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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블로거 인큐베이팅

일제강점기에도 빛이 났던 7대 얼짱 연예인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9. 24.


<독설닷컴>의 야심찬 프로젝트, 
‘블로거 인큐베이팅’의  세 번째 대상은
재야의 국악 전문가 김문성님입니다.

 (소릿재 아흔아홉구비:
sori99.tistory.com)

김문성님은 특히 
일제강점기의 기생 계보에 정통하십니다.
전설적인 기생분들도 직접 수소문해
만나보시기도 하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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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권번들이 벌인 기생 스카웃 전쟁은
요즘 기획사들의 연예인 스카웃 전쟁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다시 연예기획사 관련 비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소릿재'님이 전해주시는 일제강점기 '기생의 시대'로 떠나 보시죠.

첫 포스팅 주제는 '일제강점기에 빛났던 7대 얼짱 연예인'들입니다.
(앞으로 '소릿재'에 주목해 주세요.
장담하는데, 이 분은 블로고스피어를 빛내주실 분입니다.
이 분을 통해 기생문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국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1. 현매홍, 2. 김옥엽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은  서울 상경 후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많은 활동을 했다. 현매홍은 가곡, 가사, 시조에 능통했으며 김옥엽은 초창기에는 궁중무용과 서도잡가와 경기잡가 그리고 30년대 중반부터는 가곡, 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김옥엽의 '수심가'는 워낙 뛰어나 당시 장안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연예인중 한명이었으며 문학가 김동환과의 로맨스는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현매홍은 기생조합 최초의 잡지인 '장한' 편집인중 한명으로 활동했으며 일동축음기레코드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온다.
김옥엽 역시 빅타, 콜럼비아, 태평 레코드 등에 수십장의 음반을 취입했다.

 

3. 오산월





산월이란 이름은 기생중에 가장 흔한 이름중 하나였다. 손병희 선생의 후처가 명월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 유명한 평양기생 주산월이며 192, 30년대 배따라기로 일세를 풍미한 소리꾼이 서도기생 김산월이었다. 특히 김산월은 배따라기 같은 민요, 장한몽 같은 가요곡 외에도 도월색과 '이풍진 세상을(희망가')을  음반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오산월은 이들 두 산월만큼 유명한 기생은 아니었으나 외모로 볼때 상당히 유명한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 김영월





서도소리로 일세를 풍미하며 많은 일화를 남긴 장학선 등과 함께 대표적
인 평양기생으로 평양의 기성권번에서 학습을 한 김여월은 소리에도 능통했으나 연기쪽에 일찍부터 소질을 보여 많은 활동을 한 기생이었다. 1927년 개봉한 영화 '낙양의 길'의 주인공이었다.

 

5. 윤채선




요즘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대적인 마스크를 가지며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윤채선은 대정권번 소속의 예기로 특히  조선무용에 능통했다.
활동시기가 짧아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6. 이옥란





소박하면서도 애수가 넘치는  목소리를 지닌 이옥란은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국악과 양악 양쪽을 오가며 활동했다. 특히 콜럼비아레코드에 취입한 가요곡 기생수첩, 눈물의시집, 꽃같은 순정 등의 노래는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7. 장연홍





최근 일제시대 최고의 얼짱이라고 평
가받으며 붐을 일으키기도 했던 장연홍은 평양기생으로
예능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의식기생, 사상기생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유학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주) '7대 얼짱 연예인'이라는 제목이
다소 자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달을 가르키기 위한 손가락의 매니큐어'라고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릿재님이 안내하는 국악의 세계로 빠져들어가기 위한
조금 요란한 출입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