랫폼의 멤버이고 차마고도(차를 마시는 고독한 도시인들) 단톡방에서 맹활약 중이시다. 이번에는 양 도예가님이 만든 찻잔에 차를 마셨다. 마신 찻잔은 단체로 구입했는데 사실 이런 잔은 여행 초입에 구입하는 것이 좋다. 여행 내내 이 잔으로 이것저것 마셔보는 재미가 솔솔하다(지난 문경 여행에서는 미산 김선식 선생님의 찻사발을 그렇게 활용했다)
마이크까지 준비하셔서 도예촌을 설명해 주셨고 공방에 초대해 시원한 민트차를 내려 주셨다.
이번 여행은 급하게 일정을 변경한 여행인데 숙소가 관건이었다. 역시 여행자플랫폼 멤버이신 조산구 위홈 대표가 급히 수소문해서 논산 명재고택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예약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셨다. 명재고택은 고택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택인데 이 곳을 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종손이신 윤완식 회장님과 명재고택 이곳저곳을 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이과 출신이시라 그런지 가문의 역사보다는 한옥의 과학성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셨는데 무척 논리적이셨다. 전통에 대한 자신감에 과학적 근더를 대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구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가 직접 경험하게 하는 실증적인 방법으로 한옥의 과학성을 설명하셨다.
명재고택은 문화재라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여행을 가면 과음 과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몸이 가뿐해졌다. 차회는 허락해 주셔서 밤에 차회를 가졌다. 차회를 진행한 사랑채 방은 선비를 위한 최고의 사교 공간이었다. 차를 마시며 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강경은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이번에 일부러 가보았다. 강경이 시댁인 이정화 쌤이 카톡방에서 맛집과 동선을 추천해 주었다. 덕분에 처음 가는 곳임에도 괜찮은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우연히 향토사학자인 김부길 어르신을 만나 일제강점기 때 본정목/본정통이던 곳을 두루 둘러 보았다. 화교 소학교 터를 둘러보았는데 화교들까지 번성했던 도시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근대 주택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를 채울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청년 기획팀을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남원 동편제마을 게스트하우스에는 일부러 들러서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 여행자 플랫폼 멤버인 정그림 셰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남원 여행 때 지리산 정기를 밥상에 심어주었던 정 셰프님이 이번에도 건강한 맛을 안겨주었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까지 챙겨와서 밥상을 꼼꼼하게 차려주었다. 셰프와 함께 하는 여행도 계획 중인데 정 셰프처럼 현지에 있는 분이 있으면 현지 식자재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밀도 있는 레시피를 감상할 수 있다.
첫날 숙소는 길섶이었다. 이곳에 올 때면 들어오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산 주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오전에 트레킹을 다녀온 멤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숙소에서 쉬었다.
양현모 쌤은 여행자 플랫폼에서 드로잉 클래스를 맞고 계시다. 미술 전공을 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초보자가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개발한 드로잉 요령을 잘 알려준다. 유료 클래스를 하셔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을 연출하실 수 있는 분이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초대 아티스트들이 같이 못왔는데 배우 김재은 쌤과 작곡가 임수영 쌤이 와주어서 우리의 여행 감수성을 북돋아 주었다. 장비를 가져오는 수도를 마다 않고 가져와서 본격 산중 콘서트를 열어주었다. 이들의 공연비를 마련해야 했는데 여행자 플랫폼 멤버이신 김준섭 쌤이 기증해준 목공예품을 팔아 만들 수 있었다.
여행자 플랫폼 멤버이신 양효숙 쌤도 우리를 반기기 위해 오셔서 가야금 병창 두어자락을 들려주셨다. 막걸리와 전통주를 싸가지고 오셨는데 우리를 손님으로 맞아주셔서 고마웠다. 두 무대가 결이 달라서 더 다양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지리산 길섶은 단체 여행객들을 위한 최고의 숙소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포함된 비용을 받는데 저녁을 풍성하게 준비해 주고 아침식사는 느긋하게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술까지 제공하는데 이 돈 받고 이렇게 줘서 남을까 싶을 정도로 풍성하게 차려준다. 길섶에서의 휴식은 지리산을 감상하는 또 하나 방식이다.
날이 더워져 뱀사골로 트레킹을 갔는데 적절했다. 강 옆으로 난 데크길에 나무가 우거져서 햇볕이 따갑지 않았고 물이 풍부해 시원했다. 와운마을까지 올라갔다 왔는데 지난 번 여행을 위해 전북 여행자 플랫폼 멤버인 정재욱 임봉수 최계용 세 분이 개척해 준 코스다. 역시나 여름에는 이만한 코스가 없다.
뱀사골계곡에 오르기 전 중앙식당에서 산나물백반을 먹고 올라왔는데 같이 나오는 버섯찌개가 일품이었다. 개운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뵈었던 김준섭 쌤이 추천해 준 집이다. 서울에서 먹는 식당보다도 정갈했다.
암튼 갑자기 변경한 여행이지만 오래 준비한 여행처럼 무난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게 모두 현지의 지인들 덕분일 것이다. 훈훈한 정을 느끼며 다녀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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