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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요즘 언론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9. 19.



'프레스 프렌들리'하다는 이명박 정부와
어울리지 못하는 언론인들이
따로 즐기는 놀이가 있습니다.


'의인 놀이'와 '징계 놀이' 
'출근저지 놀이'와 '파업 놀이'
'용만들기 놀이'와 '사육당하기 놀이'
'위로 놀이'와 '한탄 놀이'
다양한 놀이의 세계로 빠져 보시죠~





요즘, 방송사 기자들과 PD들이 ‘의인놀이’에 한참 맛을 들이고 있다. ‘의인놀이’의 룰은 간단하다. 정부의 방송 장악에 맞서는 것이다. 방식에는 제한이 없다. 몸뚱이와 말과 글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해서 맞서면 된다. 온 국민이 올림픽 중계에 빠져 있을 때 KBS 기자들과 PD들은 이 ‘의인놀이’에 빠져 지냈다. 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이사회를 통해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킨 정부는 폐막과 우리 선수단 귀국에 맞춰 새 사장을 임명시켰다. 이 과정에서 4번의 거친 몸싸움이 KBS 구내에서 벌어져 기자들과 PD들이 온몸으로 즐길 수 있었다. 김현석 기자협회장을 비롯해 김명섭 기자와 김경래 기자가 몸싸움 와중에 자신의 갈비뼈에 금이 가게 하는 기지를 발휘해 격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MB시대, 갈수록 확산되는 ‘의인놀이’
 

크고 작은 ‘의인놀이’가 진행되는 가운데, 9월3일에는 KBS 젊은 기자 170명이 ‘의인놀이’에 동참했다. 이들은 ‘KBS 사태를 바라보는 젊은 기자들의 결의’를 발표하며 정부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이를 도운 이사회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에는 170명의 기자들이 동참했고 현장에는 5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해 ‘피켓들기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물론 젊은 PD 160명도 비슷한 성명을 이전에 발표했었다. 사회를 본 심인보 기자의 기지는 이 ‘의인놀이’의 재미를 한층 더했다. 성명서 발표 후 그는 기자들의 자유발언을 유도하며 “내게 생사여탈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명해서 발언하면 회사에 찍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습기자 시절 나를 괴롭혔던 사수 선배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다”라며 농을 걸었다.


‘늙은 기자와 늙은 PD’들도 나름대로 ‘의인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들이 주로 애용하는 방식은 KBS 사내 게시판에 격문을 올리는 것이다. 평소 신문 기자들에게 ‘말은 되는데 글은 안된다’는 핀잔을 받았던 방송기자들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숨겨진 글솜씨를 뽐낼 수 있었다. 사내 게시판이 좁다고 생각한 PD들은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에 기고하면서까지 글솜씨를 자랑했다.


시민도, 기자도, PD도 모두 함께 놀이 한 판
 
 
KBS 기자들보다 앞서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놀이’를 즐기고 있었던 YTN 기자들 역시 외부 기고를 통해 ‘방송쟁이들은 글이 안 된다’는 편견을 잠재우며 글솜씨를 과시했다. ‘출근저지 놀이’에 앞장섰다가 돌발영상팀에서 사회팀으로 ‘돌발인사’를 당한 임장혁 팀장은 ‘돌발영상을 어떻게 해야겠냐’라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렸고 베스트셀러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의 저자 국제부 신웅진 기자는 ‘나도 처벌하시오!’라는 글을 올렸고 뉴스제작팀 김수진 기자는 ‘저희 YTN은 40일 넘게 싸우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40일을 넘기고 이제 50일을 넘긴 YTN의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놀이’를 취재하는데 지친 타사기자들은 ‘용 만들기 놀이’를 새롭게 개발했다. ‘24시간 뉴스채널’이 ‘24시간 편파채널’로 바뀌고 있는데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며 ‘용 만들기 놀이’로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용으로 지목한 사람은 수려한 외모의 노종면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를 ‘YTN의 손석희’로 부각해서 ‘스타 마케팅’을 하자는 것이었다. ‘의인 놀이’의 최고봉인 ‘파업 놀이’가 시작되면 이 ‘스타 마케팅’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 기자들과 함께 시민 블로거들도 KBS와 YTN 상황을 함께 즐겼다. 이들은 기자들이 ‘취재원 입장 되어보기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기자가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기자를 취재하고, PD가 시민을 찍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PD를 찍는 상황극을 함께 연출해 주었다. 덕분에 기자가 마이크 대신 용역 건달의 멱살을 잡고 기사 대신 악을 쓰는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질 수 있었다.


YTN 노조원들이 먼저 즐기고 KBS 사원들이 따라 한 놀이로는 '징계 놀이'가 있다. 회사가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선 노조원 76명을 징계하겠다고 밝히자 노조원들은 '나도 징계하라'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리며 '징계놀이'를 즐겼다. YTN 노조원들이 '징계 놀이'를 즐기는 것을 부럽게 지켜보았던 KBS 사원들은 역시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섰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을 회사가 '숙청 인사'로 물먹이는 것을 보고 '나도 인사하라'며 '인사 놀이'를 즐겼다.  


최후까지 웃는 자가 진정 지독한 승리자!


YTN이 ‘파업놀이’를 시작하면 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기자와 PD들이 즐기는 ‘의인놀이’의 최고봉은 MBC <PD수첩>팀의 이춘근PD와 김보슬PD가 보여주고 있다. 검찰의 강제구인에 대비해 MBC 구내에서 먹고 자고 있는 둘은 ‘사육당하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육당하기 놀이’의 백미는 여의도 일대 배달음식 평가하기다. 이미 여의도 일대 배달음식에 대해 ‘맛술랭 가이드’ 별점을 다 매긴 두 PD는 마포와 영등포 일대로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월29일 KBS PD 두 명이 이PD와 김PD에게 ‘의인놀이’의 진수를 배워보겠다며 MBC로 갔다. 그러면서 ‘위로 놀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막상 MBC 노조사무실에 들어가자 이들은 ‘한탄 놀이’에 빠져들었다. ‘어용노조’라 비판받고 있는 KBS 노조 사무실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했거나 들어가도 노조의 행태에 항의하러 갔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여 동안 이들은 ‘한탄 놀이’를 즐겼다. 약속했던 ‘위로 놀이’를 하라고 종용하자, 김보슬 PD가 “이것도 나름대로 위로가 된다. 우리 노조가 달리 보인다”라며 계속하게 했다.


이들과 함께 새벽까지 ‘치킨 앤 비어’로 ‘뱃살에 마블링 만들기 놀이’를 즐긴 영화인들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한 EBS <지식채널e>의 전 연출자 김진혁 PD는 이명박 시대를 끝까지 함께 즐길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최후까지 웃는 자가 진정 지독한 승리자’라며 남이 즐길 일이 생기면 외면하지 않고 내 일처럼 즐길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의인놀이’를 즐기며 이명박 시대를 버티기로 다짐했다.


이 글은 <매거진t>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원문 보기 :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article_id=48742&page=1&mm=006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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