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맞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이 맞았던 이유
<거리인터뷰> East-Asia-Intel.com 지정남 특파원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LA 타임즈 서울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지금도 East-Asia-Intel.com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는 지정남 기자(67)에게 얼마 전 한국외신기자협회에서 헬멧과 기자 완장이 지급되었다.
지정남 기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6월10일에는 다시 최루탄이 등장하는건가? 가스마스크도 다시 꺼내야 하나. 거참. 21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이 없구나’ 최루탄으로 뒤범벅이 되고 어디서 누구에게 맞았는지 모르게 몸이 멍들어 있던 21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때 그 고생을 했던 덕분에 조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든 것이 다시 과거로 잘못 되돌려진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전화가 걸려왔다. 촛불집회에 갔던 아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지정남 기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신 기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자로 꼽는 분이다. 외신기자협회장을 맡았던 그는 외신기자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시사IN 기자들이 경영진의 무도한 기사삭제에 항의하고 파업할 때 그는 거리편집국을 찾아 잊을 수 없는 충고를 남겼다.
그가 남기고 간 말은 간단했다. 그러나 그 울림은 컸다. 그는 “당신들의 선배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제 당신들이 ‘펜이 돈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때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이후 ‘펜은 돈보다 강하다’는 것은 시사IN 기자들의 ‘으뜸 구호’가 되었고 결국 시사IN을 창간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가 다시 시사IN 거리편집국을 찾았다. 시간이 나면 시사IN 기자들에게 남도한정식을 한번 대접하고 싶다는 그로부터 ‘역사의 후퇴’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증거’를 들어보았다.
- 아들은 어떻게 하다가 연행되었나?
광화문 인도에 서서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경이 주위 사람들을 방패로 내려찍는 것을 보고 이를 말리기 위해 뛰어들었단다. 그러다 자신도 구타당하고 함께 연행되었단다. 혜화경찰서 유치장에 48시간 동안 갇혀있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 아들이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 소위 ‘강남식 사고’를 하고 사는 아들을 집안 식구들 모두 ‘부르주아지’라고 놀렸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고 본다. 인생에 좋은 약이 되었을 것이다.
- 이번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확고한 것 같다. 나이 많은 세대가 실수로, 사기꾼에게 속아서 잘못 선택해 놓은 삶을 젊은 세대가 다시 제대로 되돌리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 한 때 절망하다가 젊은이들 보니까 다시 희망이 보인다.
- 21년 전, 6-10 항쟁 때와 비교해서 어떤가?
최근 그때 취재했던 외신기자들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을 받고 방한했다. 그들과 오래간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에게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동참했던 것은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들을 붙들고 오래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 어떤 논쟁이었나?
당시 외신기자들의 보도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폭력’을 강조했다. 그것이 마음이 걸렸었다. 그래서 이렇게 따져묻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한 시간만 정전이 되어도 방화와 약탈이 자행된다. 그러나 1980년 광주 시민들은 1주일 동안 치안 부재 상황에서도 약탈사건 한 건 없이 질서를 유지했다. 한국인의 투쟁은 고귀한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 이제 선생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가?
그때 그 기자들이 이제야 인정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았다. 당시에는 본사에서 그런 것만 요구해서 그런 기사만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대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한국 국민들에게 미안하다.
- 시사IN기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고생한다. 좋은 남도한정식집을 알고 있는데,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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